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환생과 윤회

Buddhastudy 2025. 2. 24. 20:04

 

 

환생은 다시 산다는 뜻이고,

윤회는 인과의 수레바퀴(삼사라)가 굴러간다는 의미디.

윤회가 환생보다 큰 개념이다.

불교는 이전의 환생 개념을 윤회로 확장,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무아론으로 환생론을 불식시켰다.

무이지만 윤회는 가능하다.

촛불 A에서 촛불 B로 옮겨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상을 받거나 벌을 받으며 세세생생 다시 태어나는 주체는 없다.

없어도 그 여파는 있다.

공간적으로는 주변에 시간적으로는 후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지금 바로 사는 것은

죽음 후의 평가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참 의미에 가깝다고 하겠다.//

 

 

 

오늘은 환생과 윤회에 관하여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환생과 윤회 비슷한 말 같기도 하고 좀 헷갈리죠.

그리고 이 환생과 윤회라고 하는 것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특히 윤회가 환생이냐라고 하는 것 때문에

대단한 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무아론을 주장하기 때문이죠.

 

무아론이라고 하는 것은

산스크리트로 이야기하면 안 아트만이잖아요.

안은 낫이라는 뜻이고

아트마는 신성하고 영혼 불멸하고 순수한 영혼이라는 뜻인데

그러면 힌두교에서는 현상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껍데기고,

영혼 불멸한 아트만은 그 업에 따라서 다시 환생하고 환생하고.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난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불교에서 무아론은 뭐냐 하면은

윤회는 있지만

다시 태어나면 환생은 없다

더더군다나 거기서 상을 받는 자, 벌을 받는 자

그런 주체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데 불교에서는 윤회를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뭐야?

아니 무아라며 근데 왜 윤회라는 말이 있는 거지?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는 거지?

 

그러면은 불교에서는 그게 아니고, 내가 윤회하는 것이 아니고

업이 윤회하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데 들어보면은 그게 약간 요령부득이고

좀 잘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설득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하네, 무아이면서도 자꾸 윤회를 이야기하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불교공부하는데 어떻게 보면은 방해가 되기도 하고

나중에 크게 도약을 하게 되는 관문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환생과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수 있습니다.

 

환생은 좀 더 힌두교적인 개념이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영혼 불멸의 영혼이

어떤 오염을 뒤집어쓰고 끝없이 세세생생 정화되어 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영혼불멸성을, 자신을 획득한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불교는 이 힌두교

즉 인도적 사고를 뒤집어 엎어서, 뒤집기 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환생이 아니라 윤회다

이런 얘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때 윤회는 환생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죠.

이때 윤회는 나 ,또는 다른 사람, 인간, 동물, 산천초목, 우주, 모든 것은 윤회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윤회라고 하는 것은

영원불멸의 영원히 이렇게 삶을 거듭 사는 것이 아니고

삼사라라고 그래서 수레바퀴잖아요.

수레바퀴 굴러간다.

굴러가는 게 뭐냐?

인과가 굴러간다.

원인과 결과, 그 속에 그 사이에 또 연이 개입하면서

인연과로 대단히 복잡하게 굴러간다.

이것이 삼사라의 바퀴다.

 

그래서 윤회는 일어나고 있고

윤회는 지금 우주적 현상의 실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힌두교에서 환생을 이야기할 때

그 환생은 윤회의 특수한 케이스고

그것은 재생, 다시 살아난다, 다시 산다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직결되어 있죠.

그리고 이것은 자아의 문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불교와 힌두교는 지향점이 다른 것이죠.

불교는 어찌됐건 그 에고를 해소하는 것이고

힌두교는 에고를 해소한 다음에

아트만, 영혼불멸한 실체적 존재를 획득하는 것이죠.

그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좀 다른 게 아니고,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힌두교는 환생을 강조하고

불교에서는 윤회를 강조하는데

그 윤회 속에 자아는, 에고는, 나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촛불에 많이 비유합니다.

촛불은 두 가지로 비유하는데

하나는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그게 전등이잖아요.

불을 밝혔는데

그 촛불을 이렇게 불을 주면

다른 촛대에 불이 옮겨붙지 않습니까?

이게 점등이죠.

점점이 밝아지는 것이니까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입니다.

이게 한 부분이고

 

반대로 윤회도 마찬가지.

윤회를 설명할 때도

아니 내가 없는데 뭐가 윤회한다는 거야?”

이렇게 얘기했을 때, 촛불을 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봐라.

촛불은 이쪽 촛불에서 저쪽 촛불로 불을 옮길 수 있지 않냐?

촛불 초 자체는 a라는 초와 b라는 초가 달라서 상관이 없지만

a라는 초에 붙은 불이 b라는 초의 불로 옮겨가지 않느냐?

