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깨어남이라는 게 뭐냐?
깨달음이다, 깨어난다라는 게 뭐냐 하면
스스로 살아있는, 삶이 스스로 살아있는
이 생명 자리, 삶의 자리를 재발견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어려운 게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신다면
지금 제가 이렇게 그림을 하나 그려놨어요.
이거 보이나?
여러분이 지금 몸이 이렇게 있고
그리고 여기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이렇게 있어요.
이렇게 있죠.
그리고 여러분이 이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고 인식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다른 대상들이
예를 들어
여기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또는 나무가 있다거나 이러면은
깨달음도 다른 대상으로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깨달음은 전일성, 단일성이라서
깨달음은 뭐냐면 바로 이거 전부예요.
여러분이 지금 자기 눈앞에 벌어진 나를 포함한 이 모든 게
이거라고요.
이거는 뭘 의미하냐면 이게 생명이라는 거야.
이게 생명이 있으니까, 의식이 일어나지.
그래서 이 자리가 바로 진리 자리라는 거예요.
여러분 눈앞이
그냥 자기가 이 자리야
자기 없는데 이게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까 물속에서 물 찾는다는 거고
자기가 그건데 또 다른 자기를 찾는 거예요.
대상화시켜서.
여러분이 이따가 한번 밖에 나가 봐.
밖에 나가 보면
이 세상이 전부가 다 나인 거예요.
왜?
다 이게 내 의식이기 때문에.
다 내 의식이 만든 거예요.
여러분 의식이 없으면
이게 나타날 수가 없어요. 그죠?
순간적으로 분별에 떨어지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무슨 분별?
저건 나무다. 저건 아무 개다. 저건 집이다.
그래서 정견하라는 거예요.
정견을 빈틈없이 하면
내가 저걸 나무다, 저건 아무개다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돼요.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 세상은 이런 곳이다’라고 내가 창조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렇게 봄으로써
내가 그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내가 그렇게 분별함으로써.
그래서 천국이 지옥이 됐어요.
왜?
내가 지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이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천국이 되겠어요?
그래서 여기가 본래의 피안인데도 불구하고
여기가 차안이 돼버렸어요.
여기가 예토가 돼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손가락을 한번 들어봐요.
다 자기 손가락 한번 들어봐요.
자기 손가락 위에, 5cm 위에 뭐가 있나?
자 100점짜리 문제입니다, 5cm 위에 뭐가 있는지 답변하실 분?
뭐가 있어요?
예 매트릭스님, 뭐가 있어요?
의식, 비교적 좋은 답인데 그것도 분별이에요.
자, 의식이란 이름 붙이기 전에
그게 뭔가를 다시 한 번 봐요.
허공도 이름이잖아요.
아까 의식보다 더 못한 답이에요.
의식이 있고 난 다음에 허공이라는 분별이 일어나지
여러분이 이렇게 분별 중독증에 빠져 계시다고.
자, 5cm 위에 뭐가 있을까요?
나
누가 누가 답한 거예요?
선영님, 99점까지 갔어.
내가 나라고 하면 이게 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 아닌 게 있어요. 이렇게 되면?
이 요 손가락 위에 5cm짜리
이게 사실 내 의식이거든.
근데 이것도 내가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쓴 말이지
의식이라는 말 하기 전에 이걸 봐야 돼.
이게 나 없이 있냐고 이게.
나 없이 이게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나인 거여.
그런데 더 멋진 대답은 없을까?
나라고 한 거는 아주 웬만한 학교에서는 다 100점짜리인데
선방에 가면 100점 아니에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여러분 거기 바로 ‘나’라고조차 하기 이전에
이 자리가 있어요.
이 자리가 이런자리, 이런자리가 있는 거야
지금 이렇게 말하기 하고 있는 이 자리가 있는 거야.
여러분을 살고 있는 그 자리가 있단 말이에요.
바로
*!
이 자리가 있는 거예요.
알아들으시겠어요?
또 알쏭달쏭, 또 머리 굴리고 계신 분 계시네.
제발 머리 좀 굴리지 말고
내 얘기를 그냥 그냥 가슴을 열고 그냥 받아들여 봐요.
왜 정리하려고 들어
얼마나 정리를 잘하셨길래 평생.
정리 좀 하지 말아요, 이제는.
정리해서 별 볼 일 없었잖아.
이제 탁 그냥 탁 내려놓고
“애라 내깔겨 버려봐야 네가 어떻게 가나 한 판 붙어보자.”
그러면 손가락이 5cm라면
10cm 위는 그거랑 다른 거예요?
똑같죠.
1미터 위는 달라요?
다 똑같죠.
모든 게 다 이거 하나라니까요.
그냥 우리는 그 속에서 그거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게 이 몸뚱아리를 만들었어요.
그게 이 몸뚱아리를 인연과 조건에 따라
그냥 시절 인연에 따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어느 날 웬 선남선녀가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바람에
내가 생겨났는데
그건 이미 몸이 생겨난 거고
여러분의 본래진면목은 계속 그냥 이놈이 살고 있는 거예요, 이놈이.
그러니까 이제는 여러분이
존재의 중심을 이 자리를 확실하게 옮기면 옮길수록
여러분 앞에 벌어지는 세상이 달라지는 거야.
근데 내가 이렇게 가르쳐주면
이걸 깨달아야 되는데, 이걸 또 머리로 정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알음알이로 또 정리 해.
