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소유, 스타일 그리고 정체성

Buddhastudy 2024. 9. 24. 19:40

 

 

사람의 자아는 3개의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겉에는 소유한 것들이다.

가운데에는 스타일이 있다.

마지막 중심에 정체성이 있다.

 

현재 한국인의 특성은 이론과는 달리

중심의 정체성은 약하고

가장자리의 넓은 경계인 소유물들을 전선처럼 지키고 있다.

재산,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셀프이미지, 축적한 지식과 경험 등이 그것인데

중심이 빈약하고 경계가 중시되면

어디에선가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마음은 늘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열심히 사는 이유인 안전, 평화, 사랑, 조화, 행복과는

반대쪽 영역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은 없어도 좋다.

정확히는 중심이 비어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며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비어 있는 그는 외롭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일 수 있어서 그렇다.

정체감 자체가 분리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소유, 스타일

그리고 정체성에 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보통 자아라고 했을 때

자아를 에고, 슈퍼에고, 이드 이렇게 구분하기도 하고

여러 방식으로 나라고 하는 것을 분석하는데요.

 

저는 세 가지 단층으로

가장 중심부에 코어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두 번째가 방식,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 겉면을 가장 바깥 경계면에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있다

이렇게 3단계로 구분해서 보았습니다.

 

제일 경계면에 바깥에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것들이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라고 하는 것은

첫 번째 나는 재물을 가지고 있고, 재산을 갖고 있고

또 인간관계를 내가 가지고 있고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셀프 이미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그다음에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거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죠.

 

이런 것들이 내가 가진 것,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일을 하는, 또는 살아가는, 웨이, 스타일이 있죠.

그래서 내가 어떤 걸 목표로 삼고, 목표를 어떤 식으로 이루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가 하는 그런 방식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 스타일하고 정체성을 헷갈리기도 하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했을 때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은

참 은밀하게는 정체성이 아니고 스타일인 것이죠.

그렇게 또 스타일이라고 하는 두 번째 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코아에 중심부에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덴티파이identify

원래는 밖에서 구별하다 식별하다

밖에서 그 개체를 구분하는 분류 기준이기 때문에

안에서 만약에 정체성을 가지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나는 무엇이다라고 아이덴티파이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붙을래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종교적인 정체성, 인종적인 정체성, 성적인 정체성, 정치적인 정체성

다 정체성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 정체성의 총합이 나라고 하는 정체성을 이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에서 보면

원래는 개념적으로 보면

중심부로 갈수록 더 치열하고, 뜨거워지고, 단단할 것 같은데

한국 사람은 정체성보다는 스타일이 더 중요하고

스타일보다는 소유가 더 중요한 것 같은 식으로 생활하고 있죠.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소유라고 하는 것은

재산, 관계, 지위, 이미지, 경험, 지식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니까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스타일은 덜 중요하고

그다음에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아예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심지어는 종교를 갖고 있어도

종교적 정체성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에고 구조는

약간 텅 빈 대나무와 같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한번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이런 구조로 자아를 이해할 때에

경계면이 넓잖아요. 바깥에

그리고 가짓수가 많고

 

만약에 내가 정체성이 미약하거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보살피고, 확장하고, 지켜내는 것에

힘을 쏟아야 됩니다.

근데 그 경계면이 너무 넓고, 가짓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나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거를 지켜야 되죠.

 

다르게 이야기하면

전선, 혹은 국경이 너무 넓은 나라

그리고 그게 인구는 적은

이런 나라의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경에서 호시탐탐

자기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런 넓은 나라에

숫자가 작은 국민을 가진 나라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럼 그런 나라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겠죠.

다 지켜내야 되니까

굉장히 준전시체제의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유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경계 자체를 만약에 지켜내야 된다고 하면

그건 각갑류처럼

바깥이 되게 딱딱해져야 되는 거죠.

껍질이 딱딱해져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유연하지가 못합니다.

