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17] 이미 이것인데 왜 보림해야 하나요 / 피올라 현대선 4강 "삶은 스스로 살아있다" 4회

Buddhastudy 2024. 7. 22. 19:30

 

 

여러분이 지금 이거라면

이것이 어디에서 왔다가 가는 거예요?

아니면 할 일이 있어요?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어요?

없죠.

왔다 가는 것도 아니에요. 항상 그냥 여기 충만해.

해야 될 일 있어요? 숙제 있어?

숙제도 없어요.

 

그다음에 목적이 있어요?

목적도 없어.

그러면 공부해야 돼요?

공부해서 알 게 아니에요.

그래서 무학이라는 거예요.

무학대사가

이거 공부해서 안 된다라는 게 무학대사예요.

이건 깨달아야지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무학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이미 그건데

왜 보림하라 그러고, 왜 자꾸 정견하라고 그러죠?

왜 그러냐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미세한 분별이 또 일어나요.

앞으로도 여러분이 보면

이거다 저거다 하는 분별.

 

그러니까 그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것이

꿈속에서 또 꿈을 만드는 행위야.

여러분이 꿈속에서 귀신이 쫓아왔는데

도망가야지그래서 도망갔다고 합시다.

도망가면 절대

꿈에서 귀신이 쫓아온다고 해서 도망가서 성공한 예가 없어요.

그게 왜 그럴까?

 

자기가 귀신을 만들고, 귀신하고 놀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가 그거를 분리해 놓을 수 있을까?

깨어나기 전에는 안 되는 거예요.

 

, 그래서 여러분이 이미 영원한 진리고

스스로가 지존이고

이거를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하나 된 거예요.

이걸 부처라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나는 누구인가?’

식스존에서 배우셨을 거예요.

[나는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나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가장 좋은 보림이 뭐냐 하면

나는 이것이다.

좀 전에 여러분이 깨달은 이거를

자기로 삼는 거예요.

 

근데 이거를 삼는 방법이

이것이다 이것이다 하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이것이 아닌 것들은 다 분별로써 내려놓음으로써

이것이 점점 더 나로서 확연히 드러나게

이렇게 해야 돼요.

아시겠죠?

 

그래서 특히 여러분이 보림을 해나가실 때 보면

예를 들면 가장 큰 장애가

가족관계, 자식 문제, 돈 문제, 이성 문제, 자존심 문제, 명예 문제

이런 것들이 참 놓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올수록

그것이 정말 나를 철저하게 정견하라고

공부시켜 주는 스승님이 오신 거예요.

그렇게 보셔야 돼.

 

그러지 않고 이거를 이 마음공부나 깨달음공부를

세상에 살기 힘드니까

도망가려고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좀 회피하려고.

이거라도 공부해 보면

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공부하시는 분이 많다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앞으로는

고통이나 괴로움이나 힘든 상황이 오면

그걸 정면으로 마주해야 돼요.

 

여러분이 한마디로

우주의 사생자부가 되려는, 마스터가 되려는 존재가

무섭고 두려운 걸 도망 다니면서 어떻게 그게 되겠어요?

 

무섭고 두려운 것을 정면으로 응시해서

그 상대가 그게 내가 무섭고 두렵다고 여겼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워진 것이라는 걸 봐야 돼요.

그 실체를 보면

이거 다 내가 만든 꿈이야

그게 보림입니다.

 

그게 깨어났지만

여러분 꿈을 꾸다 악몽을 꾸다 깨어났지만

아직 확연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되냐면

눈은 떴는데도

그 꿈속에 있었던 악몽의 상념이나 어떤 에너지들이

아직도 나를 휘감고서

식은땀을 흘리게 하거나 심장을 뭐 벌렁벌렁 뛰게 하거나

그럴 수가 있잖아요.

그런 것에서 확연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

그것을 보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삶은 여러분이 지금

사실 지금 이대로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가 이미 깨달음인데

이제 자꾸 이거다 저거다

이렇게 불경이나 이런 것들이

자꾸 그런 얘기를 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왜 설법 중에 보면 그런 게 있잖아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다가 중간에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마지막엔 다시 산이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이런 3단계 설법이 있잖아요.

 

그게 왜 그러냐면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중생 시절에는 그 이름에 떨어지는 거예요, 상에 떨어진다고요.

아 저렇게 생겼으니 산이지

이렇게 흐르니까 물이지

이런 상에 떨어져 있는데

 

이게 중간에 가서는 한 번 이거를 아니다라고 흔들어줘야 돼요.

