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이 평등지 자리를 처음 하고
이거 수시로 자기한테 생활화하고 습관화를 들이면
여러분은 몸 밖에 벗어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이제 점점 더 선명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자기가 자기 몸을 대상으로 봐요.
이것처럼 본다고.
그리고 몸에 안이니 밖이니 이런 것들이 뚝 끊어져요.
그냥 이게 하나의 사물처럼 대상처럼 보이기 시작해.
그런데 이것도 그렇게 뚜렷한 게 아니야.
내가 있다 하면 뚜렷해 보이고
그냥 관심 끊으면 흐릿해졌다 없어져 버려.
생멸이 내가 집중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렇게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이것조차.
해봐요.
뭐 무슨 별 소식 같은
여러분도 다 돼.
다 됩니다.
자,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일상에 체험이 돼야 돼.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동그라미 안에
내 몸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봐
그리고 눈곱도 떼고, 화장도 하고 할 때는
얼마나 자기 얼굴이 선명해.
근데 지금 바쁜데 화장실 가서도 소변 보고, 바로 돌아나와야 되는데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췄을 때 선명해?
아니면 허깨비 같은 게, 그림자 같은 게 슬쩍 지나가 버리고 말아?
후자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다음에 누가 하는 짓이야?
지 마음이 하는 짓 아니에요.
선명하다 흐리다, 있다 없다.
이렇게 자기 마음이 하는 짓에 깨어나야 된다고.
모든 거를 내가 이렇게 만들어내고 있고, 창조하고 있고, 분별하고 있는 거예요.
깨달음은 이 평등지에서
모든 분별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돼요.
그럼 내가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예를 들어
내가 여기서 누구랑 어떤 여자랑 얘기를 해, 파마를 했어.
그러면 이 여자랑 내가 사귄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렇게 둘이 얘기를 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은
옛날에는 이 여자가 아주 이쁜 여자, 돈이 많은 여자면
내가 그 환심을 살려고 애를 썼을지 몰라도
이제 여러분이 평등제 자리가 확연해지면
그러면 그런 마음이 일어난 거가 자기가 다 보여, 자기 마음에.
“잘 보여야 되겠다” 또는 반대로
“적당히 말하고 이 자리를 떠나야 되겠다”
“상대방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정리해야 되겠다” 등등
모든 게 환히 보여, 지 마음이.
왜?
평등지에 있으면
모든 분별이 객관화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죠?
평등지에 못 있기 때문에
자기 차별지 분별지가 나를 쥐고 흔드는 거예요.
그거랑 자기 동일시하거든.
여러분이 왜 속상하고, 걱정 근심이 많고, 왜 우울해지는지 알아요.
그런 생각 감정 느낌을 자기 동일시를 해.
그걸 나라고 여긴다고.
자기도 모르게 떨어지는 거야. 붙잡는 거야.
그래서 자기를 고통으로 몰아 넣어요.
그래서 항상 평등심에 깨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모든 게 내가 주인이 되는 거야.
이걸 내가 키워 말어?
근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자기 고통을 키우는지를 몰라.
왜?
습관화 돼 있거든.
이런 걸 키우는 게 습관화됐어.
그래서 인생이 괴롭고 힘든 거예요.
왜 우울하냐고?
지가 그런 감정을 키워냈거든.
그 땔감이 뭐냐 하면 탐진치야.
-남하고 비교하고
-옛날하고 비교하고
-뭐가 안 돼서 섭섭하고
-남하고 뭐 뭐는 어쨌는데
이런 거 계속하면서 그놈을 키워.
그러고 자기가 괴롭다고 그래.
그러니까 평등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평생 이러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여러분이 하실 일은
바로 소승불교에서도 하는 그 공부나
부처님이 가르치신 처음에 가르치신 가르침, 12연기를 가르치셨는데
그게 뭐냐 하면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이렇게 12가지가 돼요.
근데 [무명]이라는 게 뭐냐 하면
이 평등지에 깨어 있지 못한 거야.
그래서 자기 분별 속에 금방 빠지는 거죠, 금방.
그렇게 되면 어떤 자극이 온단 말이에요.
그럼 자극을,
자극이 오는 거를 느끼는 것부터가 [행]이야.
그리고 [식]이 어떻게 돼요?
그거를 자기가 느끼고
그거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하든지
뭔가 거기에 대해서 반응 태세가 나오든지 그렇게 되죠.
그러면서 거기에 [명색]을 붙여요.
명색이라는 게 뭐냐?
모습은 어떻고, 이름은 어떻다라는 그거에 대한 키워드를 부여해.
이름은 김 아무개인데
나쁜 인간이다, 좋은 인간이다, 친절하다, 사기꾼 같다 등등
이런 걸 잽싸게 붙여.
그러고는 그거를 자기의 어디 마음 안에 저장을 해요.
바로 버리는 게 아니고 저장을 또 해.
그렇게 저장하면서 그것이 자기 안에서 살아나, 하나의 정보로서.
자기 안에서 그건 살아나는 거야.
그래서 그게 필요할 때마다 튀어나와.
이제 이렇게 해서 12연기가 쫙 전개되거든요.
