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별숲] 나는 어떻게 쿤달리니 각성을 체험할 수 있었나?
쿤달리니 에너지가 깨어남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쿤달리니 각성/2회]
지난 영상에서 쿤달리니 에너지가 각성될 때
저에게 일어났던 신비 체험들 중 일부를 말씀 드렸는데요.
오늘은 ‘어떻게 해서 쿤달리니 에너지가 각성될 수 있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 때를 되돌아보며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에너지가 깨어났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요
이 에너지가 깨어나기 쉬운 여러 가지 환경이
제 몸과 마음에 이미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 7~8년 정도 된 상태였어요.
즉, 에고가 많이 약화한 상태였죠.
생활 속에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에고의 소리인 생각을 내려놓고
영혼의 소리인 느낌을 따르는 마음의 훈련이 깊어진 상태였구요.
영성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영적 탐구에 관한 이해가 아주 깊어지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오랜 기간 깊은 호흡을 통해
몸의 곳곳에 쌓여있던 탁기가 많이 정화된 상태였구요
진동과 함께 몸의 차크라가 열려가면서
서로 연결된 기(氣)의 흐름을 느끼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을 비롯하여
백회와 손끝과 손바닥으로도 기(氣)가 들어오는 것이
수시로 느껴지던 때였는데요
몸의 한 지점에 저의 손끝을 가볍게 올려놓으면
손끝의 에너지가 제 몸을 관통하여
몸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에너지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지던 상태였습니다.
몸 안의 에너지 통로들이 진동하면서 열려가고
흐름이 연결되어 가면서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가고 있던 상태였던 거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장애 아이를 포함한 세 아들에 대한 독박육아가 10년 이상 이어지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숨 쉴 기운도 없다는 느낌이 들만큼
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어요.
정리하자면
꽤 오랜 기간의 영적탐구와 호흡을 통해
에너지 통로가 열려가고 연결되던 상태였는데
에너지 자체는 부족한 상태였던 거죠.
뭔가 체력을 보강하고
에너지를 채워줄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이때 제가 선택한 운동이 ‘기체조’였습니다.
깨달음이나 신비체험을 위해
이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구요.
제 몸 상태가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고
체력이 바닥인 상태였기 때문에
체력 증진과 건강을 목표로 한 운동이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두세 번 쯤
그 다음엔 일주일에 한두 번 쯤 했는데요.
그것도 1년 내내 꾸준히 한 것이 아니에요.
방학 때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까 못 하고
아이가 아프면 또 못 하고
아이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또 못하고…
그런 상태니까 그냥 짬짬이 조금씩 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는데요.
그마저도 1~2년쯤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영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에너지 통로인 차크라가 열리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 조금의 운동이 쿤달리니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각성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이 에너지를 깨우기 위해 정해진 자세와 호흡 훈련 등을 통해
정진하고 계시는 수련자 분들도 계신데요.
이 과정 중에 무리하거나 잘못된 수련 방법으로
몸에 이런저런 부작용을 경험하셨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신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알맞은 방식으로 바르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 당시의 저는 이 에너지에 대해 알지 못했고
깨우려는 의도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심의 상태에서 알맞은 정도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구요.
덕분에 제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 에너지가 깨어났습니다.
처음부터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우려는 목적으로
육체적 수련에 오랫동안 집중하신 분들은요
이 에너지가 깨어날 때 저와 다른 방식의 체험을 하실 수 있는데요.
수련방식이나 수련 기간에 따라
저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영적 탐구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길을 찾아 자신의 길로 걷는 거예요.
‘자신의 길’이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나의 내면으로부터 자발적 끌림이 있는 길’을 말하는데요
깨달음을 향한 영적 탐구의 길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요가의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따라 걷게 됩니다.
저 역시 쿤달리니 에너지가 깨어날 당시에
요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신체 운동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 방식의 요가는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련 방법을 말하는데요.
마음을 조절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억제하여
인간 본래의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요가를 크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보면
하타 요가, 박티 요가, 카르마 요가, 즈나나 요가, 라자 요가가 있습니다.
-하타 요가는 육체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산함으로써
몸의 균형과 마음의 자유를 찾아
더 높은 정신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하구요.
-박티 요가는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요가입니다.
-카르마 요가는 바른 앎보다는 바른 행위를 통해
참된 자기에 도달하려는 요가이구요.
-즈나나 요가는 바른 앎과 바른 이해를 통해
자신의 에고를 타파하려는 요가로써
배움, 지식, 지혜를 추구하는 요가입니다.
-라자 요가는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지혜를 얻으며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는 요가입니다.
물론 더 세분하여 구분해보면
탄트라 요가, 만트라 요가, 쿤달리니 요가 등도 있습니다.
-탄트라 요가는 자신의 행동에 깨어있으며
욕구를 통제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각하는 요가입니다.
-만트라 요가는 반복적인 음을 통해
소리의 힘을 이용하여 심신을 정화시키는 요가이구요.
-쿤달리니 요가는 잠자고 있는 쿤달리니를 깨워
척추에너지 통로를 지나
일곱 개의 차크라를 열어 새로운 힘을 갖게 되는 요가입니다.
이들 중 어떤 길이 자신의 길인지는
오직 자신의 영혼만이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한 사람이 반드시 하나의 길만을 선택하여 걷지는 않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서로 중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더 쉽고 편하게 느껴지는 길
내면의 끌림이 있고 자신을 더 기분 좋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도적인 길이 있다는 거죠.
돌이켜 보면
저의 영적탐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주도적 길은
즈나나 요가와 박티 요가의 길이었습니다.
-저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길은
바른 앎과 바른 이해를 통해 에고의 힘을 약화시키고
지혜를 추구해 가는 즈나나 요가였구요
-이에 더해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제 삶에 주어진 모든 고통과 절망까지도
신의 선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박티 요가의 길을 함께 했습니다.
물론 이 외에 하타 요가와 라자 요가 등
다른 요가들도 조금씩 병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제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있던 상태에서
‘기체조’라는 몸의 수련이 더해졌을 때
제 안의 쿤달리니 에너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깨어났습니다.
물론 그 당시 제가
요가가 무엇인지 알고
요가의 길을 따라 수행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 당시의 저는 요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제 내면으로부터의 끌림이 있는 길을 따랐을 뿐이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돌이켜보니
영적 탐구의 길에서 제가 걸어왔던 그 길이
결국 요가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끌리고 좋아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세요.
우리 모두의 영혼은 제각기 끌리고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반복적인 음을 통해 심신을 정화하는 만트라 요가는
전혀 저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길이 주도적인 길이 될 수도 있구요
또 누군가에게는 육체의 잠재적인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몸의 균형과 마음의 자유를 추구하는 하타 요가가
주도적인 길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지혜를 얻으며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는
라자 요가가 주도적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둘레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영적탐구를 향해 걷고 있는 여러분의 길이
너무 지루하고 짜증나게 느껴진다면
그건 자신의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길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길 역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노력은 ‘애씀 없는 노력’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버티며 애쓰는 노력’과
‘애씀 없는 노력’의 차이를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길로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끈기와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때의 노력은 ‘애씀 없는 노력’이라는 거죠.
내면의 끌림을 따라 자연스럽게 명상하고
내면의 끌림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련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갈 것이고
그 준비가 무르익으면 쿤달리니 에너지 역시 저절로 깨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느 날 때가 되면
저절로 꽃봉오리가 꽃잎을 열고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영상 여기에서 마무리 하구요.
다음 영상에서는 많은 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쿤달리니 에너지 각성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지한 구도의 길을 걷고 계시는 구독자님들과 함께하는 [지혜별숲]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현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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