그래서 이 옮겨가는 것이 업이 옮겨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면

그때 우리가 인사이트, 통찰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러면 내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오늘날 이렇게 어렵게 사는

이런 논리는 없는 거죠.

그때 초와 지금의 초는

a와 초 b는 전혀 다른 것이죠.

다만 어떻게 보면은 운영 체계

오퍼레이션 시스템, 혹은 소프트웨어, 아니면은 라이프 스타일, 아니면 기질, 특질

그다음에 쌓아 올린 어떤 업이죠.

그런 어떤 과거의 경력의 덩어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어떤 소프트웨어가 옮겨갔을 수는 있죠.

뭐 그 정도 우리가 이해해 줄 수는 있죠.

 

그러니까 촛불에 비유하면서

초가 저쪽에 가서 또 생긴 게 아니고

그냥 불만 옮겨간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 불이 좋은 불이면 세상을 밝히는 거고

나쁜 불이면 세상을 태워버리겠죠.

 

그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의 개념이고

그 윤회를 인과의 수레바퀴, 업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는

영향을 말하는 것이죠.

영향을 끼친다.

어디에?

공간적으로는 주변에

시간적으로는 후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잘해라

좋은 삶을 살면

후세와 혹은 주변에 빛이 되고

나쁜 삶을 살면

그 불이 그대로 옮겨가서 다 태워버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하나 촛불의 비유가 윤회에 더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주를 마그네틱 테이프라고 생각하면

보통 전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전생의 기억이 10살 이전에 거의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3~ 6살 때는 전생을 기억하고

거기 장소도 기억하고, 사람도 기억하고, 상황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은 점점점점 없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그 테이프 기억 장치 보면

데이터를 삭제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거죠.

소프트웨어로 보면, 특히 기억 장치로 보면, 기억 저장 장치로 보면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과

그 전생이 나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다른 얘기라는 것이죠.

 

기억 장치니까

거기에 이 데이터도 있고, 저 데이터도 있는데

현생을 받으면 미처 지워지지 않은 데이터가

버거일 수 있죠. 버거라고 해야 되나?

하여튼 기본적으로 그런 전쟁을 전생의 데이터가

비활성화된 채로 있을 수 있고

그것은 현생을 살면서 새로운 기억으로 저장되기 시작한다.

데이터 저장의 문제다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적인 그 상황들, 지식들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환생의 개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환생이라는 말 안 쓰고, 윤회라는 말을 쓰는데

또 불교는 워낙 바다처럼 넓다 보니까

환생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도 있죠.

티벳불교 같은 데서는 이렇게 태어난다.’

그런데 기본적인 개념은 윤회다.

윤회는 삼사라, 인과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은 무아여도 전혀 상관없거나

무아를 훨씬 더 정확하게 해석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윤회의 참뜻은 뭐냐?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인과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은 유아 무아와 상관없는 우주의 실상이고

우주의 실상으로 부처님이 제시한 법칙은

딱 한 개, 연기법밖에 없죠.

 

연기법이라고 하는 것도 인연과지 않습니까?

조건이 결합되면 생기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소멸하는 것이다.

생멸을 연기법으로 설명을 하니까.

마찬가지로 원인이죠.

원인과 결과의 결합 분해에 따라서, 결합과 해체에 따라서

현상은 계속 굴러간다라고 하는 것이니까

윤회라고 하는 개념도

연기법의 특수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윤회를

나의 어떤 마음공부에서 지침, 혹은 참고해야 되는 것은

내 삶은 내 삶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과 후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밝히느냐? 불태워 버리느냐?

뭐 요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살아서는 나 자신을 당연히 위한 것이지만

내 몸이 무너지고 난 뒤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회생활에서도 훌륭하게 산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삶의 행적이나, 해놓은 업적

장학재단을 세웠다든지, 또 불우이웃을 도왔다든지, 올바르게 살았다든지

하는 것들이 귀감이 되지 않습니까?

똑같죠.

그게 다를 일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나 아니어도, 타인을 위해서 올바로 사는 것은

나와 남을 동시에 이롭게 하는

우주적으로는 굉장히 환영할 만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불교적 의미의 자비고, 사랑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자신에 좋고

죽어서는 세상에 좋은 이것이 윤회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내가 어떻게 되노?

내가 죄와 벌을 어떤 식으로 정산하냐?”

이런 식의 윤회관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공부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윤회를 인과의 수레바퀴라고 보고

내가 잘 사는 것, 올바르게 사는 것, 좋게 사는 것은

나의 주변과 후세에 빛이 된다, 라고 하는 것으로

환생은 잊어도 좋다.

윤회가 더 적합할 것 같다, 라는 말씀을 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