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욕계불선업과 욕계선업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욕계불선업과 욕계선업이라는 분류법은 우리가 이 지은 업이 어느 세상에 태어나게 하느냐에 따라서 분류한 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욕계불선업은 욕계 악처에 태어나게 하고, 욕계선업은 욕계 선처에 태어나게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오늘은 색계선업과 무색계 선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분류는 그러니까 색계선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업이 다음에 색계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색계선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무색계 선업이라는 것은 다음 세상에 무색계 세상 중에 한 곳에 태어나기 때문에 무색계선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색계선업과 무색계선업은 지난번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이 색계선업과 무색계선업은 삼매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욕계선업을 많이 짓는다 하더라도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정수행이라고 하는 거, 다시 말하면 고요함을 닦는, 그 선정수행. 삼매에 들어야만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선정수행을 통해서 색계 선정, 다시 말하면 색계초선이선삼선사선이라고 하는 색계 선정에 들게 되면 이때 선정에 든 그 상태, 선정에 든 그 마음을 우리가 색계 마음이라고 하고 또는 색계 선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만약에 무색계 선정, 다시 말하면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라고 하는 네 가지 선정 중에 한 가지 선정에 들었다면 이것은 무색계 선업을 얻은 거다. 무색계 선업을 지은 거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색계 선업이냐? 무색계 선업이냐? 이것은 어떤 다른 것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선정수행을 통해서, 삼매를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와 관계있습니다. 삼매를 얻었다면 그 삼매를 얻은 마음이 색계선업이나 무색계 선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색계선업이나 무색계 선업은 사마타수행이라고 하는 선정수행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선정수행을 한 사람, 한 수행자만이 지을 수 있는 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업은 그렇게 보편적인 업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60억 인구가 있지만 실제로 이런 삼매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그만큼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는것도 쉽지가 않다.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업 중에서 업의 분류 중에서 우리가 지은 이 업이 어느 세상에 태어나게 만드는가? 이거에 따라서 욕계불선업. 욕계선업. 이 두 가지. 그리고 색계선업, 무색계선업. 네 가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지은 업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네 가지로 또 분류가 가능한데요. 그 네 가지에 대해서 또 설명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은 업이 어떤 직접적으로 어떤 결과를 생산하는 업을 생산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직접적으로 결과를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업이 그 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도와주는 업을 돕는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자기가 결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다른 업이 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방해하는 업을 방해업, 그리고 다른 업을 파괴하는 업을 파괴업. 이렇게 네 가지로 설명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생산업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생산업은 실질적으로 자기 결과를 생산하는 그런 업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생애 최초로 우리가 어떤 생에 태어날 때 최초로 일어나는 식을 재생연결식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최초로 어떤 생에서 마음이 시작되는 걸 의미하는 거죠. 그래서 재생연결식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생산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 몸을 이렇게 여러분들의 몸이 좀 사람마다 다 다르죠. 그 사람의 몸이 얼굴생김새도 다르고, 건강상태도 다르고, 또 남자 여자 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다 우리가 전생에 업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몸, 몸을 생산하는 몸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 전생의 업이라고 봅니다. 불교에서는. 그래서 이 몸을 만드는 것도 직접적으로 우리 몸을 형성하게 하는 이런 업도 생산업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재생연결식이라든가 어떤 업으로 인해서 생기는 몸이나 이런 물질을 만들어내는 그런 것들을 물질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들을 생산업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생산업은 사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짓는 업 중에서 가장 힘이 강력하고, 파워 있는 그런 업들이 생산업이 됩니다. 왜냐하면, 업을 우리가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이 있어야 되겠죠. 그죠?
