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윤회와 열반

Buddhastudy 2025. 2. 18. 20:23

 

 

 

열반은 윤회의 종식이다.

다음 생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열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12연기의 심리과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명--식에 따른 편향된 의식이 없으므로

접촉과 느낌에 있어서

좋아하거나 싫어함(), 움켜쥐거나 밀어냄(),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속에 무언가 생겨나는 일이 사라진다.

12연기의 환멸 연기가 열반이다.

그러므로 열반으로 윤회를 종식시켰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비 판단적 주시(non judgmental awareness)가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번뇌 즉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길이다.//

 

 

오늘은 윤회와 열반에 관하여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시간에 환생과 윤회가 다르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나 불교의 어떤 이상? 목적은 유해를 종식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그걸 위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우리는 깨달음을

인도에서는 니르바나라고, 열반이라고

음을 그대로 따서, 니르바나라고 말을 합니다.

 

이 열반, 니르바나를 산스크리트 분석을 해보면

니르가 not 이런 뜻이니까 부정의 의미죠.

뭐가 없다, 뭐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바나라고 하는 게 훅 바람을 불다 이런 뜻

훅 불다 이런 뜻이거든요, 훅 불어서 없어졌다

종합하면은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진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붓다가 인도 북부 지방에서

계속 서북부에서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명, , 조로아스트교 같은 대화교 뭐 이런

그 빛과 불과 관련된 고대 종교가 많은데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깨달음으로 연결시켰다.

이런 또 언어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불교는 불과 관련돼 있죠.

왜냐하면 불타는 집에 앉아 있다든지

또는 연등, 점등,

그다음에 이런 니르바나도 불이 꺼진 상태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불이 꺼졌다는 것이죠.

어떤 불?

갈애, 욕망의 불, 탐진치의 불이 꺼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불이 꺼졌다는 것은 뭐냐 하면

연료 공급이 더 이상 되지 않아서

불이 탈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 연료라고 하는 게 심리적으로는 탐진치라고 하는 심리상태고

그 탐진치를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것은

인식이 잘못돼서 그렇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다

무명이죠.

어두워서 그렇다.

 

그래서 그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은

무상--무아라고 하는 연기법에서 도출된

사물의, 삶의 궁극적인 진실을 몰라서 그렇다

그러면 더 좋은 게 있거나 더 나쁜 게 있는 것 같고

좋은 것은 당기고

나쁜 것은 밀어내는 이런 과정들이

결국은 괴로움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거는 단순히 탐진치를

그러면 안 돼라고 도덕적으로 억압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잘 이해해야 된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죠.

 

그래서 아라한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불교적인 수행을 통해서

최고의 또는 최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당연히 최후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니르바나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열반에 이른 아라한이

통쾌하게 4마디 말을 하게 돼 있습니다.

 

첫째, 태어나고 죽는다라고 하는 그 생은

태어나면 다 했다

그건 끝이 났다는 것이죠.

나는 그 수레바퀴, 태어나고 죽는 또는 생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청정 범행은 성취되었다

그러니까 모든 계정혜를 닦아서

나는 모범을 확립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세 번째는 할 일을 다해 마쳤다라고 표현도 하고

또는 빚을 다 갚았다이런 표현도 합니다.

 

네 번째, 나는 더 이상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후세의 생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선언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아라한 선언이라고 하는

4문장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때 아라안 선언의 핵심은 뭐냐 하면

나는 윤회를 종식시켰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거를 해탈과 관련해서 해탈지견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해탈지견 자체가

내가 묶여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래서 윤회할 수밖에 없는

이 고리에서 벗어났다라고 하는 것이니까

이 해탈지견 자체가

다시는 후세의 생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의미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열반을 설명함에 있어서

윤회라고 하는 개념을 종식시킨다, 라고 하는 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 라고 하는

후세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냐

라고 하는 것이 옛날부터 문제가 됐고

지금도 당연히 교란, 혼동을 초래하기도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생과 윤회가 다르듯이

윤회와 열반과의 관계를 따져보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냐 하면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했을 때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럼 어디로 가냐? 그 사람은?”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거는 원래 없어, 그거는 원래 없는 거야.

그 사람은 그걸 깨닫는 거니까.

그 사람이 그럼 어디로 갔나?

이런 질문은 말이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하나고요.

 

두 번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윤회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 윤회는 개인적인 현상이 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현상이 되면 윤회가 뭐죠?

환생이 되는 거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계속 경험을 축적하면서

어느 순간에 완전한 진리로 합일되는

이런 컨셉으로 가니까

그건 완전히 힌두교 컨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불교에서는 원래 그런 거는 없어.