그런데 이 깨어난 사람은
이 모든 게 다 평등지 자리에서는 그런 게 있어 봤자
다 내 말 한마디에 다 꼴깍 다 죽어버리거나 지워버릴 수 있어.
애니타임 콜이야 그냥.
항상 지워버릴 수도 있고, 힘을 못 써.
무슨 말인지 알겠죠?
다 아는데 그게 나를 쥐고 흔들지 못해.
심지어 내 탐지엔치까지도.
내가 누구한테 섭섭한 얘기를 들었어. 기분 나빠.
기분 나쁘다는 것까지도 객관적으로 보여.
그게 나를 어쩌지 못하는 거야.
저놈이 나한테 사기치려고 그래.
그것도 다 아는데도
오히려 지혜롭게 그 사기 치려는 그 마음을 살짝 뒤집어서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하고서 그거를 돌려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거야.
자, 이렇게 우리가 깨어난다는 것은
모든 것에서 평등지가 기반이 된 분별이 시작되면서부터 깨어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깨어난다는 게 뭘 말하냐면
자기 몸에서 벗어나 있다, 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몸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것은
의식이 순수한 본래의 참의식, 순수의식 자리를 회복했다는 얘기야.
그리고 그것은 이 동그라미
즉 생명장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이게 부처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깨어나기 위해서는
그 여러분이 이런 것을 일상화해야 되는데
그걸 위해서 한번 우리가 조금 더 실습을 해보도록 합시다.
자 이제 뒤에다 물어봐야지.
뒤가 도대체 뭐 이름표도 안 보이고 자 먼저 나한테 물어보세요.
손 드실 분 없어요 뒤에
그러면 정원 님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요.
정원 님 이게 내 마음 안에 있어요. 밖에 있어요.
이 컵이 정원 님 안에 있어요.
밖에 있어요. 마음 안에 있어요 밖에 있어요.
내 마음과 같이 있으면
아 마음은 또 어디 있는데 또 같이 있다고 그래요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투게더야
마음은 어디 있는데 같이 있다니까
내가 물어보는 거예요.
마음은 어디 있어요?
마음은 어디에나 있죠
그러면 컵도 어디에나 있나
내가 인식을 했으니까 있기 때문에요.
아 그러니까 본인이 있다고 분별했고
인식 분별했기 때문에 있다.
그러면 안에 있어요. 밖에 있어요.
그러면은 밖에 있다가 안이 된 거 같은데
밖에 있다가 안이 됐다고
그럼 그 안팎의 기준은 뭐예요?
아 내가 너무 짓궂지
저 인식하기 전 인식하고 있다라고
인식하고 나 내가 인식
캔드라는 걸 안 순간은 이제 아니
저기 있네라는 까지만 했을 때는 바뀌고
그러니까 안팎의 기준을 인식으로 삼은 거예요.
응 더 정확히 보면 그것도 분별이야.
지금 우리 정원 님이 보사령하고 있으니까
다 같이 박수
한번 자기를 희생해서 이렇게 남을 가르치잖아.
그러니까 크신 보살림이지
이거 봐요. 안이다 밖이다
내가 인식한 게 기준이다
이런 게 다 자기 분별 아니에요 자기 생각이잖아 그렇지
실제로는 아니고 바뀌고 이런 게 다 내가 던진 함정일 뿐이에요.
내가 분별한 거라고
그러니까 다음번부턴 그런 거는 저 교장 선생님 분별입니다.
이렇게 답변을 해야 돼.
안팎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야 내가 좀 공부 잘 됐구나 이렇게 그렇죠
그러니까 이 컵이 여러분이 이 컵을 이렇게 보는 순간에는 잘 봅시다.
이게 언제부터 컵이야
정원 님 언제부터 컵이야 다섯 컵이나 라고 한 수 그렇지.
자기가 보고
이거 컵이라고 이름 붙인 때부터 컵이야.
그렇지
이게 만약 아프리카 컵 처음 보는 사람한테
흑인 데려다가 이거 뭐냐고 물어보면 컵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모든 것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너는 내가 나한테 와서
내가 꽃이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나한테 와서 꽃이 되었다
이런 문장이 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이것도
너는 내가 컵이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나에게 컵이 되어 온 거야.
그렇죠
그렇다면 이게 비단 컵뿐이겠어요?
너는 내가 예쁘다고 봤을 때
비로소 나한테 와서 예쁜 사람이 된 거고
너는 내가 몹쓸 사람이라고 했을 때
비로소 나한테 몹쓸 사람으로 온 거야. 그렇죠
그럼 내 주변에 목숨 사람이라고 이름표 많이 붙이면 붙일수록
누가 괴로워 무슨 말인지 알겠죠
평등지는 사라지고 분별지, 차별지 속에서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그게 뭐야?
자꾸 색즉시공인데
색에다가 자꾸 이름표를 붙이니까
이 사람은 거꾸로 공즉시색의 삶을 살고 있는 거지.
그렇죠
그래서 분별 망상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거예요.
좋아요. 정원 님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그자범 님
이게 무정살법이래 이게 왜 무정설법이에요?
