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다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이 각각 따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미세한 분별이
우리 생각과 감각을 그렇게 호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들은
서로 이어져서 하나로 보이고 있습니다.
나와 너 사이엔 허공이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은 무심하게 볼 때에는
결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 이어져서 나타나는 상(相)들에 불과합니다.
즉 허공도 [비어 있다]라는 한 생각, 느낌으로 이루어진
분별상인 것입니다.
사진을 찍어보면
사실상은 에너지 하나 위에 쭉 이어져 있는 풍경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허공과 산
혹은 건물과 인물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순식간에
이것과 저것은 별개의 개체라는
미세한 자기 분별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깨어나려면 모든 분별이 일어나기 직전에
순수한 본래의식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때에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때에는 모든 형상들이 그 모습이라 분별되기 직전의 실체
즉 모든 게 의식활동 자체로 보이게 됩니다.
하늘과 그위 구름이나 멀리 보이는 산, 건물, 인물들도
전부 그것을 그거라고 보기 전의 순간에는
그냥 의식이 먼저 비추는 활동일 뿐입니다.
모든 사진(형상)은
인화지(의식자체) 위에 찍힌 색점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란 원리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 먼저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의식이 아직 활동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떤 형상이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한다면
모든 것은
다 내의식 한 자리에 비춰지고 투사된
상(相)들에 불과한 것임에 확실하게 깨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그 본질이 내 의식활동입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의식활동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가
전부 다 하나인 이 생명, 의식자리의 활동이라는 것을 보는 것이
깨어남이며 견성입니다.
깨어나면 허공도 다만 그 이름이 허공일 뿐
사실은 의식 하나가 충만함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허공은 결코 비어 있는 게 아닙니다.
나도 너도, 산도 들도, 자동차도 나무도, 모두 다 그럼이다.
모든 것에서 이름이 우수수 다 떨어지고
오로지 이것 하나만이 활활발발합니다.
일체가 다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형상으로 비추어져 나타나 존재합니다.
이것을 삼라만상이 다 한 뿌리에서 나왔다 하여
만법동근(萬物同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이 뿌리(제1원인)를 심안으로 보면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 부를 따름입니다.
알면 간단 명료하고 쉽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점점 더 복잡 미묘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이미 그분과 분리할 수 없는 일심동체이건만
많은 성직자들이 이 진실을 모른 채
배운 지식으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피올라정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7. 삼라만상이 설법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0) | 2025.03.06 |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6 - 생각, 느낌으로는 죽어도 알지 못하는 이것! (0) | 2025.03.05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5 - 시장 노파가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 (0) | 2025.02.27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4 -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일까? (0) | 2025.02.26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3 - 깨달음이 어떤 상태, 경지라는 착각을 버려라! (0) | 202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