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를 하나 더 들면은
우리가 꿈을 꾸면 꿈속에 세계가 나타나죠.
꿈을 꾸면 꿈속의 세계가 갑자기 나타나죠.
그럼 여기 반드시 꿈속의 세계에는
내가 있고
또 거기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처녀 귀신이 나타났어.
그러면 뭐 빠지게 도망가야죠.
처녀귀신이니까 치마는 입혀야지.
꿈이 이렇게 나타났어요.
근데 뭔가 무서운 존재가 쫓아오고 있어요.
그래서 뭐 빠지게 도망가.
근데 여기서 꼭 보면 이럴 때 보면
미끄러지거나 길이 험해.
순탄한 길이면 얼마나 좋아
뭐 자동 슬라이딩 도어면 얼마나 좋아.
꼭 보면 길이 험해.
산도 나타나고 바위도 있고, 길이 험합니다.
잡힐 듯 말 듯 도망가요.
그런데 재미난 거는
우리는 내가 이 꿈속에서 도망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거를,
전체를 이렇게 지켜보는 시선이 있어요.
이 꿈 전체를 알고 있는 시선이 있다고.
그러니까 이 꿈 전체를 알지.
즉 우리는 요 속에 요게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꿈이 깼어.
꿈이 사라졌죠.
꿈이 사라지면 이것도 사라질까요?
꿈이 사라졌다, 꿈 깼다라는 걸 아는 놈은
그대로 있어.
이놈은 항상 있어.
여러분은 깊은 밤에 주무실 때는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에요.
이게 눈 뜨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깊은 밤에 아무것도 없이 잘 주무셨다는 거를
아침에 눈 뜨고 아는 거예요.
그거 없이는 잘 잤다 못 잤다를 몰라요.
즉 이거는 계속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그러면 여러분 잘 봐요.
여러분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게
여기 장면만 바뀌지
이 장면은 자꾸 바뀌잖아요.
여기 나는 고정 붙박이로 있지만
여기 다른 등장인물들은 자꾸 바뀌잖아, 상대가.
a, b, c 자꾸 바뀌잖아, 그죠?
이건 자꾸 바뀌지만 이건 고정 붙박이로 있고.
그런데 이게 꿈하고 뭐가 달라요?
본질적으로 똑같아.
왜냐하면 꿈도 생각, 감정, 느낌이고
현실도 생각, 감정, 느낌이에요.
여러분들은 “지금은 더 리얼하고
꿈은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잖아요?”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꿈속에서 여러분들이
“이건 꿈이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떨어지네”
이런 생각한 적 없어.
다 리얼이라고 생각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침이면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평생 깨어난 적이 없는 거야.
평생 진짜 깨닫기 전에는 깨어난 적이 없는 거야.
왜? 계속 생각, 감정, 느낌 속에 살기 때문에
자기가 깨어났다라는 생각, 느낌 속에 사는 거야.
깨어난 적이 없어.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예수님이나 불경에서 말하는 ‘깨어라’라는 말이
이런 잠에서 깨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가 바로 이 하나님 그 자체가
너한테 불어넣어 준
생명 그 자체라는 이 진실을 깨달으라는 거야.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라는 것을.
성경에 그 말 있잖아요.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줬다”라는 말이 있죠.
“흙으로 인간을 빚어서 생명의 숨결”
여러분이 그러면 흙이야? 생명의 숨결이야?
생명의 숨결 아니에요?
근데 왜 자꾸 자기를 흙이라고 생각해?
생명의 숨결은 어디서 왔어요?
생명에서 왔잖아.
하나님이 영원해야 돼? 영원하지 않아?
영원하죠.
그럼, 왜 근데 자기는 자꾸 죽으면 없어진다고 그래?
다 분별망상이거든요.
다 자기가 만든 거예요.
죽어봤나? 어떻게 아나?
여하튼 꿈에서 이런 일들이 있는거나
현실이나 똑같다라는 거예요, 구조가.
생각, 감정, 느낌의 장난 속에서 살고 있다
좋다 나쁘다, 이거다 저거다 하면서.
그런데 딱 깨어나면
그게 악몽이든 또는 좋은 꿈이든 간에
꿈은 다 꿈일 뿐이에요.
물론 좋은 꿈이면 더 좋겠지.
그렇지만 꿈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차이가 없어요.
이렇게 되면
자각몽이라는 것은
요게 우리가 보통 꿈에서는
요 속에 자기가 중심이 의식의 중심이 여기 가 있어요.
그래서 이걸 잘 몰라.
그런데 자각몽이 되면
중심이 여기 가 있고
얘는 한 10%밖에 안 가 있어.
그래서 이게 자각몽에서는 꿈인 줄 아는 거야.
마찬가지로 깨달은 사람을 비유하자면 이와 같아요.
존재의 중심이 여기 있어요.
그래서 이 육체에 달린 눈이나 감각은
10%, 20%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거야.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지만
거기에 존재의 중심이 거기 가 있지 않아요.
이렇게 돼야 여러분들은
모든 게 환상임을 볼 수가 있어요.
어떤 게 실재화, 리얼리티를 갖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건 리얼리다라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리얼이 된 것뿐이에요.
꿈속에서도 리얼이다 하니까
꿈이 리얼이 됐잖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견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돼요.
깨어 있음이 일상화돼야 돼요.
그렇게 되면 마치 이와 같은 상태가 돼요.
온 우주 전체, 세상 전체가
하나의 눈 안에 있어.
그리고 나머지는 다
이 눈에 의해서 투사되고 비춰진 환영들처럼 보여야 돼요.
그거를 불교에서 법안이라 그러고
그리고 그 기독교에서는 “깨어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별게 아니고
이 눈으로 이걸 보면 이게 색즉시공이 되죠.
그다음에 여러분이 색즉시공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만약 여러분의 의식을 잠시 여기에다가 페이어텐션을 해가지고
이거를 10%짜리 한 50%로 증폭하면
이게 색즉시공이 공즉시색이 돼요.
여러분은 이미 공즉시색 많이 하면서 살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야
안 그래요?
자기 번뇌 걱정 근심을 막 공즉시색 해서
그냥 증폭을 시켜서
자기를 충분히 괴롭히고 있지 않아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이미 몸소 실천하시는데
문제는 너무 괴롭다는 게 그게 문제야.
너무 괴로워.
즉 핵심은
“내가 이 짓하고 있구나”라는 거에 깨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나 자체가
나라는 이 존재 현상 자체가
진리의 현상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나
너무 신묘하지 않아요.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으로 사시면서
모든 것에 움직임에 같이 하고 계시거든.
그런데 또 그 모든 것 속에서
그것이 독자적으로 살아오면서 만든
생각, 감정, 느낌의 자유를 또 허용하시거든.
야 참 절묘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눈 뜬 자는
이걸 꿰뚫어 보고
눈 감은 자는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못 보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생각, 감정, 느낌만이 전부인 줄 아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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