한번 설명 좀 해 주시면
아까는 보는 거 가지고 얘기했어요.
이제 듣는 거 갖고 얘기하는 거야 왜 무장설법이죠?
누가 설법하는 거예요? 누가 보는 거죠? 누가 듣는 거죠?
이 자리가 듣는 거죠
여러분 지금 이 지금 이거를 보고 아는 그 자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게 이것도 듣는 거예요.
여러분 무슨 귀가
공기의 매질을 통해서 소리가 전파로 바뀌어가지고 와서
달팽이 인간을 통해 갖고 뭐 뭐야
그 그 고막을 두들겨 가지고
이거는 이제 학교에서 배운 거고
그러면 내가 한번 물어봅시다.
내가 옛날에 그 참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꿈이 있는데
파가니니가 내 꿈에 나타나서 나한테 멋진 바이올린 곡을 연주해 주는 거야.
근데 내가 이게 꿈인 거를 분명히 알거든.
왜냐하면 생시에 파가니니가 나한테 와서 연주할 리가 없잖아.
그 수백 년 전 사람이
그래서 내가
야 너무 기막힌 곡인데 이거 악보 좀 보여달라.
내가 저 꿈 깨면 이거 좀 기억했다가 바이올린 곡 연주 좀 해달라고.
근데 내가 꿈속에서 무슨 핸드폰이 있어 카메라가 있어
그러니까 이거 외우는 수밖에 없잖아.
악보를
그래서 파가니니가 기가 막힌 연주를 하고 나한테 악보를 또 보여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거를 첫 꿈이라고 생각하고 이 첫 한 소절을 다 외웠어요, 꿈속에서.
꿈 깨고 나서 재생한다고 이 곡은 아니었어요.
그럼 여러분 잘 봐.
파가니니가 꿈속에서 나한테 바이올린 연주를 해줄 때
그게 무슨 공기 속에 이 소리가 전달돼서
뭐 무슨 뭐 파동이 돼 갖고 달팽이관을 통해서 고막을 두들겨서 소리를 내가 들은 거예요.
아니잖아요.
그거는 세간법 얘기고
이 여러분이 출세간법상으로는 소리를 그렇게 듣는 게 아니거든.
아무리 여러분 고막을 때려 봤자
여러분이 관심이 딴 데 가 있으면 그 소리 안 들려요.
그래서 내가
아 이게 여담인데 그걸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재빨리 그 오선지에다 그걸 그려 잡고서
내가 아는 그 바이올린 연주자인데 이것만 좀 해달라고 해봤어요.
그랬더니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때 알았어
이 마음이 나를 속였다는 것을
마음이 나한테 사기쳤다는 것을
즉 다시 말하면 마음이 그럴듯하게 꾸몄지
그 곡 자체를 그대로 재생하진 않더라는 거예요.
사기친 거야.
“나한테 깜빡 속았지?” 하고
그래서 내가 그 다음부터 마음을 안 믿게 됐어.
아 요놈이 완전히 사기꾼이구나
그럴듯하게 보여주는데
그것까지는 요놈이 미처 준비를 못 했어.
그러면 이 소리가 왜 무정설법이냐
여러분의 이 살아있는 이 이 생명 법신 자리가
이걸 듣고 있거든
그러니까 이 소리 자체가 그거를 이게 진리임을 그 자리를 가르쳐 보이는 소식이에요.
이미 여러분이 이렇게 몸 밖에 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한번 앞뒤나 옆에 사람하고 악수 한번 해보세요.
그럼 어떤 느낌이 있죠?
손에 그렇죠 그럼 그 느낌이 또 질문해 봅시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요? 몸 밖에서서 일어나요?
자 그대로입니다.
안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어디서 일어나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동문서답을 하시면 어떻게 어디서 일어나요?
저는 저는 안 남과 같아서 같이 일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 내가 내가 안팎이라는 함정을 던졌더니
여전히 안팎에 빠져 있으시면 안 되지
이 이 느낌이 몸 안에서 일어나느냐 밖에서 일어나느냐 이렇게 물어봤잖아요.
그럼 안팎이라는 거는 거두절미하고 어떻게 해야 되겠어
이러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무슨 또 뭐 여기저기 할 것도 없어요.
근데 또 왜 자꾸 내가 던진 덫에
여전히 저 붙잡혀 가고 안에서도 아니고 밖에서도 아니고
이러면 한 대 맞아야지
자 이렇게 여러분 봐요.
아니다 밖이다라고 하는 것은 3
차원 공간 속에 우리의 감각 개념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렇죠
근데 이 자리에는 3차원이 아니라고 내가 했죠.
그러면 아니오 바뀌오.
안이라고 하면 안이 되고
밖에라고 하면 밖에 되고
안과 밖의 경계가 없이 다 일어납니다.
해도 되고 안팎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왜 여러분은 그렇게 복에 달렸거든
그러니까 제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느 게 맞는 답이지 하는 순간
이미 여러분은 어떻게 되지 맞고 틀림이라는 논리 프로그램 안에 갇힌 신세가 된 거야.
세 장 안에 갇힌 새라고
좀 이런 데서 자유해 봐요.
어 무슨 말인지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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