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알고 모르는 대상이 아닙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하는
바로 그 생명의식의 활동 자체입니다.
안다 모른다는 것은
이미 생각 개념의 내용물 속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몰라도 [모르겠다] 하는
바로 그 [생명의식자체]입니다.
‘이 뭐꼬?’ 하는 선문답이 있습니다.
흔히들 ‘이 뭐꼬?’ 하는 그놈이다‘라고 생각으로 이해해서 알지만
그건 완전히 아닙니다.
‘이 뭐꼬?’를 하려 해도
이게 먼저 있어야 ‘이 뭐꼬?’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이 뭐꼬?’ 할 수조차 없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끝까지 정견하지 않기에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은 지금 자기 눈앞에
세상을 비춰주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위로 있어도
저절로 보이고 들리지 않습니까?
크기도 없고 모양도 없지만
이게 나를 잊게 하는 근원 아닙니까?
이것을 찾으려면
그 어떤 생각이나 느낌도 다 놓아야 합니다.
완전히 자기를 비운 채
그냥 자각이 일어나길 기다리십시오.
완전히 무심해진 채
의식만 맑다면 저절로 스스로 깨어납니다.
손가락을 든다면
그 손가락에 무슨 뜻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비추는 이 자리가
자각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도
이 자리는 항상
지금 여기, 이미 여여하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징소리가 울린다면
그 소리에 무슨 뜻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소리가 들려지는 걸 비추는 이 자리가
자각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징소리가 울리지 않아도
이 자리는 항상 지금 여기 이미 여여하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알고 모르는 게 아니라
이 자리가 이미 항상 나로서 있었음에
문득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일체 모든 알고자 하는 마음을 다 내려놓고
무심하게 돼야 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 깨어나는 공부가 참다운 공부입니다.
그래서 분별치 말고
아는 것에 집착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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