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진화를 거듭하여 상황에 대응하는 세 가지 층을 만들었다.
먼저 물리 화학적인 층이다.
온도, 압력, 농도 등 생명과 직결되는 vital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 기계적 대응을 [반사]라고 한다.
다음이 감정 반응이다.
변연계가 주도하며
좋고 싫음, 쾌락과 공포에 의해 일어나는 대응을 [반응]이라 한다.
마지막 인간의 대응을 [행동]이라 한다.
목적, 계획에 따라 부합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을 행동이라고 한다.
전두엽이 주도하는 이 기능이 지나치면
즉 목적 지향성이 너무 강해지면
인식의 왜곡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붓다는 이 의식의 편향성을 문제라고 보았다.
있는 그대로 보려면 to be의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하고,
to be와 as is 간의 격차로 인한 기장 유발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비판단적 주시가(non judgmental awareness)가 평정심으로 가는 첩경이다.//
오늘은 상황에 부딪혔을 때 세 가지의 대응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첫 번째가 반사
두 번째가 반응
그리고 세 번째가 행동
이렇게 나누어서 우리들의 대응 행동, 리액션에 대해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예를 들면
바퀴벌레라든지 아주 낮은 레벨의 생명체는
반사를 주로 합니다. 리액션을.
반사라고 하는 것은 바이털과 관련된 것이죠.
온도라든지 압력이라든지 농도에 따라서
이러면 저렇게 한다.
아주 기계적으로 물리화학적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이건 뇌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 바이타를 관장하는 뇌간,
브레인 스템에서 이 반사 활동을 주관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포유류 동물 정도에서 보일 수 있는 이 감정 반응
반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반응이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주로 감정과 관련된 것이고
그런 정보나 데이터들이 감정을 이끌어 내죠.
감정의 주된 내용은
“좋으냐 싫으냐”
그다음에 또 편도체가 있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냐”
아니면 측좌핵과 관련해서
이게 쾌락적인 “즐거운 일이냐”
이런 식의 감정적인 정서를 만들어내고
이 정서에 반응하는 것이 반응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된 뇌의 기관은 변연계라고 하는
아까 이야기한 해마, 편도체, 측좌핵 같은
그런 뇌의 어떤 영역을 가진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 반응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반사가 있고, 반응이 있다고 하면
다른 것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행동입니다.
이 행동은 보통 우리가 인간의 움직임을 행동이라고 하죠.
그럼 이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뇌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냐?
행동은 반드시 목적과 관련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이
앞으로 좌우대칭형으로 얼굴 쪽 앞에 다 쏠려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쏠려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직진하는,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을 위한
정보 명령 체계가 뇌이기 때문에
이 좌우대칭형의 동물이 뇌를 가진다라고 하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고
이 행동은 뭘 위해서 하는가 하면
목적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목적은 생존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죠.
그래서 이 목적
그럼 이런 것이 나의 생존과 번영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따져서
유익함과 해로움을 따져서
정보를 해석하고
거기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
이것이 선택이라고 하는데
이걸 우리는 인간만이 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생명체의 레벨에 따라서
반사, 기계적 반사, 물리화학적인 반사로부터 감정적인 반응
그리고 이성적인 선택, 행동까지
우리의 뇌는 여기 우리가 잘 아는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까지, 대뇌피질이죠.
그렇게 해서 세 층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뇌가 작동하는 방식은 부분적이지 않고 통합적이죠.
종합적이지도 않습니다. 통합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연결되어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종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되죠.
뇌는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고 작동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반사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츄레이션, 바깥의 상황에 많이 끌려가는 경향이 있고요.
그래서 멀쩡하다가도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거기에 즉각 반사 행동을 하게 되어 있죠.
두 번째는 이 반응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얘기한 변형계의 감정에 끌려가기가 쉽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감정에 끌려가기 쉽다는 얘기를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좀 더 어려워지는 게
보통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직면하지 않거든요.
직면하는 것이 두렵거나 그 감정이 불분명하거나
이렇게 해서 직면하지 않고
편한 대로 그 불편한 감정에 이름을 붙여버립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되게 불편한데, 그것이 불편한데
어떤 단어를 쓰는가 하면
그건 잘못됐다, 그건 공정하지 않다거나
이런 식으로 ‘잘못됐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어를 대체함으로써 그것을 피해가려고 하는
자기감정의 정확한 단어를 직시하지 않는
이런 것 때문에 감정적인 반응은 점점 더 어렵게 되죠.
