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6 - 생각, 느낌으로는 죽어도 알지 못하는 이것!

Buddhastudy 2025. 3. 5. 20:00

 

 

지금 여기 생각과 느낌으로는

붙잡거나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무심하면

이미 나란 존재 현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의식을 주체, 대상, 행위로 나누어 몰아가려는 순간 어긋나고 맙니다.

이것은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며

세상을 비춰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은 몸은 이것과 분리되었기에

같은 몸이라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포도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죽은 것이란 말씀은 이 뜻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선

안이비설신의가 무라고 설하니

그 뜻은

그런 것은 다 분별 속 이름이고

실재는 이것 하나의 작용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구구절절 가르쳐 주시건만

우리는 자기 분별 속에 빠져서

끝없이 생각만 일으키며 이름만 따라다닙니다.

 

이름을 지으면 실제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관념 생각이 만든 허상일 뿐 실재가 아닙니다.

 

실재하는 것은 단 하나

살아있는 지금의 나인 생명의식과 그 활동뿐입니다.

 

그것의 활동 결과에 대해

온갖 이름을 붙이고, 나눠 분별하다 보니

우리는 자기 감각기관과 생각에 속아서

제 꿈속에 헤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실재인 생명의식 그 자체로 깨어나지 못하고

자꾸 분별 속에서 찾으니

꿈에다 망상을 더하는 꼴입니다.

 

단지 몸과 마음 이전에 먼저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만 골돌히 관하십시오.

이것을 정견한다고 합니다.

 

죽비나 종을 치면

그 소리가 일어나는 순간

항시 이것이 같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가지고

다시 주체와 객체의 행위를 나눕니다.

그게 다 이름이고

죽은 개념, 생각에 불과함에도

그 행위를 멈추지 못합니다.

 

이것을 일체 중단하면

이미 죽비 소리 그 자체이며 종소리 그 자체입니다.

 

여기에 무슨 생각과 느낌이 개입되면

이미 어긋납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같은 글을 백 번 반복해서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

이런 말도 있듯이

죽비()100번 천 번 치다 보면

절로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