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뭘 말하냐면
생명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얘기예요.
사실 이미 그거 자체인데
번뇌망상 때는 자꾸 그걸 가리는 거예요, 자기가.
그리고 자꾸 자기를 한정하고, 뭐라고 자꾸 규정하고
끝없이 분별하고.
그러니까 마치 호숫물에 자꾸 물결이 일어나면
호수 바닥이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자꾸
“가만히 있어라, 있는 그대로 있어라”
이런 말을 자꾸 하는 이유가
자기가 어떻게 하려고 하는 그거 좀 놓으라는 거죠.
두 번째 시간에서, 좀 이따 명상실습도 해보겠지만
여러분이 한번 이걸 생각해 봅시다.
아까 내가 얘기했잖아요.
이 동그라미, 지금 여러분 의식의 불이 들어온 이 자리가
여러분은 이거를 허공, 시공간 이렇게 이름을 붙여요.
근데 나한테는 이게 허공도 아니고 시공간도 아니야.
나한테는 이게 나야.
이걸 내가 돼야 돼요.
그럼 내가 어디 있는 거야? 어떻게 있는 거야?
여러분 이것이 어디에 한정돼 있어요?
아니면 ‘어떻게’라는 스타일로 자기 특색을 갖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죠?
그래서 아까 내가 말했죠.
이 자리 안에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이 나타났지만 다 사라져 갔다고.
지금 한번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봐.
이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야.
별것이 아니에요.
근데 우리는 그 나타난 건건마다, 그 성들마다 붙잡고 씨름을 하거든.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이거다 저거다 하다 보니까
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깨어 있는 자리로 못 가고
계속 상 쫓아가서 시비분별만 하다, 이 세상을 종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걸 좀 거시적인 안목으로 통째로 봐봐 삶을.
삶을 통째로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이거 안에 수많은 일들이 막 이렇게 일어났다가 또 이렇게 사라지잖아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죠?
근데 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이 잘 봐요, 여러분이 있는 것 같지만
어느 때 실제로 있냐 하면
여러분이 ‘있다’ 할 때 있어.
이거는 현대과학도 인정하는 바예요.
사람이 하루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무슨 바이트라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중에서 캐치해서
그거를 인식하고, 그거에 대해서 분별하는 게, 전체의 10%가 안 된대.
그러니까 90% 이상은 그냥 패스하는 거예요, 그 정보들을.
근데 자기가 다 깨어서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에요.
/어차피 여러분이 있다고 해야 있는 거야.
여러분이 관심 없는 거는 다.../
여러분 생각을 잘 봐요.
자기 생각도 내가 있다고 해야 그놈이 생각이 세지지
이런 무슨 “헛생각이네”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요.
안 그래? 그렇죠?
그래서 인생은 색즉시공이자, 공즉시색인 거야, 매 순간이.
살아있는 그냥 이거의 움직임밖에 없어요.
즉 이 동그라미가 살고 있는 거지.
제가 지금 강조하려는 말이 이거야.
이 동그라미가 살아있는 거지.
이 안에 내가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이 동그라미가 나를 살려주고 있고
이 동그라미가 나를 체험하게 해주고 있고, 나를 느끼게 해주고 있고
이 동그라미가 통째로 살아오고 있는 거예요.
이거 여러분 눈이 봐? 아니면 이 자리가 봐?
이 자리가 보는 거거든.
왜냐하면 눈이 아무리 봐도
그 눈 뒤에서 ‘아무개가 손 흔들고 있다’라는 걸 인식 분별 못 하면은
이거 보는 게 아니거든.
그 짓을 누가 하고 있겠어?
이 자리가 하고 있거든.
이거는 여러분의 아바타라는 게 그 말이에요.
여러분이 이 3차원 물질세상을 사는 아바타라는 게 그 말이라고.
여러분이 이 자리에 확고하게 계합을 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 안에 일어나는 수많은 분별의 화살표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거를 분별을 좀 쉬어 봐야 돼.
그러면 이 자리가 점점 더 확연해져.
그래서 이거를 [분별지]라고 하고
이 분별 안 하고 이 자리만 의식하고 있는 거를 [평등지]라고 그래요.
평등지라는 게 다시 말하면
멍때리기야.
여러분 멍때려봐.
그럼 눈앞에 뭐가 구별이 잘 돼요? 안 돼요?
안 되죠. 다 똑같지?
여러분이 진짜 멍때릴 때는
자기 몸뚱아리하고, 이 컵 하고가 똑같다 이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여러분이 넋을 딴 데 뺏기고 있거나, 다른 데 관심 있을 때는
자기 몸이나 컵이나 종이나 다 동등해, 차별이 없어.
근데 의식이 돌아온 다음에
내가 그렇게 차별을 만드는 거예요.
“이거 내 몸이니까 소중하고, 이런 거 뭐 다 별거 아니야 뭐”
그렇게 자기가 분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평등지 자리에서는 이치가 다 똑같다고.
이렇게 이 자리가 확연해서 모든 게 다 똑같아져 봐야 돼.
이걸 체험해 봐야 돼.
이걸 체험 못하면 여러분은 이 자리에 계합을 못하는 거야.
