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는 효과를 봐야 한다.
그것은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이다.
미래, 과거, 현재가 차례로 힘을 못쓰고 약해지는 것이 가장 뚜렷한 현상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 또는 아무것도 아님(NO THING)을
자연스레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 나의 생각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마음공부는 주로 자신에게서 찾는 방식을 취한다.
메타인지이며 자기 검색이다.
이것이 진전될수록 심리적 자아의 필요성이 약해지면서
그것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경험의 축적과 함께
점점 더 허용적이고 자유롭게 된다.//
오늘은 마음공부가 익어가면은
에고는 약해지고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약간 당연한 말 같은데
이 제목으로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음공부가 뭔지는 조금 이따 얘기하기로 하고
마음공부가 ‘내가 좀 되어 가는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을
그래도 조금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는 상처를 받는 중심이 에고잖아요.
에고가 점점 약해진다 이런 느낌이 들고
또는 에고가 표현을 어떻게 하다 보면 허술해 진다
이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에고가 가끔씩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서
잘 챙기지 않게 되는 경우가 좀 생깁니다.
이렇게 조금 틈이 막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이 견고한 에고라고 하는 것에
금이 가고, 부분적으로는 담이 무너지고
이런 현상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편안하다, 나쁘지 않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안심인명,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다음에 인명 명예 운명에 따른다라고 하는 것이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단 편안하다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뭔지는 모르지만
마음공부가 좀 익어가면
세 가지 현상이 생기는데
--그 첫 번째 현상이
미래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 겁니다.
‘열심히 해서 훌륭한 업적을 쌓고 멋진 사람이 돼야 되겠다’라고 하는
이런 ‘위인이 되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걱정도 별로 없어집니다.
그냥 될 대로 되는 것이죠.
될 일이라면 될 것이다
이렇게 조금 순화해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난 지금은 이 모양 요꼴이지만
미래에는 굉장히 그럴듯한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어떤 기대, 그런 어떤 소망이 없어도
오늘 내가 그렇게 허전하지는 않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목적도 목표도 소망도 없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 나라고 하는 삶은
좀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삶이 아닌가라고 하는
아쉬움, 또는 그걸 넘어서서 죄책감
이런 것이 들 수도 있는데
그것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 나는 꼭 훌륭한 사람이 돼야 될 이유는 없어.
그런 건 별로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돼서 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이 올 거야.
언젠가는 내게도 한 번의 기회는 올 거야.
나에게 아직 최고의 때는 오지 않았어”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모든 소망과 희망을 미래에 걸고
오늘을 견뎌내야 되는
이런 식의 프레임이 다 깨지는 겁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라고 하는 느낌이
점점 들어서 헷갈리기도 하죠.
“이거 나 이거 마음이 게을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나중에 마음이 게을러진 것인지
아니면 편안해진 것인지는 또 구분이 되겠죠.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땔감을 준비하는
이런 행동들은 다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어 죽거나 굶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또는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사실은 과거의 기억에 기반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두 번째 특징은
과거에 대한 생각도 점점점점 약해집니다.
기억력이 흐려진다는 것은 아닌데
과거에 인상적인, 특히 안 좋은 부정적인 기억들은
플래시백이라 그래서
그때 장면이 되살아나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크고 작은 것들이 사람에게는 다 있는데.
이 플래시백 현상 같은
어떤 과거의 강렬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현재와 미래의 어떤 삶을 방해하는
그런 빈도나 정도가 약해집니다.
그렇게 해서 이 평정심을 뒤흔들고 했던 그런 장면들이
점점 힘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플래시백 되어도
그때만큼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그냥 기억이네” “그런 기억이 있었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공부가 익어가면
미래와 과거가 점점점점 더 힘을 잃어갑니다.
분명한 것은 생각이 가지는 파괴력이 줄어든다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그래도 과거 미래니까 현재가 남았잖아요.
그럼 현재는 어떻게 되느냐?
우리가 보통 과거와 미래를 마음속에 계속 갖고 있으면
현재 우리가 어떤 부딪히는 상황에 대해서
“이건 이래야 되는데”
“저건 저래야 되는데”
그래서 그거하고 차이가 커지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돼야 되는데 이렇게 안 되니까
그 격차만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약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냥 상황이 오면 To Be
뭐 이래야 된다 이게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구나”
또는 의식을 또 오히려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투비를 가지고 리액션을 잘 안 하게 됩니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죠.