아니다.

왜 그러냐면

그래야 내가 산이다라고 하고 있고

내가 물이다라고 하고 있는 거구나.”

이게 스스로 산이고 물인 게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하고 있구나

이거를 봐야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이 다 그렇게 하고 있구나.”

 

우리는 사실 이렇게 요만한

그 길 가다가 물웅덩이를 보면

이걸 바다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미친 사람 아니고는 아니에요.

 

근데 개미들이 볼 땐 그게 바다여 ,안 그래요?

개미는 바다라고

 

그럼 이게 바다가 맞아?

그냥 물웅덩이가 맞아요?

어느 게 맞아요?

아무것도 본래 맞는 게 아니에요.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봐야 되는 거거든.

그래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되는 거예요.

 

근데 또 거기가 있으면 뭐가 되냐면

솔직히 말하면

또 다른 자기 분별 속에 있는 거예요.

 

즉 과거에 일반인들이 다 빠져 있는

반대편 분별에 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중도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온전한 중도로 돌아오기 위해서

다시 그것도 분별이다라고 놓는 거예요.

그러면 완전하게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거로 돌아오는데

과거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거하고는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요.

 

과거하고 달라진 점은

내가 산이라고 하니까 산인 것이다고

물이라고 하니까 물인 것이다를

확연히 알고 있어요.

 

우리들이 산이라고 하니까 산이고

물이라고 하니까 물일 뿐이다이거지

그 산이잖아 물이잖아

이게 아니라니까 아시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이 사실 나라고 하는 것도 생각이고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생각이고

깨달았다고 하는 것도 생각이고

무슨 법이라고 하는 것도 생각이고

사실은 진짜 마지막에 가면

있는 그대로 그냥 모든 게 다

생각이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환상 세계 속에서 살았구나.

 

마지막에 깨어나면

정말 모든 게 다 잡 생각이었구나

이것밖에 없어요.

딱 깨어나고 보면

그냥 이거 한 자리가

스스로 찬란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거야.

생생하게 매 순간 활활발하게 살아있다고요.

 

그러니까 정말 저 아이들이

에너지와 기운이 넘쳐서 막 뛰어다니고

세상의 조금만 일이라도 깔깔거리고 좋아하는 걔네들은

무슨 생각이 없어.

그냥 그냥 매 순간 이 활발발한 이거로 살고 있거든.

생명 에너지로 살고 있거든.

 

근데 여러분들은

그 얼굴은 어디로 가고

지금 다 우거지상들이 돼 있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다 우거지상이 돼 있죠.

왜 그럴까?

이거다 저거다를 너무 많이 했거든.

 

자기가 만든 생각의 삶 속에,

생각의 감옥 속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삶은 스스로 살아있고

그 안에서 나니, 너니, 법이니, 깨달음이니

이런 건 전부 다

사실 우리들이 만든 망상에 불과하다

이런 거를 여러분이 철저히 한번 보셔야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깨어남이 와요.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보림을 해나가는 것을

공부하지 않는 공부라고 그래요.

공부를 하지 않는 공부다.

 

이게 만공스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거는 스스로 살아있는 이 생명의 이 자리를 자꾸 더 밝게 드러나게 하고

참 나의 본래면목인 이것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경험을 말하는 거예요.

그게 공부하지 않는 공부예요.

 

이제 아직 여러분들은 이런 얘기를 들었어도

또 해븐존 들어가면 이런 얘기가 계속 반복되고

여러 가지 실습 체험을 합니다.

그래서 이거를 더 확연하게 해주는 거예요.

 

그렇지만 결코 여러분의 살아온 업습이

여러분은 만만하게 안 물러나요?

그렇게 간단하게 안 떨어진다고.

걔가 끝까지 붙어 있을라고 그래.

 

그러니까 자기하고의 어떻게 보면 싸움인데

이거를 홀가분하게 떼어내는

그런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

오늘 이제 제 강의는 끝났고요.

여러분의 질의응답을 잠깐 갖겠습니다.

뭐가 이렇게 궁금하시거나 알고 싶은 게 있으시면은

지금 손 드시고 질문하세요.

 

 

공부하는 방식이 진리 아닌 것들을 제거하라

제거하는 방식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오늘 좀 이렇게 확 와닿았던 게

일체가 이거 아닌 게 없다라는 말이 좀 와닿았거든요.

일체가 이거 아닌 게 없는데

이거 아닌 걸 제거하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알고 있어요. 질문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거는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 질문 반드시 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아주 나는 이 질문이 굉장히 반갑습니다.

