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지식줌) EU에서 가장 큰 강대국. 왜 1위가 되진 못할까?

Buddhastudy 2025. 1. 8. 19:37

 

 

EU에서 가장 영토가 크지만

인구도, GDP2위인 프랑스

늘 강대국이었지만 또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독일 등 최강대국에 밀려

대부분 2, 혹은 3위에 머물렀습니다.

 

산업화 시대 이후엔 더 그러한데요.

어떻게 프랑스가 유럽의 강대국이 되었는지

하지만 왜 1인자가 되지는 못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물리적 지리를 볼까요?

프랑스 남동부 쪽에 마시프 센트럴 고원지역과 알프스산맥이 있고

남쪽엔 피레네산맥이 버티고 있죠.

나머지는 약간 험준한 지역도 있지만

대부분 특히 중부와 북부는 평온이 많습니다.

 

이제 강을 볼 텐데 강의 힘이 엄청납니다.

수도인 파리를 흐르는 센 강

그리고 욘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파리의 아래쪽 농업과 축산업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곡물 창고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 하나인 보스 분지 지역을 완전히 통과하죠.

 

이곳의 농작물들은 욘강을 이용해 파리까지

뿐만아니라 센 강은 아우즈강과 마른강과도 연결되기에

프랑스 북부지역까지 이동이 가능하였고

이곳의 식량으로

프랑스 북부 주민들의 식량까지 충분히 해결 가능했던 것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프랑스 중부의 강은 론강으로 이어져

지중해 쪽으로 빠져 지중해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론강의 상류를 타고 올라가면

스위스까지도 도달하게 됩니다.

 

루아르강은 프랑스 중앙을 동서로 길게 흘러

비스케이만으로 빠져나가는데요.

현대에도 프랑스 최대의 조선소가 있는 생나제르 지역의 루아르 항구는

프랑스가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가론강이 있습니다.

이 강은 상류에 툴루즈까지 배가 다닐 수 있어 있었고

이로 인해 피레네산맥이라는 험하고 먼 길을 이용할 필요 없이

바닷길을 이용하여 스페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했기에

남유럽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죠.

 

그리고 뫼즈강은 벨기에로 이어지고

모젤강은 라인강으로 이어져

네덜란드와 독일까지 뻗어 나가고

그 너머 동쪽 국가들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처음 말씀드린 센강은

영국 해협으로 빠져나가

영국과 북유럽으로 이어지는 바닷길과도 연결이 되죠.

 

놀랍게도 이 강들의 상당 부분은

운항이 가능한 강입니다.

 

이처럼 강을 통해

내륙으로는 주변의 모든 국가들

해상으로는 지중해와 중동까지 그리고 영국, 북유럽 신대륙까지 나아가는 데

큰 이점을 주었죠.

 

또 내부적으로도

강이 프랑스 전역에 상당히 골고루 흐른다고 보실 수 있죠.

 

또 기후를 본다면

마시프 센트럴 고지대를 제외하면

프랑스 전역이 온대기후를 보입니다.

 

이로 인해 보스 지역뿐만 아니라

전역에서 풍부한 농산물 생산이 가능한 것이고

농산물들은 강을 통해

프랑스 전역으로 아주 저렴하고 쉽게 이동이 가능하게 되죠.

 

유럽에는 특히 험준하고 고립된 지역인 분리주의 성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쪽 저쪽에서 감싸 흐른 강들로 인해

파리의 영향력이 전역에 닿을 수 있었고

가장 험준한 지대라 볼 수 있는 마시프 센트럴 고원 지역마저도

파리 영양권 안에 들어왔죠.

 

 

이번엔 국경 쪽을 한번 볼까요?

남쪽은 피레네 산맥이, 남동쪽은 알프스 산맥이 있으며

알프스부터 벨기에 국경 근처까지 산기슭이 이어져 있습니다.

나머지 국경은 모두 바다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리적으로 프랑스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북쪽 벨기에 틈새에 평야 지역밖에 없다 볼 수 있죠.

다른 나라의 침략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는 지형이라는 것입니다.

 

강으로 연결되는 것은

농산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상품들까지 포함이 됩니다.

외부의 침략엔 안전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프랑스인들 간 소통과 문화 공유가 활발히 일어나다 보니

프랑스만의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영국보다는 500, 독일보다는 1000년 정도 빠른 것이었죠.

 

현대에도 그렇지만 과거 유럽 역사 속에서

프랑스 문화의 영향력은 상당했었는데

그만큼 지리적인 결속력이 있었고

그를 통해 공통적 민족성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이처럼 프랑스의 지리는

풍요로운 경제, 발전한 기술과 정치, 정교와 문화, 외교와 무역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유럽 최고의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데

특히 산업화 이후엔

왜 유럽 땅에서마저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역사적 이유

 

사실 1600년대에 프랑스는 최고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자신했던 탓일까요?

 

1700년대에만 6차례의 큰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재정은 나빠져 갔죠.

흉년까지 들며 점점 빵은 없어지고 물가는 폭등했고

특권 계층과 평민 간 괴리는 더 벌어졌으며

찬란했던 시기가 지나고

프랑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죠.

 

결국 계몽주의 사상을 강력히 신봉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었던 프랑스인들은

직접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지리의 힘으로 새로운 이념은

신속히 프랑스 전역에 전파될 수 있어 있었기에

프랑스만의 민족주의는 더욱 강화되었죠.

 

민족주의가 잘 흘러간다면

봉건주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더 역량이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있죠.

