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파괴업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파괴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자체, 물론 자기가 자기 업을 생산할 수도 있고 생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생산업을 파괴하는 것을 주된 것은 생산업을 파괴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서 원래 자기 수명은 아직 남아있는데 갑자기 요절을 하는 경우. 이런 경우도 파괴업이 작용했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서 대와닷다 같은 경우는 선업을 지었습니다. 선정을 닦아서 이 선정을 닦는 것은 삼매를 얻었어요. 삼매를 얻어서 신통까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럼 이 삼매라고 하는 것은 선업 중에 강력한 선업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이 선업이 다음 생에 결과를 맺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나면서 부처님에 몸에 피를 내게 하고, 성가를 분열시키는 아주 큰불선업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 불선업이 너무나 커서 이 불선업이 대와닷다가 이전에 지었던 선업을 다 파괴해버리고 결국은 지옥으로 무간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거죠. 이런 것도 일종의 파괴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좋은 쪽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앙구리 말라라는 아라한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외도의 꾐에 빠졌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총명한 앙구리 말라라고하는 분이 아주 총명한 분인데, 외도 밑에 가서 수행을 하다가 그 외도의 스승이 있었어요. 그 스승의 부인이 이 사람이 워낙 똑똑하고 젊고 잘생기고 이러니까 이 스승의 부인이 좀 음탕한 사람이었나 봐요. 그래서 이 제자를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제자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이 부인이 남편에게 음해를 합니다. 저 제자가 나를 욕보이려고 했다. 이렇게 음해를 해서 그 스승이 아주 질투와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제자를 파멸시킬 그런 계획을 가지고, 지금부터 사람을 천명을 죽이면 내가 너에게 아주 귀한 가르침을 주겠다. 이렇게 거짓으로 사람을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워낙 신심이 두텁고 스승에 대해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꾐에 빠져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한 명, 두 명, 세 명, 이렇게 사람을 죽여서 결국 999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사람을 한 명 죽일 때마다 손가락을 잘라서 그걸로 목걸이를 만듭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하나씩 하나씩 목걸이를 만들어서 그래서 앙구리 말라는 것이 손가락으로 만든 목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아주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어서 999명이 죽이는 그런 큰 악업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천명을 채우려 할 때 나타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앙구리말라의 어머니였습니다. 이 어머니마저도 죽이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그걸 아시고, 저 사람이 어머니마저도 죽이면 더이상 헤어나지 못할 큰 악업을 짓게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앙구리말라를 구해주기 위해서 갑니다. 그래서 이 앙구리말라를 구해주죠. 결국은. 부처님께서 구해줍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가 결국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를 하게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을 해서 아라한까지도 됩니다. 이렇게 극악무도한 999명이나 죽인 살인자가 부처님의 제도에 의해서 출가를 하게 되고 아라한까지 되는데, 아라한이 되는 순간 우리가 지금까지 아라한이 되는 순간부터는 번뇌가 다 사라집니다. 그러면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게 되겠죠. 그죠? 업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은 다음 생이 없어집니다. 다음 생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야 전생에 지었던 과보를 받을 텐데, 더 이상 삶을 태어나지를 않으니까 이 사람은 더 이상 과보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은 그런 살생업은 원래는 다음 생에 지옥에 떨어질 과보인데 다음 생을 받지 않고 아라한이 되어서 해탈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과보가 이 업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겠죠. 이 업을 아라한의 깨달음이 살생업을 파괴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생에 지옥에 떨어질 그 업을 파괴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도 파괴업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앙굴리말라가 그 생에 받아야 될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해탈하기 전에 그 생애는 앙구리말라가 탁발을 나가기만 하면은 사람들이 자기 부모 형제가 죽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이래서 결국은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결국은 이 앙굴리말라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하지만 앙굴리말라, 아라한으로써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이전에 지었던 그런 살생업은 그 생으로 끝내고, 다음 생은 업이 결과가 파괴가 돼 버려서, 더 이상 과보를 받지 않는 그렇게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일종의 아라한이 되는 깨달음이 이 사람이 내생에 받을 악업의 과보를 파괴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도 파괴업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동안 짓는 업은, 그중에서 주된 업은 생산업으로 되고요 그 나머지 업들은 돕는업이 되거나 방해업이 되거나 아니면 파괴업이 되거나 이렇게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업을 역할에 따라서 또는 기능에 따라서 분류를 한 것이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업이 결과를 생산하는 순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러면 어떤 업은 생산업이 되고 어떤 업은 돕는업이 되느냐? 방해업이 되느냐? 이거는 어떤 업이 제일 강력하냐? 다시 말하면 어떤 업이 우리가 결과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주된업이 될 수 있느냐? 이거를 이해를 해야 되겠죠. 그러면 어떤 결과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라서 이 업을 분류를 한다면 우리가 네 가지로 분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거운업. 이 무거운업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이제 어떤 물위에 돌을 던지면 이거는 그냥 가라앉죠. 나무 같은 걸 던지면 가라앉지는 않지만.
