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저는 2년 전에
“남편을 이기지 않겠습니다” 라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혼을 하게 되었고
오히려 지금 훨씬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다 두 번째 재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 기도문이 지금의 저한테는 해당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다시 기도문을 받아야 할까요?//
보살님의 성격은 혼자 사는 게 좋아요.
같이 살려면 져야 해.
혼자 살면 좋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같이 살려면 져야 해.
왜?
이기면 상대가 죽어.
그러니까 보살님의 업이 ‘좋다, 나쁘다’ 이런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니 처음부터 자기 업을 알아서 법대로 살든지
즉 출가해서 비구이가 되든지 ,사회 활동을 하든지
이랬으면 아마 그동안에 그런 괴로움 안 겪고
아주 재능도 발휘하고 똑똑하고 잘나가는 여자가 됐을 수도 있어요.
결혼해서 신세 조진케이스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는데.
근데 그게 결혼했으면 어떻게 되냐?
숙여줘야 해.
그리고 자기 업을 모르니까
그 똑똑한 것만으로 살기 때문에, 이게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업이 좋고 나쁜 게 없어.
업이 그 인연을 따라서 맞는 거예요.
부드러울 때는 부드러워져야 되고 강할 때는 강해져야 되는데,
부드러울 때 강해지거나 강해질 때 부드러워지면
사고가 생기죠.
그러니까 본인이 지금도 그 업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예를 들면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남편이 문제가 아닌 줄을 본인이 확실히 알아야
이게 내 문제인 줄을 알아야
남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나 이런 게 없다는 거예요.
내가 그걸 못 맞춰서 생긴 문제고
내가 그 인연을 몰라서 저질러진 문제지
그 사람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말 못 할 어떤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인연이라면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럴 케이스도 있어요.
그렇게 안 했다면 다행이고.
그건 그 사람이 이 세상적으로 보면 아주 나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인연으로 볼 때는
그게 살라고 치는 몸부림에 속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 인연을 확실히 기도를 해서
“아, 이런 인연이구나” 하는 걸 알면
“이런 업이구나” 하는 걸 알면
바로 남편에게 대한 원망이나 이런 게 다 없어져요.
이건 “내가 잘못했다” 하는 후회를 하라는 게 아니야.
아, 내가 이런 인연이구나.
내가 처음부터 내 꼬라지를 몰라서.
내 인연을 내가 몰라서 내가 어리석어서
쥐가 쥐약을 먹듯이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래서 애꿎은 사람 괜히 고생시켰구나”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미움이 완전히 사라진다.
근데 지금 이걸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되냐?
이 인연을 확실히 모르면
그게 피해 의식이 지금 젖어 있다.
피해 의식이 젖어 있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한 번 결혼하니 죽고
또 한 번 결혼하니 또 못 살 인연이 되고 이러냐?”
이렇게 자기를 한탄하면 안 돼.
두 번의 고통을 통해서
“아, 인생이 이런 거구나” 이걸 깨쳐야 돼.
그러면 이것 자체가 다 좋은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남편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이 자식들이 이 인연을 안 받는단 말이에요.
미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을 한탄하는 것이
내 가슴속에 있으면
이 자식들에게 미움이나 한이, 업이 이미 벌써 내려가 있죠.
그러나 내가 지금이라도 풀면
아이들 속에 있는 게 많이 풀리게 되죠.
그래서 기도는 그대로 해야 됩니다.
남편이 살았냐, 안 살았냐, 죽었냐, 같이 지금 사냐, 안 사냐
이런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거는 여러분들이 선택을 하시면
살기 싫으면 안 살아도 되요.
그러나 내 가슴속에 있는 이 근본, 이것은 풀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된다.
이게 다 풀어지면
다시 말하면 이렇게 젖으면
그러면 기도를 그만둬도 되겠죠.
근데 그게
그 맺힌 게 그게 쉽게 풀릴까?
...
없는지는 기도를 좀 더 해봐야 돼.
모든 사람이 다 없다 그래.
다 잊어버리고 원망도 안 한다 그래.
그런데 그거는 좀 더 해봐야 돼.
그러고 그게 없으면, 그런 게 정말 없으면
“기도 이거 그만해도 되겠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안 들어.
뭔가 잠재되어 남아 있으니까
“이건 나하고 안 맞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지.
정말 없으면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그분들이 참 잘 돼야 되겠다. 나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하는 마음의 기도가 계속되기 때문에
“이 기도를 바꿔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안 들어.
“이런 기도를 그만해야 되겠다,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이게 잠재되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좋은 질문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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