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영상들에서
쿤달리니 각성을 위해 마음을 깨우는 방법으로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과
‘마음의 고요함’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각 개인의 내부에서
고정관념과 분별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쿤달리니 각성과 마음의 고요함은 깊게 연결되어 있죠.
하지만 이것을 지성적으로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고요함’이 쉽게 성취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분노와 짜증과 울분과 혐오와 같이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이 감정들 중 일부는 쉽게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은
내면에 쌓여 끓어오르다
어느 순간 불쑥 솟아오르며 흘러넘치게 되죠.
이 상황은 마치 꾹꾹 닫아 누른 냄비 뚜껑을 밀치고
솟아오른 열기와 액체 때문에
주변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억눌린 열기가 터져 나오며 날아간 냄비 뚜껑에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다칠 수도 있구요.
혹은 내 주변 누군가의 몸과 마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흘러넘친 액체를 닦고, 치우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수고로움이 필요한데요
흘러넘친 감정의 찌꺼기를 수습하고 정리할 때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냄비 속의 열기가
임계점을 넘어 솟아오르기 전에
뚜껑을 열어 열기를 내보내죠.
마찬가지로 내 안에 쌓인 감정들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기 전에
흘려보낼 수 있는 이해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을 흘려보내고 싶지만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는요
이 감정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지 못 하기 때문인데요.
떨쳐버리고 싶지만 떨쳐지지 않는 불쾌한 감정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생각’입니다.
하나의 ‘감정’에는 그 감정을 일으킨 하나의 ‘생각’이 있구요.
이 생각은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통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형 부부가 결혼을 앞둔 동생 커플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돌아오는 휴일에 자신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합니다.
동생의 약혼녀는 형님 내외의 첫 초대에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응합니다.
첫 만남이고 첫 방문이니만큼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품고 약속된 시간에 방문합니다.
하지만 도착한 순간 당황하게 됩니다.
첫 식사 초대였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 정도 식사 준비가 되어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인데요.
예상과는 달리 전혀 식사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거죠.
동생 커플이 도착하자
그제야 냉장고에서 재료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합니다.
동생의 약혼녀는 처음 방문한 집에서 처음 만난 형 내외와
야채를 씻고 식사 준비를 합니다.
식사 후 뒷정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듭니다.
‘이게 뭐지? 식사 초대를 한다고 해 놓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있다니….
이게 무슨 경우람? 나를 무시하는 거야? 지금?’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기분이 찝찝해집니다.
뭔가 선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습니다.
자, 그럼 이제 자세하게 살펴볼게요.
왜 찝찝한 기분,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들었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상황만을 나열해 보면
처음 방문한 집에서 함께 식사 준비를 해서 먹고
함께 뒷정리를 한 거죠.
이 상황 자체에는 ‘선악’의 개념이나 ‘옳고 그름’의 개념이 없어요.
그저 그러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왜 유쾌하지 않고 찝찝한 감정이 생겼을까요?
내가 지금 ‘존중받지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럼 이 생각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걸까요?
‘첫 인사를 위해 식사 초대를 할 때는
미리 식사 준비를 해 놓는 것이 예의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고정관념은
‘인사를 온 사람에게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하게 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라는
분별심에서 나온 거죠.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것은요.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통해
필터링 된 ‘자신의 생각’을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라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이 당연히 옳다는 확신과 믿음과 주장이 강하면 강할수록
타인의 생각과 더 많이 부딪치게 되죠.
이럴 때 내면의 생각감정은 더 크게 일렁이고 더 시끄러워지구요.
‘마음의 고요함’은 점점 더 성취하기 힘들어지는데요.
사실 이 부딪침은 단순히 생각감정의 부딪침이 아니에요.
서로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분별심이 부딪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옳다고 믿고 있는 ‘나의 생각’은요
어린 시절 내가 속한 환경과 교육과 경험을 통해
‘나의 세계’에서 형성된 고정관념과 분별심이에요.
타인은 그들이 속한 환경과 교육과 경험을 통해
‘그들의 세계’에서 형성된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좀 전의 예로 돌아가 볼게요.
어쩌면 형 부부는
‘이제 가족이 될 사람이니
함께 식사 준비를 해서 맛있게 먹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구요
‘손아래 사람이니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대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을 수도 있구요
‘식사는 함께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이 옳다’는 분별심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과 분별심이
‘그의 세계’에서는 ‘옳은 생각’일 수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의 다툼과 갈등은요
각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건데요
이때 표면적으로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부딪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깊게 살펴보면
나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이 타인의 고정관념과 분별심과 부딪치고 있는 거예요.
때문에 차크라와 나디를 막고 있는 부정적 감정의 찌꺼기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해결해야 하는데요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감정의 불편함이 올라올 때마다
그 원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나 환경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수 있구요.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그 원인을 외부의 대상에서 찾지 않는 거예요.
‘나의 관념이 옳고, 너의 관념이 틀리다’
‘나의 분별심이 옳고, 너의 분별심이 틀리다’는 주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별심을 내려놓아야만 갈 수 있는 길인데요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 자체가
또 하나의 분별심일 뿐이거든요.
