여기에 무려 30,000km
지상까지 포함하면 48,00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바로 팬아메리카 하이웨이인데요.
실제로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둘레가 40,075km라는 것을 보았을 때
지구의 둘레보다도 더 길다고 할 수 있죠.
이 고속도로는 알레스카의 ‘프루드호 베이’에서 시작되고
칠레의 케욘 혹은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까지 이어지는데요.
그런데 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긴 도로에
유일하게 자동차가 갈 수 없어, 막힌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파나마와 콜롬비아 국경 사이에 있는 ‘다리엔 갭’입니다.
실제로 이 다리엔 갭의 위가 ‘북중미’
아래가 ‘남미’로 나누어지죠.
먼저 이 고속도로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북미- 중미- 남미를 잇는 철도, 혹은 고속도로의 필요는
과거부터 있어왔지만
1937년 7월 29일, 14개국이 참여하여
모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 신속히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한
'팬아메리칸 하이웨이 협약'으로
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협약 13년 후인 1950년에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멕시코가 최초로 고속도로를 완성하며 건설이 이어졌고
현재의 팬아메리칸 하이웨이까지 완성되었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이 파나마의 다리엔 갭에 도로가 없어
북중미 쪽에서는 파나마의 야비자까지
남쪽에서는 콜롬비아의 터보까지만 도로가 이어진 채
다리엔 갭의 100km 정도는 도로가 없는 채로 남아 있죠.
험하고 열악한 열대우림에
시설도 없고, 도로도 없기에
차로 이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1985년~1987년 사이
최초로 지프차를 타고 이 지역을 횡단하여
기네스북에까지 등록된 기록이 있는데요.
당시 이 100km 정도의 구간을 이동하는 데, 무려 741일이 걸렸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금도 여전히 도보로만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도로로 이어지면
2개의 큰 대륙이 이어져
사람, 차, 철도 등 서로 원활하게 이동하며 훨씬 이익이 많을 텐데
이 지역이 존재하므로
마치 북중미와 남미가
따로 떨어진 대륙에 가깝게 기능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대체 왜 이 지역은 도로로 연결되지 못할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 지역의 도로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리를 잠깐 볼까요?
일단 이 지역은 1,845m의 다리엔 산맥을 비롯한
주변의 높은 산들과 낮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험지입니다.
그리고 내부 지형은 정글과 열대우림으로 되어 있죠.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의 습한 바람을 받다 보니
연평균 328일, 즉 90% 이상의 날에 비가 내리고
연평균 강수량이 386mm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니
그만큼 습하죠.
이런 밀림과 열대우림이 유지되다 보니
내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어
생명 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 볼 수 있는데요.
평소에 볼 수 없는 희귀한 생물들이 많기에
그만큼 위험한 생명들도 많습니다.
또 습한 환경 속 모기와 진드기는 덤이기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질병이나 위험에 빠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곳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고 위험하며
복잡한 정글과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지형 자체도 도로 건설에 적합하지 않으며
또 워낙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다 보니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굳히기 힘든 환경인 것이죠.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비용과 시간,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사실상 파나마 정부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고
다른 나라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 현실인데요.
그래서 실제로 1971년 미국의 자금 지원으로
이곳에 도로를 깔려고 했지만
이번엔 환경운동가들의 반대로 1974년 건설은 중단되죠.
또 1992년에 한 번 더 도로 건설을 시도하지만
이번에도 환경 파괴로 인한 반대가 많았고
UN기구 또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하며
또다시 실패하게 되었죠.
이게 터무니없는 억지도 아닌 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 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남아 있고
그뿐만 아니라 구나족, 엠베라 우나나족 등
지역 원주민들이 고유한 전통의 문화들을 지키며
이 다리엔 지역에 살아가고 있어
환경이든 원주민 문화든 파괴되는 것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인데요.
1950년대 남미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북미로 올라올 것을 염려한
미국 내 목장주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죠.
이런 지리적 환경적 이유가 바탕이 되어 있지만
현재에도 계속 건설이 안 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측면도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파나마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약간 필요합니다.
파나마는 사실상
미국이 파나마 문화를 얻기 위해 독립시킨 국가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간단히만 이 과정에 대해 볼 텐데요.
원래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영토였습니다.
1850년~1900년 사이에만
40개의 행정부, 50번의 폭동, 5번의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 시도 등
독립에 대한 의지가 있는 지역이었고
그만큼 불안정성도 높았던 지역이었죠.
이렇게 단순한 지리적 모습만 보아도
콜롬비아와 상당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 보이시죠?
그리고 이 파나마엔 그 유명한 파나마 운하가 있는데요.
이 운하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게
이 운하를 건설하고 운영권을 얻게 되면
해상 무역이나 해군력 이동 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둘러가지 않고
82km라는 짧은 운하만 건너면 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운하에 대한 건설 시도는 1800년대 말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프랑스 건설사에서부터 있었는데요.
워낙 건설 난이도가 높아
프랑스 건설사는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파산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900년대 초에
이 파나마 지역에 미국이 관심을 가지게 되죠.
미국이 운하의 사업권을 구매하고 건설을 재시도하던 중
1903년 11월 3일
미국의 암묵적 지원을 받은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에
콜롬비아도 독립 움직임에 쉽게 개입하기 어려웠죠.
