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하루를 잘 돌이켜 보시면
자기를 인식할 때가 더 많아요?
인식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자기도 모르게 그냥
길을 걷는데 자기도 모르게 걷고 있어.
내가 뭐 또박또박
“자, 789번째 걸음이다”
이렇게 안 하고 그냥 걸어요. 그죠?
집에 가는 길은 옆 사람하고 뭐 떠들고 하면서도
운전 잘하고 갑니다.
심지어는 카톡까지 하면서 가요. 안 그래요?
그거 누가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를 살려주고 있고.
예수님이 이걸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 들판에 피어 있는 백합을 봐라.
“누가 수고로이 기싸움하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저 혼자 저렇게 아름답지 않느냐?
하물며 인간인 너희들한테”
그러니까 그게 그 자체가
여러분들 자체가 이미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부분이고 부처님의 일부분이에요.
그냥 부처라고.
근데 이거를 지금도 열심히 생각해서
기억하겠다고 막 눈알을 돌리는 분도 계시고
왜 무슨 기억을 해서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어디 가서 무슨 보물 잡으시겠다는 거예요? 왜요?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거...
잊어버리세요.
오늘 여기서 제가 말한 거 다 잊어버리세요.
상관없어요.
왜?
이미 그건데 기억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죠?
이거 아는 대상이 아니라고요.
알아야 될 지식이 아니요.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이 순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이것뿐이에요.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게 뭐냐?
문 앞에 와서 노크를 하면
문을 열면 영접하는 거예요. 그죠?
문을 연다는 게 뭐냐?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거기에 무슨 생각이, 기억이, 수행이 필요합니까?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생각으로부터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의 상징적인 표현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게 마치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 핸드폰하고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핸드폰하고 똑같아.
근데 핸드폰이 전기 없이 작동이 됩니까?
여러분 밤에 충전을 해야
핸드폰이 다음 날 쌩쌩하게 쓸 거 아니에요, 그렇죠?
여러분 밤에 왜 주무시는데?
핸드폰 충전하는 거예요.
어디다 꽂죠? 코드를 어디다 꽂냐고?
생명 자리에 꽂잖아. 하나님 자리에.
여러분 밤에 잠잘 때 하나님한테 날 맡기고 자지
“내가 자야지” 하고 자는 사람이 있나?
지금부터 잠들어갑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이러고 세우고 들어가요.
아니면 저절로 들어가?
다 내 맡기고 저절로 들어가잖아요.
근데 뭐 그렇게 악을 쓰고 살아, 안 그래요? 그렇죠?
지금도 그렇게 살려지고 있어요.
자기가 사는 게 아니고.
지가 분별하고 있는 거예요.
있다 없다, 이거다 저거다, 도를 알아야 된다,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만나긴 뭘 만나?
이미 같이 있는데.
자 그래서 뭐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이런 게 다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의 본질이 뭐냐 하면
이름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생들한테는 세상의 본질이
이름을 뒤집어쓴
실상은 뭐냐 하면
생명의식 활동이에요.
생명의식 활동에 우리는 이름을 뒤집어 씌우고
이름만 보고 있는 거야.
형상하고 이름만.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거예요.
그 분별 망상심 때문에.
여러분 잘 봐요.
여러분이 뭘 보는 순간
여러분은 이름하고 형상만 봐.
이걸 보면
“아, 교장이 볼펜을 들었다” 이것밖에 더 봐요. 그죠?
그러니까 죽었지.
이거를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체하고 하나가 돼봐
여기 무슨 이름이 있어요?
여러분의 삶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어?
살아있는 진리를
자꾸 죽은 박제를 만들려고 하는 게 우리들의 작업이에요.
평생 하는 짓이에요.
죽고 난 다음에도 또 그 짓 하지.
자, 그래서 여러분들이 진짜 깨어난다면
세상에서 우수수 이름들이 다 떨어져야 돼요.
이름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게 평등해집니다.
왜? 다 내 의식이니까.
내 의식 아닌 게 있나?
이것도 내 의식
이 컵도 내 의식
볼펜도 내 의식
허공도 내 의식이에요.
우리 잠깐 명상 실습해 봅시다.
여러분 눈앞에, 지금 허공을 보고 계시죠?
눈앞에 뭘 보고 계세요?
눈앞에서 허공을 보겠다면
벌써 자기 생각 분별에 빠진 거예요.
이건 이름이라고요? 허공이라는 건, 그죠?
아무것도 보지 마세요.
눈을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본다 할 때
비로소 이걸 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무것도 보지 말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봐봐요.
또 있는 그대로에 빠지지.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드러나는 게 있습니다.
아무것도 시선을 꽂지 마세요.
뭐가 있어요?
거기 내가 있잖아.
참다운 내가 있어.
참나가 거기 있어요.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고 부처님이 계시다고.
허공조차 이름을 떼버리면
여러분 눈앞에 참나가 있어요.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보이는 것
스스로 드러나는 것
다 이것뿐인 것.
자 이제는 제가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의식이니 생명이니 이런 것조차도 이름을 다 떼보세요.
그것도 다 이름이니까.
다 떼면 뭐가 있을까?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따 오후에 돌아가셔서
한번 그거에 대해서 명상해 보세요.
의식이니 생명이니 이름조차도 다 떼버렸을 때
내 눈앞에 뭐가 있나.
아시겠죠?
뭐가 있을까?
거기 뭐가 하나 있어요.
맨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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