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의 나라로 '나미브 사막'에서 그 국호를 따왔습니다.
나미비아의 국기는 199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제정되었습니다.
왼쪽에는 파란 삼각형, 중앙에는 빨간 띠,
오른쪽 아래에는 녹색의 삼각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 띠 부분을 하얀색으로 둘러싸고 있는데요.
파랑은 푸른 하늘과 대서양과 비를
초록은 녹업자원을 의미합니다.
빨강은 독립투쟁을 위해 흘린 피와 국민을 뜻하며
하얀 부분은 평화와 단합을 의미합니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황금빛 태양 모양은 광물, 생물자원을 나타내며
12개 빛은 나미비아의 종족을 표상합니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빈트후크입니다.
북쪽으로는 앙골라와 잠비아, 동쪽으로는 보츠와나,
남동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은 대서양에 인접해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82만 제곱킬러미터로 세계 32위이며
한국면접보다 8배 정도 큰 크기입니다.
나미비아는 몽골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두 번째로 적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26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약 300만 명인 인천광역시에 약간 못 미치는 인구입니다.
나미비아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130억 달러
이는 세계 120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모리셔스, 알바니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나미비아의 인구 구성은 오밤보족, 카방고, 헤레로, 다마리족의 흑인들이며
그 외에 독일계로 추정되는 백인과 혼혈인이 살고 있습니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각 부족어와 아프리칸스어, 독일어가 사용됩니다.
나미비아인의 종교는 9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가톨릭 및 개신교, 그리고 토착신앙 등이 비교적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2. 역사
나미비아 국가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인종적으로는 오랜 옛날부터 코이산 부족의 거점이었습니다.
최초로 이 지역에 정착한 부족은 유목민족인 산족이었는데요.
이후 코이코이족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산족과 마찰을 일으키게 됩니다.
코이코이족은 산족을 몰아내거나 흡수하면서 나미비아 지역을 지배하는 부족이 되었습니다.
그 후 반투족이 나미비아 중남부의 고원지대에 터전을 잡으면서
남아프리카 사회에 최초로 부족구조가 형성됩니다.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인들이 나미비아 근처 대서양 연안에 종종 출몰하긴 했지만
불모의 사막지대라 큰 관심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19세기 중순이 되어 독일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곳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유럽 열강들의 진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제국의 식민지 침략의 일환으로
나미비아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식민통치 기간 동안 나미비아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혹독하게 착취했습니다.
이에 저항한 나미비아의 부족인 헤레로족, 나마족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독일군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습니다.
이러한 독일제국의 악랄한 식민정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때문에 나미비아에서는 현재까지도 독일에 대한 앙금이 꽤 남아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1920년 나미비아는 남아프리카연방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1990년이 될 때까지 무려 70년 동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임통치가 이어졌는데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UN에서는
1968년 남서아프리카를 현재의 이름인 ‘나미비아’로 개칭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법적인 통치를 중단하고, 즉시 철수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계속해서 UN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나미비아 지역 내부에서도 계속해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이어졌지만
인구도 적고 산업도 낙후되어 거의 남아공의 경제에 종속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남아공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해 고립되기 시작하면서
나미비아 지역의 독립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지지에 힘입어
1990년 남아공 위임통치령에서 분리 독립에 성공한 나미비아는
1990년 3월 1일, 샘 누조마를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나미비아의 제헌의회는
1990년 1월 언론, 출판,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과 다당제, 민주주의, 삼권분립과
5년의 대통령 임기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90년 3월 1일 남서아프리카 인민조직 SWAPO의 지도자인 샘 누조마(Nujoma)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대통령제 국가로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이후 2005년 당선된 포함바 대통령에 이어
현재는 ‘헤이지 가잉곱’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헤이지 가잉곱 대통령은
2018년 대규모 국가 부채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장,차관 등 행정 공무원들의 해외여행을 일시 금지하는 등
국가 지출 감축을 위한 모범을 보였다고 합니다.
나미비아의 경제는 국민소득수준을 보면 아프리카국가들 중 잘 사는 편에 속하지만
인종 간 빈부격차가 심하며 체계적인 재분배 정책의 미비로
적도기니와 함께 빈부격차 세계 1,2위를 다투기도 했습니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가 약 120배에 달하는데요
특히 백인들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지 흑인계 인구들은 불만이 쌓이는 편입니다.
