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2 - 소리로 만나는 마음자리 밝히기

Buddhastudy 2025. 2. 19. 19:59

 

 

창 밖에서 나는 새소리를 들어보세요.

아하, 저 소리를 듣는 이 자리로구나생각하면 아직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는 분별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소리와 듣는 행위

그리고 듣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분리된 걸로 여긴다면

이미 생각 분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따로 없이

새소리와 세상이 하나로 다가와야 합니다.

마치 살아서 생동하는

한 덩어리의 생명 에너지 같은 걸 만나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이란 상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일체가 한 통인데

그것이 살아 있기에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살아 있는 걸 이리저리 분리해 찢어버리고

생각 속에 담아 저장하는 게

바로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육이란 알음알이, 분별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바로 이 살아있는 생명에너지이며 우주의식입니다.

 

우주의식이라 하여

우주가 된 체험이나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이미 당신은 있는 그대로가 우주의식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주와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그 무엇이니까요.

 

이 자리가 체험되어도

그 체험만을 붙들거나 집착하면 안 됩니다.

체험되든 안 되든

이미 당신은 그것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의 본래면목을 자각해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중생세계는

모든 게 다 따로따로 제 이름을 갖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세계는

모든 게 다 하나 속에 일즉다다즉일로 들어 있습니다.

나도 법도 따로 없고

오직 이 한 자리만이 살아 있음이 명백해집니다.

 

모든 게 다 이전 그대로 있지만

그것들이 실체감이 없이 환영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더 리얼한 이 한 자리가 전체를 관통하며 둘러싸고 있어서

일체 걸리는 게 없습니다.

 

우주 전체가 이 생명의식의 바다이자

그 정신 에너지입니다.

이 자리에 깨어나면

마음에 일체 걸리고 막히는 게 없으므로 대자유라 합니다.

 

그렇다고 뭐가 이 자리에도 머무는 게 아니니

머무는 주체인 나도 따로 없습니다.

그저 이 자리만이 유아독존할 뿐

다른 건 아무것도 따로 없음이 확연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탈, 열반이라 하며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삶을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삶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