이 업의 힘이 약하다면 결과를 생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에 반해서 돕는 업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자기가 결과를 생산할 만큼 업이 강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이 생산업이 그 어떤 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그 반대로 자기 스스로 어떤 결과를 생산하지 못하지만, 이 생산업이 자기 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방해하는 업으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돕는 업과 방해 업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해가 좀 쉬울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으로 태어난 경우도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부잣집에 태어나서 또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아주 인간으로 태어나서도 아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는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태어나서부터 먹을 거를 잘 먹지를 못하고 먹을 거를 얻지 못해서 계속 배고픔에 굶주리다가, 그리고 또 부모님도 좀 폭력적인 부모님을 만나서 죽는, 맞아서 죽는 그런 경우도 요즘 간혹 뉴스 상에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러면 어떤 차이에 의해서 이런 일이 발생을 하는가? 이렇게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산업과 돕는업 방해업에 관계를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업은 욕계 선업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가 이생에 오게 만든 업은 선업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을 만든 것도 선업이 되는 거죠.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했는데, 우리가 좋은 부모님을 만나고, 또 좋은 음식을 만나고, 좋은 풍족한 재물을 만나고 이런 것은 이런 재물이나 부모님은 우리 업으로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거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인연들을 만난다는 것은 전생의 선업이 도와줘야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전생에 물론 주된 업, 이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업인 생산업도 선업이지만, 이 선업 이외에도 전생에 지었던 또 다른 생산업 외에도 선업이 많다면 생산업을 둘러싼 선업이 많다면, 이 선업을 도와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계속 도와주는 업으로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하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고, 좋은 음식을 만나게 하고, 좋은 환경을 만나게 해서 인간으로 태어난 그 선업이 더 극대화될 수 있도록 더 행복하게 있도록 도와주는 업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행복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걸 누리는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이런 경우는 선업을 선업이 도와주는 업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반대로 우리가 이생에 태어나게 하는 주된 업은 선업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받기는 했지만, 이 주된 업은 선업을 지었다. 그래도 가장 강력한 업은 선업이었는데. 이 사람이 전생에 또 악업을 많이 지었어요. 사소하게. 그런 악업들을 많이 지었으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데 또 전생에 지었던 악업들이 많아서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이 악업이 방해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폭력적인 부모님을 만난다든가, 좋은 음식을 만나지 못하고, 좋은 약을 만나지 못하고, 좋은 환경을 만나지 못해서 계속 고통 속에 살다가 일찍 죽거나 또 되게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른한 가지 세상 중에 생산하게 하는, 태어나게 하는 업은 한 가지 업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일생동안 지었던 업들이 돕는 업이나 방해업으로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사실 명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하고 좋은데 태어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우리가 물론 죽음 직전의 짓는 업이 다음 생을 생산하는 데에는 큰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설사 선처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많은 선업이 이걸 도와주지 않으면 선처에 태어나도 악처에 태어난 것과 똑같이 고통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불선업은 최대한 적게 하고 선업을 많이 지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죠. 이 반대로 예를 들어서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은 불선업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개로 태어나서 예를 들면 개를 가지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개로 태어나서 대게 애완견으로써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람도 먹지 못하는 좋은 음식, 좋은 환경, 것을 많이 누리고 있는 그런 개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개는 태어날 때부터 먹을게 없어갖고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다니고, 또 그나마 사람들한테 붙들려서 결국 개고기를, 죽어서 개고기 보신탕이 되는 그런 또 개도 있을 겁니다. 이거는 개로 태어나게 만든 그 업은 주된 업은 불선업이지만, 애완견 같은 경우는 큰불선업을 지어서 개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 개는 전생에 선업을 많이 지은 거죠.
그래서 원래 개로 태어나는 것은 불선업이니까 불선업은 주로 고통받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인데, 전생에 지은 이 개가 지은 선업이 고통받는 삶을 방해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비록 개의 몸을 받았지만, 고통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개의 몸으로서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좋은 음식, 또 주인의 아주 세심함 돌봄을 받아서 그렇게 비록 개의 몸이지만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개의 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전생의 악업이 더 그걸 증폭시키는 거죠. 그렇게 해서 불선업이 또 불선업을 도와줍니다. 그러면 개의 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은 사람들한테 맞아 죽어서 결국은 먹이가 되는 이런 과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지은 업 중에 대표적인 업이 생산업이 되기는 하지만, 나머지 업들이 항상 돕는 업이나 방해업으로 작용을 한다는 것을 명심을 해야 우리가 항상 주의력을 놓치지 않고 항상 불선업이 많이 일어나지 않고 선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항상 주의력을 기울일 수가 있겠죠. 이거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업이 이생에 결과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방해업이나 돕는업으로 작용을 하거나 또는 언젠가는 적당한 인연을 만났을 때는 그 업이 다시 결과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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