“아, 그 손가락이 5cm
요게 허공인데 그것이 생명이라고 하니까” 등등
이렇게 해서 쫙 정리를 해
노트 필기까지 해.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때때로 그걸 또 봐야 돼.
노트가 자기의 도야
잊어버리지 않게
이렇게 공부하시면 그분은 구제 불가예요.
깨어나야 돼요. 지금 깨어나야 돼.
나의 본 모습에 대해서
정말 자기가 철저하게 정견하고 깨어나야 돼요.
나는 내가, 나라고 했던
이 몸이나 생각이나 이런 게 아니고
이 모든 것이구나
이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거구나
이거에 정말 깨놔야 돼.
자 그래서 제가 선사들의 언행
이걸 확실하게 이걸 계합한다고 그래요.
이걸 계합하면 그거를 진리다, 자유다, 해탈이다, 천국이다, 열반이다, 구원이다, 영생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에요.
별거 아니에요.
근데 이거를 자꾸 분별해서
앎의 자리니, 그 자리니, 이것이니, 뭐 생명이니, 빛이니
이런 거로 자꾸 ‘이것이다’라고 한정하기 때문에
분별에 빠지는 거예요.
그것도 신조처럼 붙들고 있으면
진짜 그거는 고질병이 되는 거죠.
그런 걸 다 놔버리면 이미 그거라
그래서 진리란 무엇입니까?
호떡이다, 똥 묻은 막대기다.
심지어 뭐 별소리를 다 해도 다 맞는 거예요.
‘12시 10분입니다’ 하면 안 되나?
진리가 무엇입니까?
‘12시 10분입니다.’
토끼털, 거북불, 뭐 이렇게 해도 되는 거고
그 선문답이라는 게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니에요, 다 말장난이에요.
그거 안다고 해서 무슨 보림이 확실히 되는 것도 아니고 .
자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소식을
이게 눈앞의 소식이라는 건데
선사들의 언행을 우리가 보면
그러니까 누가 그 자리를 물어보니까
바로 그 조주 선사는
“이렇게 물어보는 니가 부처다” 이렇게 답변한 거예요.
근데 그 네가 라고 할 때 그 너라고 하는 게 이 몸이에요?
그게 아니죠
그냥 이걸 말하는 거예요. 이거, 이거.
여러분 제가 지금 설법을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말을 누가 하고 있어요?
머리가 하고 있나? 입이 하고 있나?
누가 하고 있어요?
이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하고 있는 거라고
이게 설법 하고 있는 거예요. 알겠죠?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염불삼매
그 염불삼매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그럼, 누가 염불하고 있는 거야?
염불산매에 들어가서
정말 이 염불이 내가 되고 내가 염불이 되면
누가 염불하고 있는지를 알아야지
그냥 뭐 무작정하고 있으면 그건 무슨 소용있어.
누가 염불하고 있죠?
이게 염불하고 있는 거예요.
*!
이미 부처가 염불하고 있어.
자 또 육조 혜능은
아니 누가 이제 깨달음 인가받으라고 왔어요.
그랬더니 육조 혜능이 뭐라고 했냐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하고 물어봤어요.
무슨 물건이
그랬더니 그게 막혀서
이 사람이 8년간 참구하고 다시 왔어요, 8년 만에.
그래서 육조혜능이 똑같이 다시 물어봤어요.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그랬더니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라고 답변한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앞에 지금 제가 말하는 이 이것이라고 하는 게
마치 물건 같지만, 뭐 대상 같지만
한 물건이라는 건 이 말은
대상으로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물건이 대상이야.
이걸 대상화할 수 있어요?
이게 대상화된다면
나하고 이게 쌍이 되는 거예요. 대립이 되는 거라고.
근데 나도 이 안에 있잖아, 그렇죠?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또 그러면
“아, 없구나”
이건 여러분 분별이에요.
‘맞지 않다’라고 했지, ‘있다 없다’라고 말을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약견제상비상이면 했을 때
비상이라는 말을 왜
공상이라고도 안 하고, 무상이라고도 안 하고, 유상이라고도 안 했는지
왜 아닐 비를 썼는지 그걸 알아야 돼.
내가 ‘이거다’라고 하는 그 짓을 그만하라는 얘기예요.
근데 자꾸 그 짓을 하고 있잖아.
이거다 저거다.
그러니까 뜰 앞에 잣나무니, 똥 막대기니, 호떡이니, 마삼근이니
이런 말들이 전부 다 뭐냐 하면
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오는 말들이에요.
지금 이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뭐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이거를 아주 현대적으로 쉽게 말하면
생명이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깨어난 거야.
“아, 내가 이제 봤더니, 이 우주 전체를 있게 하는 생명 그 자체구나.”
“내가 정말 이 모든 차원을 초월한 초월적 존재로서의 섭리적 존재구나”
그거에 깨어난 거예요.
근데 이거를 말로 아무리 이렇게 이해하고, 정리하고
이렇게 해서도 알 수가 없고
또 자기가 자꾸 이거다 저거다 해서
참구하고 추구하고
이렇게 알려고 들어가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자꾸 한정하게 돼.
대상을 만들고
자꾸 구체적으로 한정하게 돼서
이렇게 파고들어요.
그렇게 되면 공부, 이게 망조 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거는 그 안목을 바로잡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이 깨달음 자리를 보는 데는 도움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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