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이 설법하는 소리를 듣느냐?”
선사들이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 제자가
“듣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선사는
“뭐라고 말하느냐?” 하고 다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삼라만상이 하는 설법을 들을 수 있는지요?
사실 듣는다라고 답해도 한 방망이요,
듣지 못한다 해도 한 방망이를 맞아야 합니다.
유불선을 두루 섭렵하고
문장에도 남다르게 뛰어났던 소동파가
여산의 동림, 흥룡사에 계시는 당대의 고승, 상총 선사를 찾았습니다.
선사는 소동파에게 스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유정설법만 듣고
무정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소동판은 ‘무정설법을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만 막막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정설법이라는 말만 생각하면서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정신을 잃고 한참이나 길을 가다가
문득 큰 개울물이 쏟아지는 곳에 이르러
비로소 천지가 진동하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순간
무정설법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설법이라고 해서
무슨 뜻을 담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라만상이 설법한다는 건
곧 일체가 다 이것
이 한 자리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이 한 자리란 바로
생명의식의 자리이며, 제1원인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대상, 즉 삼라만상이 뭘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을 인식하고 있게 하는
[나란 생명의식 현상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이 흐르면
그 흐르는 소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리를 듣는 이 성품 자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징소리 명상’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보이면
그 꽃을 따라갈 게 아니라
그걸 있게 하는 제1원인인, 내 의식을 돌아봐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제각각 설법을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법귀일 일귀하처] 라는
선문답을 타파하는 핵심 요체입니다.
나 없이는
세상 아무것도
따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있지 않나요?”
하지만 사실은
그건 생각일 뿐이며,
실제로는 나와 세상이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생명의식이 인식하는 활동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멸종하면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상도 멸진합니다.
즉 사라집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이러한 참진실을
바로 듣고 정견하여
스스로 활짝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럴 때 온 우주가 움찔 놀라면서
완전히 다른 살아있는 실상세계가
화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삼라만상이 설법함을
자기 안목으로 여실하게
다시 재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결코 경전이나 어록만이 법문이나 설법이 아닙니다.
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시장에서 상인들이 떠드는 소리, 차 소리 등등
모든 소리가 법문이 아닌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유정·무정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모든 행위도
일체가 법을 설하고, 진리를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설법을 토해내고 표현하는 모든 존재는
그대로가 저절로 청정법신 부처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피올라정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6 - 생각, 느낌으로는 죽어도 알지 못하는 이것! (0) | 2025.03.05 |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5 - 시장 노파가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 (0) | 2025.02.27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4 -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일까? (0) | 2025.02.26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3 - 깨달음이 어떤 상태, 경지라는 착각을 버려라! (0) | 2025.02.20 |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2 - 소리로 만나는 마음자리 밝히기 (0) | 202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