오늘 이 강의에 이 질문이 안 나오면

내가 참 섭섭할 뻔했어요.

정말 매트릭스님 감사합니다. 좋은 질문 하셨어요.

 

불교의 진정한 깨달음은 중도예요, 중도.

근데 중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좌측에도 치우치면 안 되지만

우측에도 치우치면 안 돼요.

 

그래서 처음에 진리 아닌 걸 제거하라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이냐 하면

처음에는 생각, 감정, 느낌, 이런 오온에 해당하는 것을

불경에도 나오잖아요.

오온개공, 그걸 다 공하다고 봐라.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제가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걸 따라가지

이거의 배경을 안 따라간다고

 

*!

이러면 소리 따라가지

이 소리를 듣는 배경 자리를 안 따라가요.

 

그러니까 방편으로 이거는 진리가 아니니까

이거 따라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오온을 진리가 아니니까 따라가지 말아라.

 

그래야 *! 이걸 듣는 자리가 확연해지고

이거가 나타나서 이거를 있게 하는

이 배경 자리가 확연해지는 거예요.

손가락이 5cm짜리가

 

여태까지 우리는 손가락이 5cm짜리에 대해서 신경이나 썼어요.

안 썼죠?

다 손가락만 신경 썼잖아요.

그래서 방편으로

진리가 아닌 것을 제거하라이런 걸 방편으로 쓰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니까 이 생각 감정 느낌

우리 식스존이 그거라고요.

생각, 감정, 느낌 이런 것은 다 진짜 내가 아닌

내가 너무 이걸 쫓아다녔구나.

 

이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를 쥐고 흔드는 생각, 감정, 느낌들로부터

자꾸 그것을 잊게 하는 이 배경의 이 생명 자리, 이 배경의 의식 자리로

자기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하는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산이 산이 아니고 이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방법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그거는 공부하다 만 거예요.

이제 그 마스터를 가면

여러분 이제 해븐존은 이거의 완성판이에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그냥 뭐 천국에 사는 것 같고

뭐 진짜 이거 하나가 옛날에 이게 아닙니다.

이거 하나 드는데도 황홀해.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실 법상을 또 만드는 거예요.

요거의 배경이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앎이 진리다라는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분별 생각 속에 빠져 있는 거라고

왜 그러냐?

 

*!

이걸 아는 자리가 있네.

그죠?

지금 이 소리를 아는 자리가 있죠.

그게 진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소리 따라가지 말아라.

소리는 진리가 아니다.

 

지금 이런 수준에 계신 거예요. 다들.

 

그런데 마스터에 가면 무슨 공부를 하게 되냐면

그러면 아는 놈만 진리면

이 소리는 진리가 아닌가?

 

소리도 진리예요.

?

소리도 생명의식이 있으니까 생명의식의 활동으로 나타난 현상이거든

 

이렇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너무 좌측에 치우쳤던 거를

, 이거 아니야하고 우측에 갖다 놓은 거예요.

 

진리가 아닌 것을 제거하라

그럼 우측으로 점점 오기 시작해요.

그다음에 마지막에 가서는

이것도 아니야하고 가운데 갖다 놓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근데 지금 처음에 여기 있는 거를

여기 갖다 놓을 수는 없어요.

?

인간의 의식 구조는

항상 이것과 저것을 쌍을, 쌍차쌍조를 하면서

이것에 의지해서 저것 있게 하고

저것에 의지해서 이걸 있게 하는 이분법 분별 속에

상대성 속에 빠져 있다고

 

이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은 이거 치고 이쪽으로 끌고 와야 돼요.

이쪽으로 온 다음에 이것도 쳐야 돼요.

 

그래서 진리라는 것을 제거하라는 방편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제거하면

그다음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고 하는

가르침이 또 있습니다.

 

이거는 부처님도 그렇게 쓰셨던 그 처방이시고

그 헤겔의 변증법, 정반합

바로 그 원리예요.

 

그러니까 지금 주신 질문은

굉장히 좋은, 날카로운 질문을 해 주셨는데

이거는 학교 프로그램을 따라오시면

자연히 스스로 눈이 이렇게 밝아지시게 돼 있어요.

 

나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 생각의 이 패러다임이

여태까지 살아온 삶이

상대성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 한두 마디로 거의 안 고쳐집니다.

이렇게 쥐고 흔들어야 돼.

쥐고 흔들어서 넋이 빠질 때까지 흔들어야만

이것들이 빠져나가요.

 

답이 됐나요?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