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뭐에다 뭐를 내어 맡기느냐?
이거를 우리가 한번 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이거죠.
도대체 뭐를 뭐에다 내어 맡기는 거냐?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보면
자기 몸이 여기 있다는 건 누구나 알죠.
그다음에 마음도 있다는 걸 알죠.
마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지금 잠깐 저 눈을 감고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을 이렇게 눈앞에 떠올려 보세요.
떠오르죠?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그죠?
눈 뜨고 떠올려 봐요.
눈 뜨고도 떠오르죠.
이 앞에 있는 보이는 사물하고 겹쳐져서 떠오르잖아요.
좀 희미하긴 해도 그죠?
이게 마음이에요.
마음이 이렇게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자기가 부분적으로
부분적이라는 건 뭐냐 하면
이 세상 전체가 있는데 거기서 이 몸이 부분이죠.
이 마음도
이 세상 전체가 있는데 여기에서 이 마음이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죠.
이건 다 알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대상이 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거를 모르는 거야. 지금.
절대적인 존재를.
근데 이거를 알려면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이 사라져 줘야 돼.
그럼 이게 나타나게 돼 있어.
그런데 자꾸 대상으로 잡으려고 드는 거예요.
그 짓을 하기 때문에 못 깨닫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뭐든지 자꾸 대상을 잡으려고 그래.
제가 여기 뭐 그렸어요?
별 그렸죠?
여기 뭐가 있어요?
여기서 뭐가 보이냐고?
대부분의 사람이
칠판에다가 별이든 달이든 점을 찍든 하면 뭐가 보이냐 그러면
별 보인다고 그래요.
근데 사실 우리가 여기 정상적으로 본다면
칠판과 별이 동시에 보여야 돼.
근데 우린 별만 봐요.
이게 습관이 됐어.
자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잘 봐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옆을 막 지나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자기한테 특별해 보입니까?
아니면 그냥 무슨 사물 물체처럼
그냥 흐릿한 신기루나 이미지처럼 팍팍팍 지나갑니까?
후자죠.
그러다가 그 사이에 아는 친구나 가까운 사람이 딱 나타났어.
그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어때요?
아주 특별하고 선명하게 보이죠.
이게 마음이에요.
벌써 분별하고 있는 거야.
“이건 특별하다” 안다, 이거지.
근데 여러분이 깨어나려면
항상 이 별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칠판을 더 먼저 보기 시작해야 돼.
아는 사람이 오든, 모르는 사람이 오든
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는 이 바탕.
이 세상의 칠판이 뭐예요?
허공.
허공이라고 누가 말씀하셨는데
허공도 사실은 여러분이 갖다 붙인 이름이에요.
이거 허공이라고
그러니까 생각이라고
그러면 생각 이전에 이 허공에는 뭐가 있을까?
여러분 우리 한번 실습을 해 봅시다.
지금 잠깐 허공을 보는데
아무것도 안 본다고 하면서 보세요.
아무것도 안 보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허공을 보세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본다고
아무것도 안 보겠다.
초점을 아무 데도 안 맞추겠다.
*!
자, 그럼 뭐가 보여?
...
자 여러분이 허공에 초점을 안 맞추고 그냥 있으면
그게 바로 자기예요.
그게 바로 자기의 존재가 그대로 있는 거야.
이거를 생명자리라고 그래요.
여러분의 생명자리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현상들이 다 있는 거지.
여러분의 생명자리가 없으면
이 모든 게 있을 수가 없어요.
즉 허공을 보면서 초점을 안 맞추면 거기에 뭐가 있느냐 하면
내 생명이 있는 거예요.
내 의식이 있는 거라고
순수의식
이렇게 말로 하면
생각이 막 쫓아가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해.
그러니까 내가 참 이거 미치겠어.
왜냐하면 생각을 이용하지 않고는
도대체 그걸 넘어서면 되는데
그걸 안 넘어서는 거야.
넘어서 본 적이 없는 거야. 여러분들은
그것만 넘어서면 되는데
이게 선사들이 말하는
[백척간두 진일보]하란 말이에요.
그 생각으로
아 요거요거 요 짓을 그만하고
그 너머의 모름의 세계 속으로 쑥 들어가 보란 말이야.
근데 그 짓을 안 하거든
왜?
당황스럽거든
해보지 않았거든.
해보지 않은 짓을 안 하고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어요?
다 아는 세계 속에서만 돌면
어떻게 알 수가 있냐고
아직 모르는 거를
안 그래요?
그러니까 좀 그렇게 해봐요, 하라는 대로.
자 허공에 보면서
초점을 안 맞추고 허공을 보면 뭐만 있을까?
이거 말로 하기가 참 어렵죠.
뭔가 근데 있기는 있지 그죠?
뭔가 있긴 했는데 말로 할 수가 없다.
그럼 그게 여러분 지금 잘 생각해 봐요.
여러분이 지금, 여기 지금 있는데
자기가 있다라고 하는 그 느낌이 있죠?
누구나 다 자기가 여기 있잖아.
근데 이 느낌은
이 손을 비벼서 느끼는 이런 느낌하고는 다른 거예요.
구체적인 이런 느낌이 아니고
그냥 뭐가 있음이야
이건 느낌도 아니야.
느낌 같지도 않아.
근데 뭔가 있어.
직관은 우리는 알고 있어.
그거를 우리는 보고 있고, 알고 있죠.
안다는 것도 생각으로 막 굴려서
“아, 이게 허공이구나” “뭐구나”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직관으로 이렇다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죠 이렇다라는 걸 보고 안다고
그걸 [각]이라고 그래요.
覺
불교에서 말하는 각이라고 하는 게
각, 각이라는 게 뭐냐 하면 한마디로
[앎 그 자체]라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허공을 보면서
초점을 안 맞추고 허공을 보면
여기에 뭐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자각해야 돼요.
그게 여러분의 생명 현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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