이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요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그 감정을 일으킨 생각을 먼저 찾구요
그 다음에 그 생각을 일으킨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찾아보세요.
그런 다음 이 모든 분별심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교육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허상임을 이해하는 겁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놓고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나요?”
가끔 이런 질문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모든 분별심이 에고가 만들어 낸 허상임을 이해하는 순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분별심이 허상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주장이 약해지기 때문이에요
나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힘이 약해지면요
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난 부정적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힘을 잃고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부정적 생각감정을 내려놓기 위해서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나의 분별심’은 ‘나의 에고’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알아차리는
‘이해’가 필요할 뿐이에요.
‘좋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면
자신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엄청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힘들어할 수도 있구요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이 꼭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구요
대학과 상관없이 친구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기분 좋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이야’라는 분별심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에게 무리가 될 만큼 과도한 일로 힘들어질 수 있구요
자신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가족이나 동료를 볼 때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은 쉬어가며 적당히 하는 게 옳아’라는 분별심을 가지고 있다면
쉼의 여유를 누리며 즐겁게 일할 수도 있구요.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가족이나 동료를 볼 때
어리석어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감정의 원인은
타인이나 외부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구요
오직 자신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에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고요함’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라는 분별심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내려놓는 작업입니다.
그럼 이제 이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과
‘마음의 고요함’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볼게요.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과 ‘마음의 고요함’은
각기 다른 방향의 수련법이 아니에요.
‘에고로서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참나로서의 마음’을 깨우기 위해서는요
이 두 가지 방법의 수련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방법을
매일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통합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셔야 하는데요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수행법이지만
‘마음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일요일 오후 낮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순간 짜증이 확 올라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짜증을 꾹꾹 누르며 다시 잠을 청해 보기도 하구요.
아니면 문을 열고 소란을 제지시켜 보기도 하는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이 옳은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깨어있는가?’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은
내 감정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타인에게서 찾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짜증의 원인이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누군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은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은요
나와 상대를 저울에 올려놓고
‘지금 누가 더 옳은가?’
혹은 ‘어떤 행동이 더 옳은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들은
‘무엇이 더 옳은지?’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들이구요
판단을 요구하는 모든 질문은
에고의 ‘분별심’을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분별심’은 에고가 지어낸 허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분별심’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꼼짝없이 또다시 에고가 지어낸 ‘허상’의 덫에 갇히게 됩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깨어있지 못한 의식 상태로 살아가고 있구요
때문에 나의 분별심에서 나온 무의식적 생각감정 프로그램이
내면에서 계속 작동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은
순간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일시정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구요.
이렇게 생각감정 프로그램이
‘일시정지’된 찰나의 순간에 ‘마음의 고요함’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은
‘마음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이 문을 통해 ‘마음의 고요함’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해요.
한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되는데요.
그 한 가지 원칙은요
‘누가 옳은지?’ ‘무엇이 옳은지?’
나와 상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질문을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의 과정을 반복하는 겁니다.
첫째, ‘아, 내가 지금 짜증이 났구나’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 깨어있음을 유지하면 되구요.
둘째, ‘지금 누가 짜증이 났지?’라는 질문을 자신의 내면에 던지면 되는데요.
이 질문은 무의식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생각감정 프로그램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일시정지’ 버튼으로 작용합니다.
셋째, ‘아, 내가 짜증이 난 것이 아니라 에고가 짜증이 났구나.’
이렇게 답함으로써 에고와 참나를 분리시킵니다.
에고와 참나가 분리되는 순간 허상인 에고는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이것은 세차게 일어난 파도가 바다와 분리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과 같은데요.
에고가 사라진다는 건 에고의 생각감정이 힘을 잃고 고요해진다는 뜻이구요.
따라서 ‘마음의 고요함’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의 문을 통해
‘마음의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물론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단번에 ‘마음의 고요함’이 ‘깊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마음의 고요함’이라는
깊고 거대한 방으로 이어지는
아주 긴 회랑의 입구를 지금 막 통과한 거죠.
이 단계는 회랑의 입구에서
잠시 문 안쪽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요.
언제든지 다시 에고가 지배하는
허상의 세상으로 돌아나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탐구해 가는 과정들이 필요하구요.
‘마음의 고요함’을 방해하고 있는
‘분별심’의 ‘허상’을
이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합니다.
분별심을 내려놓는 이 작업을 통해
‘마음의 고요함’이 이루어지면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의 상태도 점점 더 쉬워집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한 깨어있음’과 ‘마음의 고요함’은
서로를 상호보완하는 연결된 수련법으로써
고요함을 위해서는 알아차림이 필요하고
알아차림을 위해서는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개의 수련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능숙해지구요
능숙해질수록 고요함은 더 깊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알아차림과 고요함을 오가며
더 깊은 내면의 방을 향해
회랑을 따라 걷고 또 걷게 됩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깊어질수록
참나가 부르는 소리는 강해지고, 에고가 부르는 소리는 약해집니다.
에고의 소리가 약해질수록
차크라와 나디를 막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는 사라집니다.
이제 일상의 모든 것이 명상이 되고
당신은 준비되어 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당신은 도달합니다.
모든 것은 완결되었고
모든 것이 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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