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82] 실상을 봐야 자유를 얻는다 / 피올라 현대선 13강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1회

Buddhastudy 2025. 3. 18. 19:45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여기 기독교인들도 많으시니까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도 고등학교 때는 저희 휘문고등학교의 기독교반 반장이었어요.

대학 들어가서도 우연히 불교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기독청년회에 열심히 다녔고.

 

그런데 제가 기독교나 불교를 다 아우르는 입장에서 보면

사실은 하나님이다, 부처님이다

다 그냥 이름표들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다 이름표들이예요.

똑같은 진리를 가르치는 이름표예요.

 

그러니까 저는 마치 이거와 같아요.

우리가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는데

베이스 캠프를 가봤더니

베이스 캠프 가는 길, 영어로 써 있는데

그 밑에 네팔어로 써 있어.

또 그 밑에 중국어로 써 있어.

그럼 중국어 중국 사람은 베이스 캠프 가는 길이라는 걸

중국말로 보지, 네팔은 못 알아봐

저건 뭔 소리야? 그죠.

딱 이 차이예요.

 

내가 아는 거는 오케이?

내가 모르는 글자, 아 저건 이상한 거.

이게 우리들의 그 기본적인 인식 구조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러분들이 정말 그 깨어난 사람이라면

기독교든, 불교든, 천주교든 동학이든 뭐든

그게 진리를 향하는 말씀이라면

딱 보면 속이 다 보여야 돼,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교회 성경 보고서

이게 뭔 소리야?” 하고 물어보면

목사나 전도사들이 슬슬 피해요.

 

그 말을 자기가 한다고 해놓고

진짜 핵심적인 얘기는 안 해.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

 

대표적인 게

요한복음 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아니 태초에 어떻게 말씀이 있어?

말이 안 되잖아

사람이 있든지 하나님이 있든지 해서

하나님이 말했다든지 뭐 주체가 있어야 말을 행위가 있지

거두절미하고 말씀이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런 건 설명을 못해.

그걸 슬쩍 넘어가, 피해요.

 

그러니까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왜 그런지 아세요?

자기가 가진

나는 인간이다라고 하는 의식 구조를 못 벗어났기 때문이에요.

이게 자기가 인간인 한은 안 보여, 이게 무슨 뜻인지.

 

그러니까 여하튼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진리를 가르치는 말

하나님, 부처님, 무슨 브라흐만 뭐가 됐든 간에

진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잖아요.

진리가 두 개면 진리끼리 싸움 날 거 아니야.

야 그거 아니야 이거야

어쭈뭐 이렇게 될 거 아니야, 그렇죠?

 

 

그 진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일 수밖에 없는 진리를 왜 두 쪽을 낸 건 누가 낸 거예요?

사람들이 낸 거죠.

 

그러면 진리가

, 너희 난 하나인데 왜 니들끼리 그렇게 멋대로 나를 반쪽 냈어?”

진리가 그렇게 시비할까요? 아니면 그냥 가만 놔둘까요?

그냥 진리는 가만 놔두고 있어요.

 

?

실상은 허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인간이 자기가 허상이기 때문에

실상보다 허상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 진리라는 말이 기독교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성경을 보면

3단계의 말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

두 번째는 그거를 전하는 사람의 말씀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 같은 거.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의 얘기예요.

 

그다음에 제일 아랫 단계는 뭐냐 하면

이런 정황을 설명하는 마태니 마가니 무슨 요한이니 이런 사람들의 얘기

이렇게 3단계가 있는데

그 세 개를 똑같이 보면 안 돼요.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불교에서도 최고의 궁극의 목표가 뭐예요?

깨닫는 거는 방편이에요.

목표는 [열반]이야, [니르바나] 아시겠죠?

니르바나를 우리가 알기 쉬운 말로 전환하면 뭐냐 하면

진리와의 합일, 하나 되는 거야. 계합이야

완전한 계합

그게 니르바나, 열반이에요.

 

근데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영어 성경을 보면

영어 성경은 진리를 [트루스]라고 번역하고 있어요. Truth,

이거 중학교 2학년이면 나오는 영어예요.

 

근데 헬라어에는 어떻게 돼 있냐면

알레테이아라는 말이 있어요.

진리를 알레테이아라고 그래.

이 말의 원래 뜻은 뭐냐 하면 실상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게 왜곡됐는지 아시겠죠?

왜곡되고 왜곡되고 또 왜곡된 거를 진리라고 보고 있어요.

 

봐요.

예수님이 쓰신 말은 헬라어도 아니에요.

그거는 아람어라고 그래요.

아람어를 그 당시에 제자들이 그거를 아람어로

 

예수가 죽은 다음에 제일 먼저 쓰여진 성경이 뭔지 아세요?

그거는 여러분이 이렇게 성경에 무지한 거야.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도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가 제일 빨리 써진 거예요.

왜냐?

예수 죽은 다음에 100년 뒤에 썼거든.

몇십 년 뒤에 썼거든.

 

그다음에 그거 보고 다른 사람들이

나도 써야지해서 100, 200년 뒤에 써지기 시작한 것들이

요한복음, 마태복음 이런 것들이에요.

 

그러니 보세요.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됐고

헬라어에서 또 그다음에 또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그다음에 그게 또 라틴어로 번역되고

라틴어에서 또 영어, 불어, 프랑스어 이런 거로 번역되고

그거 보고 또 한국말로 번역됐고

이게 도대체 몇 번 번역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현재 우리 그 한국 교회가 쓰는 이거는

미국 성경을 그냥 한글로 번역한 거예요.

 

그러니까 도처에 보면

너무 말이 안 되거나 왜곡된 게 많아서

제대로 된 뭐야

신학교에서는 헬라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원전을 보자, 우리가.

 

그러면 헬라어에는 알레테이아라고 하는 것이 실상이란 뜻이에요.

실상의 반대는 뭐지?

허상을 말고 실상을 찾아보자라는 게

바로 진리를 말하는 거예요.

 

이러면 불교하고 기독교하고 뭐가 달라?

그런데 그걸 진리라고 트루스라고 번역했어.

 

이게 실상과 진리가 어떻게 다르죠?

...

 

진리는 여러분의 생각이에요.

이게 진리다.

여러분이 생각 안 할 때 진리가 있어?

진리가 나 진리야 좀 알아줘하고 나오던가?

아니죠.

진리는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있어요.

근데 실상은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있지 않아요.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실상은 스스로 I AM THAT I AM으로 그냥 있어.

근데 진리는 여러분을 의지하고 있어.

여러분의 생각을 의지하고 있다고.

 

그 진리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미 허상이야.

어떻게 다른지 아시겠죠?

 

자 그래서 사실은 성경책은

실상이라는 걸 영어로 번역한다면 너무 어려운 말 뺀다면 리얼리티예요. 리얼리티.

 

그런데 여러분 영화 매트릭스를 보세요.

거기 보면 네오가 끝없이 물어봐요.

그 누구야 네피어슨가한테

“What is reality?” 뭐가 실상이냐?

“What is truth?”라고 안 물어봐.

 

자 진리로 거듭나는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찾아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도 뭐라고 그랬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그랬고

부처님 뭐라 그랬어요?

너희가 깨달음을 통해서 마지막에 가야 되는 곳, 열반

열반이라는 게 뭐라고?

실상의 상태.

진리로 거듭나는

 

그러면 우리가 그 길을 알아봐야 되잖아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