그래서 그만큼 이 업은 절대적으로 중한 업이다. 무겁다. 중해서 이 업은 바로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는 업이다. 이런 것이 바로 결국 중한업. 무거운업 이라고 합니다. 또 그다음에 젊어서 짓는 업이 있고, 중년에 짓는 업이 있고, 나이가 들어서 짓는 업이 있겠죠. 그리고 죽음의 거의 직전에, 죽음에 가까이 가서 짓는 업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 가까이 가서 짓는 업이 임종 가까이 가서 짓는 업, 해서 이 무거운 업과 임종 가까이 가서 짓는, 임종 직전의 업.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고요. 그다음에 세 번째는 습관적으로 짓는 업으로 또 나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둘러보면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고요, 나쁜 짓이 일상화돼 있는 사람.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항상 남에게 보시를 행하고 남에게 좋은 덕을 베푸는, 선업이 일상화돼 있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짓는 업이 또 있어요.
그리고 습관적이거나 이렇지는 않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이 업도 지었다. 저 업도 지었다. 우리가 그냥 상황에 따라서 짓는 업들. 그런 것이 주로 모인업. 그게 있겠죠. 이렇게 해서 이 네 가지. 이런 것을 이미 지은업이라 그래요. 아까 말씀드린 거는. 이렇게 해서 무거운업, 또 임종가까이 지은업. 그리고 습관적인업. 그리고 이미 지은업. 이렇게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결과를 생산하는 순서는 임종가까이 지은업, 습관적으로 지은 업. 그리고 이미 지은업. 이렇게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이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무거운업에 대해서 설명을 한 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무거운 업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눠질 수가 있겠죠. 불선업 중에서도 무거운업이 있을 거고, 또 선업 중에 무거운업이 있을 겁니다. 먼저 불선업 중에서 무거운업은 다섯 가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무관업을 이야기합니다. 오무관업이라고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오무관업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이 업을 지으면 반드시 무관지옥에 태어나는 그런 업이라고 해서 오무관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무관업은 다섯 가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 첫 번째는. 두 번째는 아라한을 죽이는 겁니다. 세 번째는 선가의 화합을 깨는 것. 네 번째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 다섯 번째는 어머님을 죽이는 것. 이 다섯 가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업을 만약에 짓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남은 생 동안 어떤 선업을 짓더라도 이 사람은 무조건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업을 지은 사람은 절대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이 업이 너무나 강하고 지중하기 때문에 이것이 다른 업이 있는 것을 전부 방해를 하기 때문에, 선업이 있는 것을 모두 방해를 해서 다음 생에는 결정코 무간지옥에 태어나게 되는 이런 업이 바로 이 오무간업니다. 그래서 오무간업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그런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보면 가끔씩 부모를 죽이는 이야기, 자기 어머니를 죽인 이야기, 자기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가끔씩 언론지상에 보도되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아마도 이렇게 우리가 이런 업을 지으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로 그 사람들이 그런 업을 짓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그런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업을 짓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서 부처님 당시에 목련존자는 십대제자 중에서도 상수 제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왼팔과 같았죠. 오른팔은 사리불존자라고 할 수 있었고.