그래서 이게 중요한 포인트인데
중요한 것은 미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의도가 별로 없어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어떤 상황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집니다.
어벙해질 수도 있죠.
그래서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지
“이 일이 나의 미래 목표 달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인가?”라고 해서
어마어마하게 뇌를 굴리는
이런 일을 잘 안 하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미래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게 없으니까
되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의도가 없기 때문에
좋거나 나쁘다라고 하는 판단도 안 하게 되고요.
잘 안 하게 되고요.
그다음에 좋거나 나쁘거나 좋거나 싫거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해서
그 상황을 마음에서 거부하거나
또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면 마음에서 강하게 애착하거나
이런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좋고 나쁜 것도 없다.
밀어내거나 붙잡을 것도 없다.
은밀하게는 좀 약해진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그게 바로 스트레스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사람들이
“참, 너는 속 편하게 산다. 너는 좋겠다 속도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마음공부를 통해서 그것을 해 나갈 때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익어간다’라고 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핵심이 뭐냐 하면
마음공부가 되면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가
점점 마음을 휘두르는 힘이 약해진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하는 것이 나빠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광대한 무’ㅡ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없음, 아무것도 아님
그 부분이 긴장을 일으키지 않고 편안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거기서 오히려
없음, 아님을 수용함으로 해서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
그다음에 리프레시 되고 디톡스 되고 하는 부분을 듬뿍 누릴 수가 있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없는데,
그리고 시간이 옛날 같으면 속절없이 내 곁을 흘러서
영원히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느껴야 되는데
그게 안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쁘지 않은데 이것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불안하지가 않게 돼
불안하지가 않게 된다는 게 중요하죠.
왜냐하면 우리는 불안하면
준비를 하거나 대책을 세우거나 이런 것도 하지만
또 불안을 회피하거나 불안에서 심지어는 도피하기 위해서
다른 중독에 빠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절 에너지가 헛되이 새어나가는 리액션을 반영하지 않게 된다는 거
그냥 덤덤하게 담담하게 심심하게
그냥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이 과정에서 ‘나는’이라고 나라는 생각이
별로 의미가 없고, 필요가 심리적으로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생각이 잘 안 나고 아무 생각이 없을 경우가 많죠.
그래서 남들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총명하거나 똑똑하지 않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것은 점점 현존하게 된다.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있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죠.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과거나 미래의 간섭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점점 자연스럽게 가능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지만
그러나 이게 굳이 이야기하자면
평정심과 집중력을 키워줄 수는 있죠.
굳이 평정심과 집중력을 위해서 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생각을 해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걱정도, 과거에 대한 상처도
또는 현재에 ‘이렇게 돼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것이 마음에 없으면
책 한 줄을 읽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 쭉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평정심이 집중력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사람이 설마 밥을 굶어 죽지는 않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내 뜻대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 힘들어하는 것은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뭐냐 하면 ‘통제’라고 하는 키워드가 있고
‘내 뜻’이라고 하는 또 두 번째 키워드가 있고
최종적인 키워드는 ‘나’라는 게 있거든요.
나, 나의 뜻, 그다음에 세상에 대한 통제
이 세 가지가 안 될 때
나는 힘들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점점 ‘시간에서 벗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관념에서 놓여난다’라는 말도 되고
그랬을 경우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 하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점점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허용하고 안 하고가 아니죠.
상관없이 통제 불가능한 거죠.
그게 사실이죠.
그래서 통제 불가능한 사실을
정확하게는 ‘심리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또는 ‘공존한다’
‘불편한 감정과 함께 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든 그거를 없애버리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 청하지 않았지만 손님처럼 그냥 같이 간다, 갈 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라고 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오케이, 마음공부가 되어 가면 그런 것들이 좋겠네.
근데 그러면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이 뭐야?”
이렇게 질문을 해야 되죠.