산업 자원은 구리와 아연이 산출되고 있으며, 세계 3위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산출권의 대부분이 미국과 영국의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어
현지 작업만 나미비아에서 할 뿐, 그로 인한 국가수입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대신 최근에는 새로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남대서양 투어와 나미브 사막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아름답고 깨끗한 나미비아의 바다는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졌고
세계에서 유일한 붉은 모래사막인 나미브 사막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나미비아를 찾는다고 합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나미비아는 영토 중앙에 나마콸란드(Namaqualand)라고 불리는
해발 1,000~2,000m의 고원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습니다.
이 고원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폭 80~120km의 좁은 ‘나미브 모래바다’로 불리는 사막지대가
고원의 동쪽으로는 칼리하리 사막이 펼쳐집니다.
나미비아의 기후는 전형적인 사막기후로 밤과 낮의 온도차가 매우 크고 건조합니다.
안개가 많이 끼지만, 강우량이 적고 일정하지 않아 가뭄이 잦은 편입니다.
나비이아의 국민들은 사냥과 채집, 농사와 도시직장인까지 적어도
11개의 주요 부족이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언어와 문화, 생활양식을 보입니다.
독특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헤레로족
난해한 헤어스타일과 큰 목걸이를 한 힘바족 여성
집단거주를 하며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부시먼족 등이 함께 모여살고 있습니다.
나미비아는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지역이라 독일 식민지 시절에 광산주위에 마을이 세워졌었습니다.
그러나 광산의 채산성이 떨어져 광산이 폐쇄되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마을이 되었는데요.
현대에 들어서는 그 폐허가 된 마을이 관광명소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콜만스코프(Kolmanskop) 지역이 있습니다.
이 지역은 1954년 폐광되면서 유령마을이 되어버린 곳인데요
이 곳의 특이한 경관 때문에 현재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자주 쓰인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나미비아의 독특한 자연환경 덕분에
나미비아에만 서식하는 희귀생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미비아의 해안가에서는 그 곳에서만 유일하게 서식하는 사막비개구리가 살고 있습니다.
남부아프리카는 건조한 지역이라 양서류가 살기 어렵지만,
나미비아 해안가는 1년에 100일 가까이 안개가 낀 습한 지역이기 때문에 양서류가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식물로 알려져 있는 웰위치아 미라빌리스는
나미비아와 앙골라의 사막지대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생물인데요.
개체수가 워낙 적어서 다른 지역으로의 반출이 금지되어 있고
현지에서는 철조망과 군인들까지 동원해서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미비아의 사막은
나미비아 해안에 형성된 세계 유일의 ‘해안 사막’입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해류 바람에 의해 형성된 모래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모래의 색이 붉은색인 걸로도 유명합니다.
영화 <매드맥스>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나미비아의 대표적인 광광명소이기도 합니다.
5. 인물
나미비아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나미비아 코이산족 출신에 ‘은딱카우 끄토마(Nǃxau ǂToma)’가 있습니다.
영화 <부시맨> 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그는
<부시맨> 출연 당시에는 무명 배우였기 때문에
출연료를 300달러. 한화로 약 40만원을 받고 출연했으나
영화가 크게 성공하자, 후속작의 출연료는 한화로 약 7000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전 국내 신문 기사나 영화칼럼에서
마치 문명을 모르던 이가 영화 덕분에 돈맛을 알고 타락했다라는 비난의 글이 실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추측과는 달리, 코이산족은 이미 상당수가 현대문명 속에서 살고 있었고
‘은딱카우 끄토마’ 역시 어릴 적부터 이미 서구문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홍보차 헐리우드와 홍콩 등지를 다니기도 하고
1991년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그 당시 한국의 코미디프로그램인 <봉숭아 학당>에 특별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은딱카우 끄토마’는 1980년부터 94년까지 영화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영화 출연으로 번 수입으로 나미비아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수도와 전기가 설치된 벽돌집을 짓고
은퇴 후에는 농부로 살면서 옥수수, 호박 등의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길렀습니다.
나미비아 출신으로 엄청난 유명세와 재산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작은 농장을 관리하며 직접 사냥도 하는 검소한 삶을 살았던 은딱카우 끄토마는
2003년 뿔닭 사냥을 나갔다가 결핵에 걸린 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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