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의 의미

Buddhastudy 2024. 9. 2. 20:02

 

 

우리는 살아가면서 커다란 고난에 부딪히기도 한다.

거의 예외가 없다.

그것은 인간 조건인 것 같다.

그러나 거부나 도피나 투쟁이 해결책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사실의 수용과 관점의 전환이 답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버거운 시련은 태풍과 같다.

태풍은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열평형을 위한 급격한 균형화 과정이다.

자신을 협소하게 설정하고 보면 늘 피해자가 된다.

그릇을 키워서 자아의 크기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크기는 마침내 무아에 이르게 된다.//

 

 

 

오늘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의 의미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건, 사고, 고난, 혹은 재앙

이렇게 느껴질 큰 사태를 만나기도 하죠.

암에 걸린다든지, 또 파산을 한다든지, 실직을 한다든지, 이혼을 한다든지

이럴 때는

한강물이 아니라 한강 뷰가 아니라 한강물을 생각할 정도로

이 삶의 연속성이 깨어지면서 큰일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살다 보면 그런 일을 한두 가지쯤은 겪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딛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영원히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고통스럽죠.

실제로 통증이 올 수도 있고 고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고통을 넘어서서

심리적인 괴로움이 될 때를

우리는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 화살이라고 하는 것은 심리적인 것이죠.

이래서는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끝난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리면

그것이 두 번째 화살을 제대로 맞은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는 사건 하나가 일어났을 뿐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삶 전체를 붕괴시켜서 불행해져 버리는

그런 결과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건 사고가 일으키는 여러 가지 고난과 고통이 있는데

이것들 중에서

우리의 능력으로 또는 남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그냥 해결하면 되는 거죠.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단기간에는 해결 안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멘붕에 빠지지 않고, 멘붕을 겪지 않고

버텨내어야 하는데, 견뎌내야 되는데

그럴 때에는 [태도]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태도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태도는 바람직한 게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게 있겠죠.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는

인정하지 않는 거, 첫 번째

그러면 정신이 딴 데로 가야 되겠죠.

 

두 번째는 끝까지 싸우는 거

내가 싸우다 죽겠다.

 

세 번째는 도피하거나 체념하거나 우울에 빠지는

심리적인 도피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충돌들이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썩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치 그 응력이 쌓여서 지진이 커지듯이

그 힘은 계속 쌓이거든요. 그 격차가.

그래서 어느 날 계기를 만나면

그게 폭발하고

잘못하면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려 깊은 수용이 필요하고

그 수용의 첫 단계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일어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

그거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걸 내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이것이 일어났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에 더해서 아까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바람직한 태도가 있을 수 있겠죠.

바람직한 태도는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될 때는 단기적으로

관점을 바꾸어서 극복하는 방법이 있죠.

 

그래서 한 번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고

그다음 관점이 바꾸어지면

관점을 점프하는 관점을 도약시키는

그런 두 단계의 정신적인 작업이 가능하다면

훨씬 이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핵심의 문장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태풍을 이야기할 때에

그 태풍이 통과하는 지역은 초토화가 되고, 큰 재난을 겪는 것이지만

사실은 지구 차원에서 보면

태풍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적 차원에서의 전체적인 열평형을 맞추는 작업이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조금 과격하고 빠른 시일 안에 아주 세게 작용하기 때문에 파괴적이죠.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아주 급격한 균형 복원 작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을 빗대어서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그것이 재난 재앙이 될 정도로 크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나에게 단순히 재앙 재난이 일어났다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만약에 피해 입은 지역이 아니라 지구 전체라면

내가 굉장히 삽시간에 빠른 시간 안에 아주 급격하고 과격한

어떤 삶의 균형 잡기가 시작됐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좀 낫다는 겁니다.

 

그래서 열평형을 위한 태풍처럼

내 삶에서 다시 재조정을 위한

하나의 급격한, 또는 과격한, 파괴적인 재편성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이 관점의 전환은

내가 재앙이 닥쳤지만, 재난이 닥쳤지만

사실은 이것은 그동안 쌓인, 내 삶에서 쌓인 문제를

급격하게 해소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정화 작용이거나 중간정산적 성격을 가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때까지 삶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다고 누리던 환경들

이런 것들이 공짜가 아니고

실제로는 이렇게 있다가 없다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아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게 훨씬 더 어떻게 보면 사실에 부합한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이 급격한 파괴적 재편성의 과정에서

즉 재난의 과정에서

나는 재검토할 게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났나라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 버립니다.

 

내가 할 것은 [재검토]하는 것이죠.

재검토한다는 것은

-내가 뭘 버려야 하나

-또 뭘 내 삶에 새롭게 들여와야 하나

-그리고 어떤 것들은 좀 약화시키고, 어떤 것들은 강화시켜서

다시 내 삶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 내야 하고

그것에 성공했을 때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관점의 전환이 어려운 것이죠.

그냥 한탄하고, 원망하고, 망연자실하게 그 시간을 흘려보낸 경우가

사람인지라

하지만 우리는 제안하는 겁니다.

관점을 바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이 나의 태도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하는 것을

잊지 말자 하는 겁니다.

 

내가 만약에 한 지역이라면

태풍의 피해입은 지역에 불과하겠지만

나를 지구라고 생각하면

좀 급격하고 파괴적이었지만

열평형을 위한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필요한 고통의 과정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좀 더 많아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지구라면

나는 이 과정을 통해서 더 건강한 지구가 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지역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지구 전체라고 생각하느냐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하는

나의 크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내 삶도 보면

사실은 나라고 하는 내 삶도

여러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진 집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부분들의 문제를 급격하게 해소하면서

내 삶이라고 하는 보다 더 중요한 큰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이

재난 혹은 고난, 나에게 닥친 재앙

그렇게 이해하면 좀 더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범위의 나를 설정하고 거기 울타리를 딱 쳐서

내가 이 속에서 안전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보면 그건 무리다.

 

그런 일은 그냥 내 머릿속에서의 바람이지

실제하고는 좀 다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안전한 삶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도리어 우리가 인간 사회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전쟁]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면 고난과 고통의 의미를 다르게 볼 수 있죠.

고난과 고통은

우리를 성숙하게, 진화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더 좋은 길이 없을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자꾸 원망하거나 자책해서

삶이 무너지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만나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지 간에

이게 우리가 진짜 행복으로 가는 길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을 빚는 창작의 과정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핵심은 뭐겠습니까?

[내 그릇이 커지는 것]이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재난 지역이다, 내가 피해 입은 재난 지역이다라고 하면

나는 그냥 초토화된 땅에 불과하지만

내가 지구 전체다라고 하면은

이 과정을 통해서 급격하고 파괴적인 이 과정을 통해서

난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핵심은

나를 좁게 설정하느냐

좀 더 유연하고 넓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진다.

 

그러면 내가 상황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그 깊이와 높이도 달라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커져야 하나?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어떤 국면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무아에 이르기까지

 

무아라고 한다면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의 그릇은 거기까지 커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래야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여튼 본인의 재량껏, 본인의 판단에 따라서

어찌 됐건 [그릇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나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느냐?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내가 상황을 수용하는데

대단히 결정적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서

이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환란 중에 기뻐하라.

환란은 연단을 낳고 연단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품을 이루나니라

정확하게 그런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주기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서

피를 흘리는, 또는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의 큰 과정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참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을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용하기 나름]이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지금 내가 고난을 겪고 있다면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관점의 변화가 전환이 우리에게 유익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