그럴 수가 없게 되어 있죠.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지켜내야 될 영역이 너무나 커서, 크고 넓어서

이론적으로는 그게 다 지켜낼 수가 없는 것이고

내가 경계를 그어놓은 어느 곳에서는

재산, 인간관계, 지위, 이미지, 인지

어느 측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나는 항상 전쟁 중인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경계면 전체를 지켜내야 되는 사람들에게는

즉 소유를 지켜내야 되는 사람들한테는

평화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만약에 요즘 정말

잠도 잘 못 자고, 신경이 곤두서 있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이렇다고 하면

나는 이 경계, 소유의 경계

그 드넓은 그쪽을 지켜내려고 하고 있지 않은지를 볼 필요가 있죠.

 

이론적으로 보면은

안에 정체성만 지키고 나머지는 다 양보할 수 있는

이런 인성, 캐릭터가 퍼스널리티가 제일 유연하고 탄력성이 좋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죠.

그 생각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내가 심지어는 아까 우리 MBTI, 이런 열풍이 불고 있죠.

그 이전에도 여러 가지 타이폴로지가 유행하는데

그 이유는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나의 경계를 확장하고

서로 간의 토러런스

서로를 허용하고 이런 것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걸 인정해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줘.”

 

자기주장을 오히려 정당화하는

그리고 자기의 성격을 정당화하는 관철시키려고 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타입 폴로지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만약에

내가 나의 어떤 스타일, 나의 캐릭터, 나의 MBTI가 어디서 왔느냐?

그거는 분명한 거는 뭐냐 하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타고난 것만도 아니고

형성되어 온 것이다.

구축되어, 쌓여온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팩트죠.

 

그러니까 타고난 요인이 있을 수 있죠.

DNA라든지 뭐 있을 수 있습니다.

플러스 환경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합쳐지면서

발현된다라고 하는 게

현대 심리학의 기본 정설인데요.

 

근데 요즘은 후성유전학이라 그래서

, 이 발현이 그냥 되는 거 아닌가 같다.

그러니까 타고난 유전자가 있어도

환경에 어떤 세례를 받느냐에 따라서

유전자 버튼 자체가 스위치가 안 켜질 수도 있는 것 같아.

그냥 평생 그 스위치가 켜지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시대마다 조금씩 붙임이 있지만

내가 어떤 환경을 만나느냐

또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환경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선택지가 열려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타고난 대로 살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나는 운명 같은 거는 미신이야 믿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MBTI에 과몰입하는 것은

그 말이 그 말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냥 되는 대로 살겠다, 태어난 대로 살겠다

이런 거 하고 똑같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내가 내 삶에 만약에 주인이 되고

내가 내 삶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나의 모든 유형론에 대해서

상대적인 관점, 제한적인 관점을 가져야

이게 전부가 아닌 것이죠.

 

이런 어떤 자질이 있긴 있다.

그리고 요것이 뭐 좋든 싫든 내 삶의 자재들, 재료들이다.

그럼 나 이 재료들을 가지고, 집도 짓고, 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재료가 주로 나무라면

나무집을 지을 거고, 돌이라면 돌집을 짓겠지만

그러나 그 집을 짓는 자의 주인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은 사실이죠.

그걸 받아들여야 내 삶이 내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체성보다는 소유 쪽에 너무 많은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해득실에는 매우 민감하죠.

 

근데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는 종교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가져도

우리는 비빔밥처럼, 그다음에 무슨 탕처럼

그냥 다 함께 비비고, 함께 끓여서 그냥 같이 먹지 않습니까?

같이 살아간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해득실에 훨씬 더 민감하고

그다음에 정체성과 관련된 세계관이

부서지거나 훼손당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이해득실처럼 민감하지는 않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뭐냐 하면 원래 정체성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어떤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논리적으로 보면

내 정체성을 텅 비워 놓았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내 스타일, 내 소유물들에 대해서도 많이 많이 열려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일관성은 좀 아쉽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어떤 정체성도 필요가 없죠.

그리고 그 중심은 비어 있는 것이고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비어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고.

 

그래서 소유관계에 너무나 민감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결국은 건강하지 않은 병적인 현상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왜냐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어딘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나는 항상 전쟁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기고 지는 것 이외에

조화로운 평화, 사랑, 행복, 그리고 이 고양된 느낌

이런 것들은 전쟁을 통해서 얻기는 어렵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소유, 그다음에 스타일, 그리고 정체성에 관하여

여러분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