또 독립 후 거의 곧바로 파나마와 미국은
‘헤이 뷔노 바리야 조약’을 맺었고
이 조약을 통해 폭 16km, 길이 80km 정도의
파나마 운하 지역에 대한 권리를 미국이 얻게 되었죠.
사실 이 조약 체결 시, 파나마인은 없었습니다.
파나마를 대표하는 프랑스인이 있었을 뿐이죠.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1914년 8월
15일 운하는 완성되었고
파나마는 이미 독립 국가가 되었었지만
이전에 맺은 ‘헤이 뷔노 바리야 조약’으로
파나마 운하와 주변 지역에 대한 권리는
사실상 미국이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카터 대통령 때의 조약으로
파나마 지역에 대한 권리를 다시 파나마에게 돌려줄 때까지
거의 100년을 미국이 소유했죠.
현재는 파나마에게 운하에 대한 권리가 돌아갔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국은
운하의 보안, 중립성 유지, 운송 목적에 대한 수로 접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미국의 해군이 원할 때는 언제든 운하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파나마에 지금도 군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무튼 이렇게 파나마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도로 건설 추진을 위해서는
당사자인 파나마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해관계도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현재로서는 이 다리엔 갭이
남미와 북중미를 막는 방패나 벽의 역할을 해주는
그로 인해 북중미와 남미가 일종의 떨어진 섬처럼 유지되는 지금의 상황이
미국에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파나마가 콜롬비아의 땅이었다 했죠?
이 다리엔 지역이 도로로 이어지게 된다면
두 국가 간의 접근성이 높아져
과거의 소속이었던 콜롬비아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독립을 이루어 낸 국가에선 좋지 않은 것이죠?
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파나마 운하의 안정성 유지를 원하는 미국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는 것이죠.
또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의 코카인 생산지로
세계에서 생산되는 코카인 중 절반 이상이
콜롬비아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UN마약범죄사무소의 <2023년 세계 코카인 보고서>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 불법 코카인 생산이 급증하고 있으며
경제학적 또한 2020년 143,000헥타르에서 2021년 204,000헥타르로 늘었다 했죠.
그리고 그 중요한 생산지 중 하나가
콜롬비아 안데스산맥 동쪽이고
이곳은 다리엔 갭과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마약은
유럽과 아시아 등으로도 이동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소비처는 미국입니다.
미국 또한 비행기와 배로 들어오는 코카인을 막기 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마약이 계속 들어오는데
육로마저 개방되어 버리면
남미에서 북미로의 코카인 이동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이
관리되지 않는 정글과 열대우림의 오지로 남아 있다 보니
은신처로 이용하기에
수많은 마약 밀수업자들과 범죄자, 악명 높은 콜롬비아 반군들의 허브로 이용되는
일종의 무법 지역으로 남아 있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살인, 강도, 성폭행들 또한 일어나고 있죠.
물론 길을 뚫는다면
은신처의 기능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지만
육로를 통해 더 많은 마약과 폭력들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또 남미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싱크탱크 Fune for peace의 2022년
취약 국가 지수를 나타내는 지도인데요.
정치, 경제, 보안, 지역 간 개발 차이, 인권 등
여러 지표를 바탕으로 만든 수치를 활용하여
각 국가별 취약도를 구분한 지도이죠.
보시는 것처럼
초록색일수록 안정적이고
노란색은 경고
붉을수록 취약도가 매우 높음을 나타내는데요.
북미보다는 남미 쪽이
노란색 혹은 붉은색의 비율이 훨씬 높죠.
파나마의 바로 밑, 콜롬비아도 주황색을 띠고 있죠?
마약 생산은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갱단을 부르고
갱단은 또 여러 가지 범죄를 부르기에
당연히 국가 취약성에 더 악영향을 미칠 입니다.
바로 옆에 베네수엘라는 더 짙은 주황색을 띠고 있고
가이아나, 수리남,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도 안정적이라 볼 순 없죠.
이렇게 취약성이 높은 남미 국가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안정적이고 경제력이 높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있는
북쪽으로 이동을 많이 하는데요.
이때 이 다리엔 갭이
이들의 기회를 막는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실제 UN난민기구와 국제이주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 무려 250,0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다리엔 갭 지역을 건넜고
2023년엔 이 수치가 400,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베네수엘라 출신이며
다음으로 아이티와 에콰도르인이었죠.
이 나라들 또한 불안정성이 높은 나라들입니다.
아이티와 같은 카리브해의 섬나라인들은
해상을 이용하여 곧바로 미국과 더 가까운
중미 쪽으로 가지 않는지 궁금하실 수 있으실 텐데요.
남미가 북중미 국가들보다는
외국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고 쉽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무래도 경제력이 높은 나라들이
난민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장벽을 높게 세우는 편이잖아요.
이 때문에 난민들이 남미 쪽에 더욱 모이고
이게 또 국가들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높이는 원인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다리엔 갭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지정학적으로 현재 상황이 파나마와 미국에게 나쁘지 않으며
또 앞서 말한 역사적, 환경적, 사회적, 지리적 이유들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이 다리엔 갭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도로 건설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시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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