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림 한 장의 직관이 이해를 결정적으로 돕기도 한다.
대승의 6바라밀은
계정혜 삼학에다 보시와 인욕과 정진을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서
동서 교역을 담당하던 상인들의 실천적 미덕이었을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추정된다.
그냥 오래된 좋은 말이 아니라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생생하게 작동하는 미덕이자
삶이 곧 수행이 되는 화두라고 하겠다.//
오늘은 우리가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히 대승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6가지 실천적인 덕목인 바라밀인 육바라밀.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카라반 사막을 건너는 대상
카라반의 가치 표현이다 하는 얘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법인이라고 하는 것은
유목민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제가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림을 한번 보시면
이 삼법인이라고 하는 것을 그냥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죠.
유목민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움직이면서 소나 말이나 양을 먹이는 그런 유목민이잖아요.
그런데 그 유목이라고 하는 것은 보면은
풀이 있었던 자리에서 풀을 먹인 다음에
계절이 바뀌거나 풀이 없어지면
또 이동을 해서 또 풀을 먹여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 있어서 삼법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상]하다는 것
이 풀이 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명하죠.
두 번째는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한자로 풀어서 쓰면
풀이 있었던 자리, 옛날에는 풀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풀이 있었던 자리에서 오랫동안 말이나 양에게 풀을 먹이면
풀이 없어질 거 아닙니까?
혹은 계절이 바뀌면 풀이 시들 거 아닙니까?
그럴 때는 가축들이 먹을 풀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면 풀이 없는 곳에 계속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괴롭죠.
이것이 ‘괴로울 고’자의 뜻이 되겠습니다.
이것도 이 그림을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죠.
“여기 계속 있으면은 안 되겠구나.”
세 번째는 [무아]인데, 여기서 무아를 또 한자로 보면은
창 과, 나 아.
‘창을 들고 지켜야 할 나의 영역’ 이런 표현이거든요.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여기도 보면은
여기서 풀을 다 먹였으면
양 떼를 이끌고 딴 데로 가서
풀이 있는 곳을 찾아서 양을 먹여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 영역을 고집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죠.
지금은 몽골에서 일어나는
토지, 땅의 사막화 현상에서 중요한 또 이유 중에 하나가
유목을 못하게 하고, 방목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있거든요.
유목과 방목의 차이는
방목은 가둬 놓지는 않지만 울타리를 쳐갖고
그 범위 안에서 풀어서 먹이는 거거든요.
또 유목은 땅 자체를 옮겨서 먹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방목하게 되면
가축들이 자꾸 늘어나서 그 풀을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사막화가 빨리 진행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유목민의 삶의 조건을 보면
무상하다는 거
그다음에 풀이 있었던 자리죠.
지금은 풀이 없는 자리에 머물면 큰일 난다는 거
그리고 이 농경민족처럼
‘어떤 땅을 지켜야 된다’ 하는 것은 없다, 하는 것들은 자명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살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붓다 아버지 이름이 정반왕이잖아요.
‘깨끗한 밥’ 이런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유목민이 농경민족으로 정착하면서
유목민의 가치관을 한번 제시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러면 이것이 점점 시간이 흘러서
대승운동 일어나고
대승운동의 상당한 한 부분이
실생활을 해 나가야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불교를 수행하고, 불교를 자기 삶 속에서 구체화해야 되느냐? 하는
대중의 문제도 있거든요.
근데 여기서 바로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물론 초기 불교에도 팔정도라고 하는 것이 처음부터 제시가 되었지만
이 육바라밀 할 때, 바라밀 자체가 건너간다는 뜻 아닙니까?
물론 뗏목을 타고 물을 건너가는 것이긴 하지만
사막을 건너가는 대상, 큰 상인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낙타가 쭉 줄처럼, 줄지어서 걸어가는
사막을 건너가는 대상에게도 어떤 가치가 필요한데
이 가치가 불교적으로 보더라도
6바라밀이라고 하는 것 속에 녹아 있더라 이런 것이죠.
6바라밀 속에 보면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이렇게 돼 있는데
각각의 바라밀, 각각의 좋은 미덕을 가지고
사바세계를 건너간다.
즉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돼 있는데
여기서 보시, 인욕, 정진은
지계, 선정, 반야는 계정혜라고 하는 삼학에
원래 도장이 꽉 찍혀 있던 건데
보시와 인욕과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이 추가가 된 것이거든요.
그럼 추가된 것을 또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거냐?
이건 어떻게 선택된 거냐?라고 보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림을 보면 이런 것이죠.
사막
이곤 초원이고 여긴 사막 아닙니까?
사막을 띠처럼, 줄처럼 줄지어 가는 건너가는 대상
이 상인들의 실천적인 삶의 가치가
보시, 인욕, 정진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다른 배가 고난을 당하면
구조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묵계고, 국제 해양법적으로도 명시가 돼 있잖아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나도 언제든지 조난 당할 수 있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보시라고 하는 것이
사실 유목민 사회도 마찬가지거든요.
“손님에게 친절해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막을 건너가다 보면, 움직이다 보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번에는 내가 도움을 받고, 다음번에는 네가 나에게 도움을 주고 하는 것은
일상사이기 때문에
“내가 도와야 다음 번에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삶의 굉장히 철칙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렇게 해서 이 보시라고 하는 것은
물론 농경사회에서는, 문명사회에서는
“나누어주라. 좀 나눔을 해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막에서 보시라고 하는 것은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생존의 미덕’이라는 것이죠.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었죠.
두 번째는 [인욕]
묵묵히 낙타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바람 불고 나면 지형도 바뀌는 사막을 햇빛 아래에서 건너갈 때
그 괴롭지 않습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참아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또 굉장히 중요한 미덕이 되는 것이죠.
그다음에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이 낙타는 뛰지 않지 않습니까?
그냥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죠.
한 발짝, 한 발짝
이것이 정진이다.
그래서 상인들은 사막을 건너면서
어려움과 위험을 서로 돕고
그다음에 뜨거움, 굶주림, 위험 이런 것들을 참아내고
그리고 한 푼의 이익을 바라보고 천리를 걸어가는 이 묵묵함으로
이 상행위를 이어나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1세기쯤에 대승운동이 일어났던 이유는
뭔가 실천적인 덕목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상좌부 불교가
이 귀족 불교, 혹은 대중과 유리된 자기만의 수행 불교
또는 학문적 불교로 빠져들 때
이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살아 생활을 해야 되는데
생활하면서 불교적 덕목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이 계정혜라고 하는 것은
수행을 위한 수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위험도 있기 때문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고
그것은 삶에서 곧 수행과 같은 믿음, 실천적 미덕이 필요한데
그것이 그 사람들 보기에는
보시요, 인욕이요, 정진이었더라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죠.
오늘은 그림 두 가지를 가지고
삼법인과 육바라밀을 좀 직관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겠다”라고 하는 것을
한번 여러분하고 나누어 봤습니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무유정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해진 법은 없다는 것이죠.
정해진 법은 없는 거야.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주어진 삶의 조건에서
최선의 미덕을 우리가 뽑아낼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삼법인이나 육바라밀이
그럼 오늘날은 어떠냐?
오늘이야말로 디지털 유목민의 시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
그리고 위험과 복잡성과 변동성이 극대화된 이 시대에
우리는 갖춰야 할 미덕으로서 육바라밀, 삼법인을 포함하여
보시, 지계, 인욕, 정신, 선정, 반야라고 하는 이 육바라밀은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매우 효과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카라반의 가치 표현이다”라고 하는
다소, 약간, 조금, 좀 멀리 나간 얘기를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았습니다.
직관적으로 어떻게 수용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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