촛불에 불이 옮겨붙듯이 소프트웨어만 옮겨가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도 문장상으로는 언어로는

윤회를 끝마쳤다이런 표현을 쓰지 않습니까?

그러면 윤회를 끝마친 존재가 있고

그럼 그 존재는 어디 가서 머무느냐? 라는

언어학적인, 문장에서 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기본적으로 윤회는 현생에서 끝이 나는 거죠.

그럼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것이죠.

그럼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죠.

 

그래서 이거를 불이 꺼진 상태다라고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 불을 다른 초에 옮겨 붙일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거죠.

이 초에 불은 꺼졌으니까

그럼 다음 초에 불을 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뭡니까?

여기서 윤회라고 하는 프로세스가 중지가 되는 것이죠.

끝나버리는 것이죠.

요게 윤회는 끝났다라고 하는 것에

정확한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 불꽃이라고 하는 것은

소스 코드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소스 코드가 파괴돼 버리면

파생 코드를 만들어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소스 코드를 부숴버린 것이죠.

생은 부숴졌다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불교의 진정한 참뜻을 가지고 좀 살펴보면

소스 코드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은

편향된 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편향성을 가진 의식.

 

우리는 늘 편견을 갖고 있죠.

또는 뭐 스트레오 타입이라든지

이건 이런 거야라고 당연히 그런 거야, 원래부터 그런 거야라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건 전부 왜곡되어 있는 관점이죠.

 

그것을 편향성이 있는 의식이라고 그러는데

그것을 12연기에서는 무명--식이라고 이야기하시죠.

 

무명_ 근본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의도를 가진 행동을 하고

거기서 몇 가지 레슨을 취합해서

, 이건 이런 거구나라고 하는 내적 확신을 가지는 그것이 바로 의식인데

그 의식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편향되어 있다.

이게 불교에서 얘기하는 무명--식의 뜻이죠.

 

그러면 아라한이 수행을 통해서

근본 무명을 부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이 편향된 의식이 부서지는 겁니다.

이 편향된 의식

즉 무명--식의 과정이 중단되면

그 뒤에 우리가 세상에 나와서 접촉하고

그 접촉에 따른 느낌이 있는데

그 접촉과 느낌 다음에 나오는 심리 작용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뭐냐 하면 그럼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어 좋으면 내가 챙겨야지, 나쁘면 밀어내야지

그런 심리적 과정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그 편향성이 있는 인식 때문에 판단이 서는 거잖아요.

 

근데 편향된 인식이 사라지면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게 된다.

판단하지 않게 되면은

좋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그다음 과정이 좋은 것은 움켜잡고, 싫은 것은 밀어내는 그 과정도 없어진다.

그러면 그 과정이 없어지면

좋은 것을 갈무리 해놓고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해놨다가

다시 다음에 어떤 상황이 생기면 그게 튀어나올 거 아니에요.

그게 거든요.

그게 뭐가 생겨버린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없어진다.

 

그러니까 일단 사물을 봤을 때

현대식으로 얘기하면 스트레스가 없어진다.

싫은 것은 싫어서 스트레스고

좋은 것은 좋기 때문에 가져야 되기 때문에

못 가지면 스트레스 아닙니까?

스트레스가 일단 없어진다.

 

두 번째는 그래서 애--유의 과정이 없다고 하면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계기를 만나서

생하는, 튀어 올라오는 이런 일어나는 이 과정이 없다

그걸 불생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더 이상 생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음에 생로병사니까

그런 일종의 기승전결의 여러 전 과정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생로병사, 기승전결, 또는 어떤 서사, 이야기죠.

이런 것을 전부 불교에서는 괴로움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윤회를 끝마친다는 얘기는

12연기 중에서 환멸연기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라고 하는 환멸연기에 해당한다, 정확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윤회를 종식시키는 열반의 개념을 12연기로 보면은

결국은 환멸연기고

이것을 끊는 것이죠.

여기서 이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명--식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그것이 일으키는 심리적 반응이 없어지고

그러면 어떻게 되냐?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그런 마음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은 선하냐 악하냐, 아름다우냐 추하냐

그다음에 좋으냐 싫으냐

그리고 뭐 옳으냐 그르냐 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상태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그래야 괴로움을 면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윤회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양식이고

거기서 받는 괴로움이 그 결과라고 하면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윤회를 끝마친다는 의미 이기도 하지만

현실 생활에서 보면

더 이상 편향된 의식상태, 왜곡된 의식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시비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그다음 과정들이 사라진다.

그것이 괴로움을 끊어내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윤회를 열반과 관련시켜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