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싯다르타의 호흡법, 조화식(鳥和息)을 복원하다!

Buddhastudy 2022. 1. 27. 18:55

 

 

 

바람이 붑니다. 무더위를 식히며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의해 공기가 움직임으로써 발생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기의 쏠림 현상은 불규칙적이고 산발적으로 변화해 나갑니다.

 

이런 바람은 꽤 오랫동안 카오스 상태로 있다가

어떤 특수한 물질이 등장하면서 질서를 갖추게 됩니다.

 

바람이 그 물질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일정한 패턴을 띠게 되는데

이렇게 공기를 대사활동에 끌어다 쓰면서 생물의 진화에 탄력이 붙게 됩니다.

생명을 지탱하는 들쭉날쭉한 바람, 이것이 호흡입니다.

 

호흡은 태생부터 들숨과 날숨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대칭은 생명의 설계에도 깊숙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DNA를 대칭으로 꼬아 정보를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온몸을 균형 있게 만들어 냅니다.

 

몸뿐만 아니라 의식까지도 나와 너로 나누고

이런 대칭을 동력으로 삼아 아주 미세한 생각까지 쭉쭉 일으킵니다.

이렇게 대칭은 호흡을 비롯해서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퍼져있어

우리 모두를 대칭의 사슬로 꽁꽁 묶어 놓게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대칭의 섭리에 따라 사고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대칭은 세상을 만들고 생명을 탄생시킨 축복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런 대칭에 회의를 품거나

내친김에 대칭을 끊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수행자라고 부릅니다.

 

이제 대칭을 깨기 위한 수많은 수행법이 등장했고

저마다 공효의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고

그래서 수행자들은 대칭의 뿌리인 호흡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호흡이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오랜 경험으로 알아냅니다.

이때부터 호흡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됩니다.

 

힌두교의 차크라호흡과 선도의 단전호흡을 비롯해서

수많은 호흡법이 등장하지만 모두 일정한 수준에서 그치고 맙니다.

 

물론 호흡을 에너지 통로나 운기·주천에 활용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도 하지만

깨달음을 놓고 봤을 때는 그저 약간의 도움을 주는 선에서 멈춥니다.

 

깊고 고른 호흡에서 심적 안정을 취함으로써

잡념을 털어내고 선정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호흡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지 수행자 중엔 호흡을 화두로 삼아

끈덕지게 파고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에서 얻을 것은 이미 다 얻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행의 대간은 호흡보다는

의식의 구조적 변화에 치중을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호흡에 대한 기대는 이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것이 맞을까요?

우리는 이 시점에 싯다르타의 호흡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호흡을 하였을까요?

싯다르타의 깨달음에 호흡이 보탬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호흡에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지금부터 냉철하게 우리의 호흡을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지금껏 인간의 호흡을 기준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발전을 하려면 월등한 위치에 있는 상급자와 비교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인간보다 우수한 동물의 호흡과 견주어 장단점을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강아지를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가 산책을 할 때, 5남짓한 반려견이 멍멍 짖으면 깜짝 놀라 주춤하게 됩니다.

작은 체구에서 성인보다 큰 소리가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보다 더 놀라운 건

새입니다.

 

주먹만한 새가 산천을 울리는 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울림통을 비교하면 사람이 새보다 백배는 클텐데

오히려 새 소리가 높고 멀리 퍼져나갑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청명한 소리는

그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새는 어떤 원리로 아름다운 소리를 그렇게 크게 울려내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단전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의 단전에 비한다면

자연 그대로의 고성능의 단전입니다.

 

그렇다면 새는 어떤 특수한 호흡 훈련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양질의 단전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옛 선인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새를 비롯한 동물들이 내는 소리입니다.

동물들은 예외 없이 들숨에서 소리를 냅니다.

 

소리란 공기를 내뱉어야 하기에 날숨에서 나와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단전에서 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소리를 내야 합니다.

, 단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들숨에서 소리를 내야하고

이것이 모든 동물들이 평생 내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만 유독 동물들과 달리

날숨에서 소리를 낼까요?