진짜 모든 것이 다 평등해야 돼.
내 새끼든 남의 새끼든
내 몸뚱아리든
내 몸뚱아리가 길가에 개가 싼 똥덩어리하고 똑같이 보여야 돼.
“그 둘을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습니까?”그러면
그래, 그렇게 살아야 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래야 여러분이 진짜 살아있는
이 영원한 이 대생명의 자리하고 계합이 돼요.
왜냐하면 진리는 어느 하나도 배척을 안 하거든.
모든 걸 품고 있고, 모든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떻게 그거는 아니고 이거는 맞고, 이거는 좋고 저건 나쁘고,
하는 그 짓을 해서
전체와 계합을 하겠냐고, 안 그래요?
평등지 지금 한번 해볼까?
평등지 한번 해봅시다.
자 별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여기 별을 하나 그렸어요.
자 지금 이 별을 뚫어지라고 보세요.
별로 예쁜 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정성껏 그린 별이니까, 보세요.
별에 집중하세요.
별에 집중!
부처님 새벽별이 될지도 몰라.
별에 집중이 잘 안 되시는 분은 이 점에 집중해 보셔도 좋아
둘 중 하나에 집중해 보세요.
네, 좋습니다.
여러분이 점에 집중하신 분?
별에 집중하신 분?
둘 다 손 안 드시는 분은 뭐야?
자, 뭐에 집중했든 간에
여러분이 이거에 집중할 때
자기의식에 이것만 오롯이 있었죠.
그럼 나머지는 다 평등해진 거야.
평등지 공부가 별개 아니에요.
뭐 하나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평등해. 안 그래요?
내 몸조차도 이거하고 평등해.
왜?
관심이 저기 가 있으니까.
그러면 그 집중한 감을 알죠?
자 그걸 살려서 이걸 지워버렸어.
이제 그거로 있어 봐.
아무것도 집중할 대상이 없어.
자기 아까 이것에 집중한 그놈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으로 있어 보라고
모든 게 평등했던
요걸 제외한 다른 곳이 평등했잖아요.
이제는 별이나 점까지 지워버리고
모든 것이 평등했던 그것으로 있어 보라고.
요게 멍 때리는 거 하고 아주 비슷한데
다만 앎이 성성할 뿐이야.
.
.
.
.
이 자리에서는 모든 게 평등합니다.
왜?
분별이 안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분별이 안 일어나고 있어요, 집중한 게 없거든.
.
.
자 뭔가 체험이 왔어요?
뭔가 허공 같은 부유감 같은 걸 느끼는 사람도 있고
아무 느낌도 없는데 그냥 의식만 맑아지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혹시 무슨 느낌이나 체험이 오신 분 손 들어봐?
네 말씀해 보세요.
...
앎이 성성해지는 거예요. 그거는.
앎이 성성해지고 있어요.
앎 그 자체로 성성해지면
모든 게 더 밝아지고 세상이 더 확 밝아지죠.
밝고 선명해져야 됩니다.
밝고 선명한데 그런데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차별화가 없어야 돼요.
“쟤는 남자고 여자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이런 거가 없어야 돼.
다 똑같은데 선명해져야 된다고
그런 게 뭐냐 하면
이 동그라미 자리가 드러나는 소식이에요, 이 자리가.
이 자리가 그렇게 드러나거든.
그래서 여러분이 깨어나면 깨어날수록
세상이 점점 밝아져
너무 훤해
태양빛보다 더 밝아.
그러니까 자기 마음 안에 우울이나 괴로움이나
이런 것들이 자리 잡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너무 밝은데 그 안에 무슨 그림자가 생겨?
이걸 광명지라고 그래요.
광명지, 희락지 법열지 이런
화엄경에 이런 거에 대한 경계가 다 설명이 있어요.
여하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평등지는 어떠한 분별이나 생각이나 이런 것도 안 일어나는데
환하고 모든 것이 하나다
이런 게 체험이 되죠?
그게 이자리가 드러나는 소식이에요.
근데 이 자리는
아까 포인트 님이 “전체가...” 이렇게 했지만
사실은 그건 진짜 전체가 아니고
내가 부분 개체에 상대적으로 그냥 쓰신 말이지
진짜 전체는 여기 나올 수가 없잖아.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좋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아무런 분별이 일어나지 않고
분별이 뚝 끊어져 있는데
이렇게 밝고 환한 이 자리가 이렇게
이미 여러분 앞에 항상 펼쳐져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가리고 있냐?
분별, 생각, 감정, 느낌으로
막 그거를
지금도 내가 설명하는 걸 여러분은 알아들으려고 하잖아.
알아들으려고 하는 그게 분별이야. 그게 생각이고.
그래서 그게 이 자리를 가리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말할 때는
여러분은 알아들으려고 하면 안 돼.
너는 떠들어라.
나는 그냥 이 무슨 사물처럼 가만히 있겠다.
다만 깨어 있어야 돼.
깨어 있다는 게 뭐냐?
집중하고 있어야 된다고.
멍때림 속에 들어있지 말고 깨어 있는데
그런데 알아들으려고 하지 말라고
왜?
알아들으려고 하면 생각을 굴리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러면 항상 이것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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