여러 가지 정의가 있고
또 대도무문이라고 해서 할 수도 있지만
마음공부를 굳이 디파인하자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는 방향의 전환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론으로는
/자기의 마음의 행위들을 관찰해 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 관찰 결과 발견된 사실들을 확인해 보는 것/
이런 정도의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걸 옛날 사람들은
반성이니, 성찰이니, 이런 표현을 쓰겠죠.
그래서 한 세 가지 정도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관찰하는 자’ 혹은 ‘성찰하는 자’가 ‘경험하는 자’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러니까 관찰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 자기 마음, 자기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고
좀 본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본다라고 하는 행위는 네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늘어놓는 것이죠.
글을 쓰건, 말로 하건, 어찌 됐건 마음에 떠올리건
막연한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는 겁니다.
표현해 본다는 것은
빨랫거리 빨래를 한 다음에 햇빛 아래 늘어놓는 거하고 똑같은 것이죠.
그럼 두 번째는 성찰하는 겁니다.
이 빨래는 이렇고, 저 옷은 저렇게 세탁이 되었고
모양과 생김새와 색깔과 냄새를 보는 겁니다.
두 번째가 그러니까 성찰하는 것이죠.
세 번째는 그중에 ‘이거네’라고 직면하는 것이죠.
‘이거였구나’
심리적으로 그것이 결핍감일 수도 있고, 수치심일 수도 있고
그것이 무슨 질투일 수도 있고, 그것이 외로움일 수도 있고
그게 억울함일 수도 있고
뭐 많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걸 직면하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심리적인 문제가
만약에 내가 억울했는데
억울하다는 표현을 안 하고 다른 표현을 자꾸 쓰기 시작하면
영원히 그 문제를 포착 못하니까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세 번째가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건 솔직함과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직면한 다음에 네 번째가 자각한 것이죠.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거구나”
근데 그 이후에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뭐가 바뀐다든지
내가 강철의 멘탈이 된다든지
이런 자꾸 성과주의로 가면 안 되거든요.
그냥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알아차리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나는 그래서 그러면 “이렇게 돼야 되겠다”라고 자기 마음을 다지는 순간에
또 어떻게 됩니까?
투비라고 하는 프레임에 빠지게 되죠.
그럼 자기를 몰아가게 되고
그럼 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그렇게 해서 성찰하는 자아를 키워서
경험하는 자아와 성찰하는 자아가 두 바퀴를 굴러서
내가 과거, 현재, 미래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나라고 하는 것에 생각이 자유로워지고
나라고 하는 것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
그때쯤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근데 심리적으로, 심리적인 무아, 심리적인 자아 없이 사는 것도 괜찮네 ”
오히려 오히려 편하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리적 자아 없이 산다는 것은 뭐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상황을 딱 우리가 만났을 때
“이건 좋아, 이건 싫어
좋은 거는 붙잡을 거야. 싫은 것은 밀어낼 거야.”
그러니까 뭡니까?
판단하고 투쟁하는 거잖아요.
판단하고 투쟁하는 것이 점점 약해지고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싸워서 쟁취하거나
싸워서 밀어내야 될 정도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구분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런 생각이 아니고
그 반대로 좋은 게 있고, 싫은 게 있다라고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무명
불교에서 말하는 어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심리적 자아로부터 놓여나면
자유가 생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죠.
물론 이 자유는 사회사상이나 정치사상에서 이야기하는
근대적 자유와 다르죠.
근대적 자유는 기본적으로 프리덤 프롬과 프리덤 투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그다음에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할 자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심리적 무아가 주는 자유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자아 없음이 주는 자유로움이죠.
홀가분함에 더 가깝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게 두 번째 마음공부의 양상이고요.
이 세 번째는 그래 자아가 꼭 필요하겠나
심리적 자아 없이도 살아지네, 큰 문제없네
이런 것들이 점점 확인되면서
무아의 힘이 강해져서
누리게 되는 그런 삶을 진짜 누리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공부가 점점점점 익어가고
익어가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부가 익어간다는 것은
심리적 자아가 약해지거나 사라져 간다는 것이고
그 결과로 이 스트레스, 번뇌 이런 것들이 약해져 가거나 사라져 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마음공부가 익어가면
에고가 약해지고
에고가 약해지면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이런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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