그런데 이렇게 최고의 제자가 돌아가실 때에는 온몸이 외도에게 뼈가 바스러질 정도로 부서져서 맞아서 그렇게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것은 그 시대에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상수 제자가 될 정도로 그렇게 뛰어난 수행력을 갖춘 분이 어떻게 죽음이 저렇게 비참한가? 이렇게 해서 그 시대에 상당히 반향을 많이 일으키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그렇습니다. 이생에 일로만 생각을 하면 그것을 알 수가 없는데, 이 목련존자께서는 전생, 아주 오랜 전생에 큰 악업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무거운 업인데. 이 목련존자가 결혼을 해서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이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장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내가 처음에 결혼해서 부모님을 잘 모시다가 나중에 되니까 좀 귀찮아 진 겁니다. 그래서 이 부모님을 남편에게 계속 부모님이 어떤 노망에 걸렸다. 문제가 많다. 이렇게 부모님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부모를 갖다 버리라는 식으로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까 어느 날은 벽에다 똥칠을 하고 부모님이 노망을 해서 이래서 도저히 안 된다. 이렇게 결국은 전생의 목련존자 아내의 설득에 넘어가서 부모를 버리려고 하게 됩니다. 수레에 싣고 저 산속에 가다가 마치 강도가 나타난 것처럼 위장을 해가지고 자기가 강도로 변신해서 눈먼 부모님을 둘 다 때려서 죽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당시에 상수 제자가 될 만큼 그렇게 바라밀을 많이 쌓은 분도 이렇게 극심한, 그러니까 아내의 그 어떻게 보면 바가지를 못 이겨서 자기 부모를 죽인 이런 아주 극악한 불선업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과보로 목련존자는 결국은 무거운 업을 지었기 때문에 무간지옥에 떨어졌고. 거기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았지만, 그 무간지옥에서 나오고 나서도 그 업이 다하지 않아 가지고 백생 가까이를 태어날 때마다 죽을 때는 저렇게 몸이 부서져서 죽는 그런 과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게 부처님 당시가 마지막 생이었기 때문에 그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런 과보는 없었겠지만, 부처님의 상수 제자가 되었던 그때도 죽을 때는 이렇게 전생과보 때문에 비참하게 죽는 그런 일이 발생을 했다는 거죠. 그만큼 우리가 이런 무거운 업을 짓는 거는 정말 세세생생 오랫동안 우리 삶에서 고통을 주고 그런 원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참 이 사리불 존자 같은 분의 일화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선한 업 중에서 무거운 업은 앞에서 설명 드린 삼매선정에 들어가는 그 업이 선업 중에서는 무거운 업이 됩니다. 이 선정에 들어갔다는 것은 예를 들어서 한 시간 동안 선정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한 시간 동안 고도로 고요한, 마음이 아주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 한 시간 동안 빈틈없이 한 시간 두 시간 이렇게 머물러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한 빈틈없이 선한 마음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선업 중에서는 이 선정의 업만큼 강한 것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 선정의 업이 선업 중에서는 중한 업이다. 다른 어떤 업에도 우선해서 작용하는 업이 바로 이 중한 업. 선정의 업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비록 이 선정에 들은 선업에서 중한업이 있다고 할지라도, 불선업 중에 그 중한업에 해당하는 오무관업을 짓게 되면은 이 선업의 업도 파괴해버립니다. 이 선업이 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거죠. 그만큼 오무관업이라고 하는 업은 무서운업이다. 그래서 이 선업의 중한 업보다 더 우선하기 때문에 이 무거운업 중에서 이 오무관업은 정말 우리가 지어선 안 될 업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업은 크게 나누면 불선업에서는 오무관업. 선업에서는 선정의 업. 이렇게 나누어서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요, 나머지 세 가지. 임종 가까이 지은 업과 습관적인 업, 그리고 이미 지은업은 다음 시간에 또 이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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