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56] 깨어난 눈으로 세상을 보다 / 피올라 현대선 9강 "삶자체가 체험이다" 7회

Buddhastudy 2024. 12. 10. 19:29

 

 

비유를 하나 더 들면은

우리가 꿈을 꾸면 꿈속에 세계가 나타나죠.

꿈을 꾸면 꿈속의 세계가 갑자기 나타나죠.

그럼 여기 반드시 꿈속의 세계에는

내가 있고

또 거기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처녀 귀신이 나타났어.

그러면 뭐 빠지게 도망가야죠.

처녀귀신이니까 치마는 입혀야지.

 

꿈이 이렇게 나타났어요.

근데 뭔가 무서운 존재가 쫓아오고 있어요.

그래서 뭐 빠지게 도망가.

 

근데 여기서 꼭 보면 이럴 때 보면

미끄러지거나 길이 험해.

순탄한 길이면 얼마나 좋아

뭐 자동 슬라이딩 도어면 얼마나 좋아.

꼭 보면 길이 험해.

산도 나타나고 바위도 있고, 길이 험합니다.

잡힐 듯 말 듯 도망가요.

 

그런데 재미난 거는

우리는 내가 이 꿈속에서 도망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거를,

전체를 이렇게 지켜보는 시선이 있어요.

이 꿈 전체를 알고 있는 시선이 있다고.

 

그러니까 이 꿈 전체를 알지.

즉 우리는 요 속에 요게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꿈이 깼어.

꿈이 사라졌죠.

꿈이 사라지면 이것도 사라질까요?

꿈이 사라졌다, 꿈 깼다라는 걸 아는 놈은

그대로 있어.

이놈은 항상 있어.

 

여러분은 깊은 밤에 주무실 때는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에요.

이게 눈 뜨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깊은 밤에 아무것도 없이 잘 주무셨다는 거를

아침에 눈 뜨고 아는 거예요.

그거 없이는 잘 잤다 못 잤다를 몰라요.

즉 이거는 계속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그러면 여러분 잘 봐요.

여러분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게

여기 장면만 바뀌지

이 장면은 자꾸 바뀌잖아요.

 

여기 나는 고정 붙박이로 있지만

여기 다른 등장인물들은 자꾸 바뀌잖아, 상대가.

a, b, c 자꾸 바뀌잖아, 그죠?

이건 자꾸 바뀌지만 이건 고정 붙박이로 있고.

 

그런데 이게 꿈하고 뭐가 달라요?

본질적으로 똑같아.

왜냐하면 꿈도 생각, 감정, 느낌이고

현실도 생각, 감정, 느낌이에요.

 

여러분들은 지금은 더 리얼하고

꿈은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잖아요?”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꿈속에서 여러분들이

이건 꿈이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떨어지네

이런 생각한 적 없어.

다 리얼이라고 생각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침이면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평생 깨어난 적이 없는 거야.

평생 진짜 깨닫기 전에는 깨어난 적이 없는 거야.

? 계속 생각, 감정, 느낌 속에 살기 때문에

자기가 깨어났다라는 생각, 느낌 속에 사는 거야.

깨어난 적이 없어.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예수님이나 불경에서 말하는 깨어라라는 말이

이런 잠에서 깨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가 바로 이 하나님 그 자체가

너한테 불어넣어 준

생명 그 자체라는 이 진실을 깨달으라는 거야.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라는 것을.

 

성경에 그 말 있잖아요.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줬다라는 말이 있죠.

흙으로 인간을 빚어서 생명의 숨결

 

여러분이 그러면 흙이야? 생명의 숨결이야?

생명의 숨결 아니에요?

근데 왜 자꾸 자기를 흙이라고 생각해?

 

생명의 숨결은 어디서 왔어요?

생명에서 왔잖아.

하나님이 영원해야 돼? 영원하지 않아?

영원하죠.

그럼, 왜 근데 자기는 자꾸 죽으면 없어진다고 그래?

다 분별망상이거든요.

다 자기가 만든 거예요.

죽어봤나? 어떻게 아나?

 

여하튼 꿈에서 이런 일들이 있는거나

현실이나 똑같다라는 거예요, 구조가.

생각, 감정, 느낌의 장난 속에서 살고 있다

좋다 나쁘다, 이거다 저거다 하면서.

 

그런데 딱 깨어나면

그게 악몽이든 또는 좋은 꿈이든 간에

꿈은 다 꿈일 뿐이에요.

 

물론 좋은 꿈이면 더 좋겠지.

그렇지만 꿈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차이가 없어요.

 

이렇게 되면

자각몽이라는 것은

요게 우리가 보통 꿈에서는

요 속에 자기가 중심이 의식의 중심이 여기 가 있어요.

그래서 이걸 잘 몰라.

 

그런데 자각몽이 되면

중심이 여기 가 있고

얘는 한 10%밖에 안 가 있어.

그래서 이게 자각몽에서는 꿈인 줄 아는 거야.

 

마찬가지로 깨달은 사람을 비유하자면 이와 같아요.

존재의 중심이 여기 있어요.

 

그래서 이 육체에 달린 눈이나 감각은

10%, 20%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거야.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지만

거기에 존재의 중심이 거기 가 있지 않아요.

 

이렇게 돼야 여러분들은

모든 게 환상임을 볼 수가 있어요.

 

어떤 게 실재화, 리얼리티를 갖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건 리얼리다라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리얼이 된 것뿐이에요.

 

꿈속에서도 리얼이다 하니까

꿈이 리얼이 됐잖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견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돼요.

깨어 있음이 일상화돼야 돼요.

 

그렇게 되면 마치 이와 같은 상태가 돼요.

온 우주 전체, 세상 전체가

하나의 눈 안에 있어.

 

그리고 나머지는 다

이 눈에 의해서 투사되고 비춰진 환영들처럼 보여야 돼요.

 

그거를 불교에서 법안이라 그러고

그리고 그 기독교에서는 깨어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별게 아니고

이 눈으로 이걸 보면 이게 색즉시공이 되죠.

그다음에 여러분이 색즉시공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만약 여러분의 의식을 잠시 여기에다가 페이어텐션을 해가지고

이거를 10%짜리 한 50%로 증폭하면

이게 색즉시공이 공즉시색이 돼요.

 

여러분은 이미 공즉시색 많이 하면서 살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야

안 그래요?

자기 번뇌 걱정 근심을 막 공즉시색 해서

그냥 증폭을 시켜서

자기를 충분히 괴롭히고 있지 않아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이미 몸소 실천하시는데

문제는 너무 괴롭다는 게 그게 문제야.

너무 괴로워.

 

즉 핵심은

내가 이 짓하고 있구나라는 거에 깨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나 자체가

나라는 이 존재 현상 자체가

진리의 현상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나

너무 신묘하지 않아요.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으로 사시면서

모든 것에 움직임에 같이 하고 계시거든.

 

그런데 또 그 모든 것 속에서

그것이 독자적으로 살아오면서 만든

생각, 감정, 느낌의 자유를 또 허용하시거든.

야 참 절묘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눈 뜬 자는

이걸 꿰뚫어 보고

눈 감은 자는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못 보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생각, 감정, 느낌만이 전부인 줄 아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