사실 인간도 태어나면서는 들숨에서 소리를 냅니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동물들이 내는 들숨의 소리이고

이때는 아랫배의 단전과 연결되고 백회도 숨을 쉬면서 결이 다른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들숨소리는 단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를 구사하는데 불편함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인 단어 외에는 발음을 명확하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아빠, 엄마라는 단어를 배우면서 날숨소리를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3~4살쯤 되어 날숨소리인 인간의 언어가 몸에 배면서

들숨소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단전과의 교류가 차단되면서 단전은 점점 폐가로 변하고

백회도 막히게 됩니다.

 

사실 인간의 문명은 언어 단 하나로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어를 늘리는 만큼 사고의 힘이 커졌고

근대에 이르러 수학과 과학에서 새로운 언어가 쏟아지면서는

첨단 문명까지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자연의 호흡을 내주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단전호흡을 비롯해서 수많은 호흡법을 개발한 것은 맞지만

문제는 초점을 자연에 맞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 안에서 최적의 호흡을 찾으면서 그 성과가 정체되었고

결국 호흡을 깨달음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디에나 예외가 있는 법이죠.

우리 겨레의 전통 호흡법은 놀랍게도 새를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단군시대 때에 한 선인은 새의 호흡을 주목합니다.

 

단전이 인간처럼 아랫배의 특정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목까지 차올라 있는 점을 눈여겨봅니다.

새는 몸 전체가 하나의 단전인 셈이지요.

 

그리고 새는 소리를 낼 때 폭탄이 터지듯 공기를 머금었다가 일시에 터뜨립니다.

 

이런 원리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기량보다 훨씬 큰 소리를 냅니다.

이것을 일러 음파성이라 합니다.

 

새는 음파성으로 소리를 내는데, 재미난 것은

그렇게 소리를 낼수록 단전이 점점 발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선인들은

본격적으로 새의 호흡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앉아서 흉내만 냈는데 그렇게 해서는 백전백패입니다.

그래서 새의 날갯짓을 본 따 팔을 앞과 좌우로 휘저으며 행공을 합니다.

수백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새의 호흡을 모방했고

단전도 그럴싸하게 만들게 됩니다.

 

이때의 단전은 허리 양편에 위치한 대맥을 따라 좌우로 갈라지는데

그 모습이 태극을 닮았다 하여 태극선법이라고 합니다.

 

옛 선인들은 새의 호흡을 터득했다고 생각했고

이 호흡법이 단군시대 선도 수행의 근간이 됩니다.

 

이후에 그 맥이 끊어졌다가 18세기 말에 만주에서 배달총사라는 익명의 선인이

태극선법의 복원에 성공합니다.

그는 36명에게 이 법을 전수했고, 그 중 한 명이 단예 선사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태극선법을 익힌 단예 선사는

이것 역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축기는 그런대로 우수한데, 운기와 득음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단전을 만든 이유는

운기하여 호흡의 대칭을 승화하고, 이로써 깨달음에 힘을 보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태극선법의 운기는 축기에 비해 그 효용이 많이 떨어집니다.

 

또 한 가지 취약점은 득음입니다.

새처럼 단전이 조성되면, 소리 역시 새 소리처럼 높고 맑은 톤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소리를 선음이라 하고

소리의 경지에 올랐다 하여 득음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태극선법의 선음은 득음의 초입 정도에서 멈추고 맙니다.

이 정도의 발전도 여타 호흡법에 비하면 무척 뛰어나지만

역시 새소리에는 한참 못 미칩니다.

 

이에 단예 선사는 싯다르타의 호흡과 태극선법의 단전을 화두로 삼아 호흡 연구에 들어갔고

십여 년의 시행착오 끝에 온전히 새의 호흡

일명 조화식을 복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나오게 된 호흡법이 아리수가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리수가 호흡을 익히면 새와 같은 단전이 조성되고

또한 새소리 같은 성량과 음질이 나와줄까요?

 

그리고 이런 호흡은 깨달음의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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