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개
‘나우루’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Nauru ‘나우루 공화국’입니다.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라로
오랜 세월 동안 앨버트로스의 똥이 산호초 위에 쌓여서 섬이 된 나라입니다.
나우루의 국기는 파랑 바탕에 가운데 노란 선이 있고 아래쪽에는 하얀 별이 있습니다.
파란 바탕은 태평양을 의미하고, 노란 선은 적도를,
12개의 빛줄기를 나타내는 별은 12부족의 단결을 의미합니다.
이 별은 나우루가 적도에서 1도 남쪽에 위치한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 적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21 제곱킬러미터로 약 42 제곱킬로미터의 경기도 오산시의 절반 정도 크기입니다.
면적순으로는 세계에서 바티칸시국, 모나코 다음으로 3번째로 작으며,
공화국 중에서는 가장 작은 국가라고 합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1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바티칸, 투발루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인구가 적습니다.
나우루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1억 달러.
이는 세계 184위로 감비아의 10분의 1, 기니의 100의 1 정도 수준입니다.
나우루의 국민 구성은 나우루인 약 60%, 기타 태평양섬 원주민 30%이며
나머지는 중국인과 유럽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어는 대부분 미크로네시아계 원주민이 사용하던 나우루어를 사용하며
영어도 통용됩니다.
나우루의 국민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를 믿으며 그 중 3분의 2는 개신교, 3분의 1은 카톨릭교도입니다.
2. 역사
나우루인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종적 특징으로 볼 때, 미크로네시아인 및 폴리네시아인이 결합하여
현재 나우루인의 조상이 생겼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명인 나우루(Nauru)는 “나는 해변으로 간다”는 의미의
나우루어 ‘아나오에로(Anaoero)'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789년 영국 헌터(Hunter)호의 존 피언(John Fearn) 선장이 항해 도중에 나우루를 처음 발견하였고,
‘유쾌한 섬’이라고 명명한 뒤로 30~40년간 때때로 유럽인들이 나우루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부인이 나우루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총기가 함께 유입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부족 간의 내전이 과격한 경향을 띄기 시작해서
나우루의 인구가 1400명에서 900명으로 감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우루는 1886년부터 독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으며, 독일의 지배는 1914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나우루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은 추방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19년부터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3국에 의한 국제연맹의 신탁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즈음부터 나우루의 주요자원인 인광석 채굴에 관한 권리는
‘영국 인광석위원회’가 독점했으며
이러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나우루가 독립할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우루는 독일과 일본에 잠깐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종전 후인 1947년부터는 다시 영국, 호주, 뉴질랜드 3국에 의한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습니다.
원주민 사이에서 점차적으로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자
나우루는 자치 기간을 거쳐 1968년 1월 31일 공식적으로 독립하였으며
1970년에는 나우루 정부가 ‘나우루 인광석 주식회사’를 설립, 인광석 채광권을 되찾아 왔습니다.
인광석 수출로 인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나우루는
198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달하는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국가는 이렇게 축적한 부를 국민들에게 조건 없이 배분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동안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자원 채굴, 인광석 고갈,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해
나우루는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나우루는 엉뚱하게 조세피난처나 혹은 마피아들의 돈세탁 등과 같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요.
이것도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나우루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더욱 더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3. 정치& 경제
나우루는 인광석으로 인해, 198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게 됩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우루가 얼마나 잘사는 나라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68년, 독립과 동시에 호주, 뉴질랜드가 독점하고 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가 되찾아오게 되면서 나우루는 한순간에 부자국가가 되었습니다.
1만 명 정도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부가 분배되어 전 국민이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개인 자가용을 넘어 개인 비행기를 갖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100% 복지를 지향한 나우루 정부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1년에 연봉 1억씩 지급했습니다.
필요한 노동력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게 되고, 심지어 공무원도 외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펑펑 쓴 결과 1990년대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국가는 비상사태로 빠지게 됩니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하려 했으나 국민들은 관심이 없었고
비상사태를 인식하는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의 국가 산업을 해보았지만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정부 기관에서도, 부정부패가 심각해 국가 자산 운용도 방만하기 일쑤였습니다.
정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이는 풍부한 자원만 믿고 그동안 국정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할만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상사태는 2013년에 바론 와카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90%대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20%로 떨어지는 등 좋은 징조도 있었습니다.
또한 완전한 인광석 고갈에 대비하여
호주에 있는 부동산, 국영선박회사, 국영항공사 등에 장기 현금 투자 사업에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투자 수익에 너무 의존한 결과 정부 재정은 바닥을 보이는 역효과도 있어
정부는 임금 동결과 공공부문 축소에 나섰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나우루는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위치한 타원 형태의 1개의 섬으로,
전체 면적은 21㎢에 불과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나우루는 걸어서 4시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국토는 인광석이 산출되는 내륙지대와
주민 대부분이 거주하는 해안지대로 구별됩니다.
나우루 섬의 전체국토 중 경작을 할 수 있는 농지는 거의 없고
산호가 100%라고 합니다.
나우루의 기후는 열대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고온 다습한 기후가 이어집니다.
독일이 나우루를 병합한 1888년에 섬 주민들은 춤을 즐길만한 시간도 없었고 전통춤도 금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토착행사들은 서양문화에 잠식당했고
현재 문화의 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도
집에서 위성을 통해 뉴질랜드TV를 챙겨보는 것 정도라고 하는데요.
호주식 풋볼(Australian rules Football)은 나우루 국민들에게는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신봉의 대상입니다.
자식의 이름을 위대한 풋볼선수의 이름을 따서 지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나우루에도 8개 팀이 참가하는 프로풋볼리그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역도와 유도와 같은 스포츠들을 즐겨 하면서
올림픽 유도종목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나우루 국민들의 식생활 또한 상당히 특이합니다.
지리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국민들이 생산에 전혀 종사하지 않고 국가에서 퍼주는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생활한 탓에
거의 모든 생활용품이나 식재료들을 수입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이 다 망가지고
어업도 망했습니다.
나우루 사람들은 대부분의 끼니를 수입냉동식품과 영양가가 낮은 정크푸드에 의존해왔는데요.
그 결과 나우루는 인구의 94.5%가 비만 또는 과체중이 되었고
또한 당뇨병 발병률이 40%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신장질환과 심장병도 흔하다고 합니다.
5. 인물
나우루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마커스 스티븐’(Marcus Stephen)이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나우루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젊은 시절 국가대표 역도 선수였습니다.
1969년생인 그는 호주 멜버른으로 유학 가서, 경영 회계학을 전공했는데
스포츠 활동을 하던 중 역도를 접하게 되고
나우루 국가대표로 올림픽에도 출전했습니다.
역도 선수로서의 마커스 스티븐은 4년마다 개최되는 영국 연방 국가들의 대회인
커먼웰스 대회(Commonwealth Game)에서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여러 가지 중량급으로
총 7개의 금메달과 5개의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마커스 스티븐’은 역도 선수를 은퇴 후, 대학시절 전공한 회계학을 살려
나우루 올림픽위원회 재무를 맡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국내 정치계에서도 경제 개발 산업부 장관,
이후 나우루 수산 자원 장관을 지내며 정치생활을 하다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되어, 나우루 경제와 지리적 위기를 해외에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대통령 시절, 그는 2011년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나우루와 같은
섬나라가 물에 잠길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을 호소하며
지구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11월 반대정당이 제기한 부패 혐의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후
꾸준히 정치계에 복귀하고자 노력했지만
2016년 선거에서 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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