왜냐하면 반응은 했는데 해소는 되지 않는
또는 관계는 더 악화되는
상황은 더 나빠지는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감정 반응도 사실은 쉽지 않은, 그런 것이 되겠습니다.
세 번째 이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아까 이야기한
“이것이 목적에 유익하냐?” 라고 하는 계산을 하고 따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이익에 끌려가기가 쉽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여기서 또 어려운 점이 있죠.
그럼 우리는 “근데 뭐가 이익이지?”
또는 “더 큰 이익과 더 작은 이익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지?”
그리고 “내 마인드 머슬, 내 마음의 근육은
더 큰 바람직한 이익을 위해서 당장 눈앞의 이익, 쾌락,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나?”
이런 것이 되겠습니다.
거기다가 감정, 거기다가 본능
이런 것들을 다 조율해서, 잘 조화시켜서
내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로 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나
이런 것까지 이야기하자면
평소에 마인드 머슬, 마음의 근육을
꽤 많이 단련해 놓아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도 전두엽의 목적을 세우고, 계획을 하고, 욕망을 지연시키고 잘 잡아서
끝내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이것을
경영자의 뇌, 혹은 부자의 뇌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전두엽이 촘촘하게 힘이 있는 사람이
현대에서는 물론 성공할 확률도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이 전두엽의 사고라고 하는 것은
as is와 to be를 대립시키고
이 to be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목적지, 바람직한 상태를 끊임없이 이미지화하면서
현상을 개선해 가는, 현상을 타파해 나가는
이런 것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머릿속에서 작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나를 끌고 가야 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사실은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또 이것도 빼놓으면 안 되는데
목적이 앞을 가릴 수가, 눈을 가릴 수가 있지 않습니까?
점잖게 말하면 목적이고
조금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욕심이 눈을 가리면 잘 안 보일 수가 있거든요.
욕심이나 분노는 눈을 가리는 터널아이 현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식을 왜곡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편향성이 있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게 고정관념이고, 편견이고,
“그냥 원래 그런 거 아니야”라고 하는 습관화된 가치 체계를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굳어진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됐을 때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상황 속에서
많은 것들이 불편하고, 불만스러워지고,
이 갈등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이 번뇌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붓다가 생각하는 as is와 to be의 문제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수용해서 발전시킬 거냐?
이거죠.
모든 심리학에서
판단하지 마라, 평가하지 마라
비판단적 주시
그게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그저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라
하는 것이 권유죠.
이거는 그러니까 거꾸로 되는 겁니다.
as is를 생각하지 말고 as is부터 확인해라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확인해라
“그렇구나,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이렇구나” 하는 것이죠.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해라
그러면 이것이 현대 심리학에서는
평정심의 기본적인 디파인이거든요.
비판단적 주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그러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만약에 판단을 하면
“이래야 되는데 이게 맞는데”
“원래 이래야 되는 거 아니야”
“기본이 이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면 그 갭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마음의 파도를 일으킨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평정심이 비판단적 주시
있는 그대로를 평가하지 않고 봄으로 해서 평정심이 유지되고
이 평정심이 결국은 열린 마음, 마음의 장애를 제거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관계 속에서는 평화가 있고
내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이것을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서
일가 친척을 만나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이렇게 하는데
그것이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니죠.
왜냐하면 이 친척들은
결혼이라든지, 취직이라든지, 살림살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이것이 걱정인지 디스인지 알 수 없게
to b를 자꾸 이야기하거든요.
그거 물어보는 것 자체가
근데 tv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라고 서로 근황을 나누게 되면
그 자체의 긴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냥 그렇구나” 라고 as is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면
거기서 우리가 마음의 불편함이 제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제거가 된다는 얘기는
서로 평화롭게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고
그리고 내 마음에는 “이래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또는 있어도 금방 금방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장애가 없다, 걸리는 게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렇다면 뭐냐? 그러면
그냥 있는 그대로, 될 대로.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런 어떤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관계에서 평화를 이룩하고
내 마음의 자유를, 그 공간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자세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겠죠.
그렇지만 내 내면의 마음공부를 할 때는
to be가 아니다, as is다.
이 생각을 한번 해보는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우리는 반사, 반응, 행동을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까지 있는 그대로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깊이 생각을 해보자, 라고 하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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