 

근데 민족주의의 큰 부정적 측면 중 하나는

전쟁에 쉽게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후 힘을 모은 민족주의 프랑스도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프랑스 북부 평원을 넘어가면

프랑스의 산맥들처럼 막아주는 곳이 없었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뻗어 나가다

결국 모스크바를 넘지 못하고

1815년 정복 전쟁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전쟁 패배 후 1800년대 프랑스가 약해진 시기에

옆나라 독일은 유럽의 산업 혁명의 바람을 타며

각 도시들이 발전해 갔고

지리적으로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고질적인 독일의 문제도

산업혁명 후 도로와 철도가 깔리게 되며 해결됩니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민족주의의 바람이 붑니다.

독일의 막강한 도시 국가인 프로이센은

같은 게르만계 세력들을 흡수시키며

점차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고, 1870년 프랑스를 공격하게 되죠.

 

산업화된 전쟁에 대한 대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프랑스는

당연히 독일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까지 패배시키고

프로이센은 1871년 통일된 독일 제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렇게 독일이 승승장구하던 중

독일 역시 민족주의로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요.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때문이죠.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크고 신경 쓰이는 이웃인 독일이 무너지면서

패전국 독일은

배상금, 개발기금, 농업 보조금 등

여러 명목으로 기금을 내놓아야 했고

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승전국의 이득이 되고

프랑스는 다시 유럽의 중심이 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죠.

 

하지만 유럽 내에서와는 다르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동쪽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미국 경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황폐화된 유럽 재건을 돕기 위해

마샬플랜을 시행하며

미국이 유럽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죠.

 

또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 중심으로

1949년 북대서양 조약 기구인 NATO가 창설됩니다.

 

이 미국 중심의 NATO 체제에서는

프랑스의 이점이 크게 사라졌는데요.

NATO라는 동맹으로

유럽 땅에서 서로를 공격할 위험이 낮아졌기에

프랑스를 안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지리적 방어벽의 이점은

무용지물이 되었죠.

 

반면 1955NATO에 가입한 독일, 정확히 서독에는

반대로 작용합니다.

독일은 세계대전 패전국이기에

군사 정책을 세우지 못하도록 금지를 당했거든요.

 

근데 서독도 NATO에 포함이 되어 버리니

서독은 군사력을 키우지 못하지만

NATO라는 체계 속에 있기에

주변의 NATO 회원국들의 침공의 위험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고

덕분에 경제 성장에만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죠.

 

독일은 운항 가능한 강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유럽 중앙에 있어

경제 발전을 위해선 최고의 조건이었는데요.

 

...

 

아무튼 독일은 훌륭한 지리적 조건 아래

군사력 대신 경제 성장에 힘을 쏟았고 매우 빠르게 발전해 나갔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핵까지 갖춘 후

이를 NATO와 공유하거나

집단적 통제를 받는 것을 거부하여

미국과 관계가 나빠졌고

결국 1966NATO 군사 사령부에서 떠나며

NATO와는 별개로 독립적 군사력을 구축하게 되는데요.

 

독일과 달리 미국과 NATO에서

독립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에도 함께 힘쓰다 보니

결국 독일에게 따라 잡히고

점차 독일이 다시 앞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고

독일은 인구마저 프랑스보다 많아져

완전히 프랑스를 앞서 나가게 되었죠.

 

 

--프랑스의 전략과 실패

 

이에 대처하기 위해 프랑스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먼저 여러 국가들에게 구애하며

반독일 동맹을 구축하려 했지만

과거부터 자급자족과 상품 무역까지

국가 내에서 충분히 가능했던 프랑스는

풍족하고 앞선 문화를 구축해 나간

잘나고 콧대 높은 국가였고

긴 역사 동안 유럽의 많은 나라를

버리거나 배반한 전력이 있었죠.

 

그렇다 보니 다른 유럽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웠고

반독일 동맹 구축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죠.

 

또 다른 시도는

통일 후 세력이 커져가는 독일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로화라는 공통 경제 제도의 그물망 안에 묶어두기 위해

프랑스가 공통 화폐인 유로화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인데요.

 

실제로 의도대로 유로화가 도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론 이게 프랑스의 가장 큰 오판이었습니다.

 

유로화 도입 초기

비교적 가난하거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여러 유럽 회원국들은

이제 통화도 같아졌으니

다른 국가에 돈을 빌려도 됐고

다른 곳에서 빌리는 것보다 이자율이 훨씬 낮고 안정적인 독일에

돈을 빌리길 원했죠.

 

치밀하게 계획하고 재정 건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이

그냥 빌려주진 않았겠죠.

독일은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기에

수출 대상국인 유로 사용국들의 안정을 원했고

또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기에

수익을 얻는 투자의 형태로 볼 수도 있으니

나쁠 게 없는 독일은 돈을 빌려주게 됩니다.

 

또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이 될 경우

해당 국가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고요.

 

돈을 빌린 여러 유럽 국가들은

7년 동안은 엄청나게 경제 성장을 해 나갑니다.

하지만 돈을 갚을 시기가 되자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키프로스와 같은

상환을 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발생하게 되죠.

 

독일은 해당 국가들이 엄격하게 예산을 통제하고

독일 모델에 준하는 정부 지출 체계를 바꾸는

크게 보면 긴축 정책을 수행하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지원하게 되죠.

 

프랑스의 노력으로 유로존에

독일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독일이 경제의 힘으로 유로존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이고

나치의 힘이 퍼졌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소프트 파워로

정치적 경제적 힘을 유럽에서 휘두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내용을 알아보았는데요.

지금 유럽과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기에

프랑스에게 다시 1인자로 올라설 또 다른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네요.

이 주제는 또 기회가 되면 다루어 보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시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