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은 ‘나 위주로 보는 견해’입니다.
좀 더 자세히 풀면 ‘자신의 정보 위주로 고착된 의식이나 물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성된 것일까요?
흔히 ‘나’라고 하면 의식을 지닌 생물에서 찾는데
엄밀히 따지면 무생물의 ‘나’가 훨씬 강력합니다.
무생물은 아상이 거의 100% 상태로 굳어 있으니까요.
돌멩이를 하나 예로 들어 보면,
이 녀석은 자신의 정보로만 꽁꽁 뭉쳐져 있고,
다른 정보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무생물의 세계는
아상의 농도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생물 중엔 그나마 물의 아상이 좀 나은 편입니다.
미약하나마 정보 교류의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바닷물 속에 있는 물질들 사이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게 되고
마침내 RNA와 DNA를 합성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태의 혼합물질이 만들어집니다.
무생물의 아상에 일부나마 문이 열려 외계와 정보 교류가 가능하게 된 상태,
이것이 최초의 생물입니다.
물론 생명체로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엉성하나마 그 구조를 갖췄고
여기서 좀 더 진화해 원핵생물이 되면서 단세포생물의 세계가 활짝 펼쳐집니다.
이때가 대략 지구가 만들어지고 5억 년쯤 지났을 무렵입니다.
무생물에 비하면 단세포생물의 아상은 가히 도덕군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점에서 보면 단세포생물의 아상은 철옹성처럼 단단하기만 합니다.
단세포생물은 종족보존을 위해 아상을 키우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아상을 줄였습니다.
이런 고무줄 같은 아상의 변화는 DNA를 통해 후대로 이어져 갔고
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단세포생물의 아상이 한 단계 물렁해집니다.
대략 20억 년 정도를 DNA 학습을 한 뒤에서야 아상의 일부를 꺾고 단합을 모색하게 되니까요.
단세포생물들이 양보를 통해 협동을 하게 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는데
바로 다세포생물의 출현입니다.
이것이 21억 년 전쯤에 나타나기 시작한 다세포 진핵생물입니다.
다세포생물은 계속해서 체내에 단세포생물의 수를 늘려나갔고 그만큼 덩치도 커지게 됩니다.
수십 조 개에 이르는 단세포생물들의 의견들을 종합하는 과정에 의식이 자라고
결국 ‘나’라는 매우 이상한 관념이 형성됩니다.
가령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회의를 한다고 칩시다.
이때 무수히 쏟아지는 의견과 그것을 종합하는 과정을 가지고 ‘나’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십 조 개의 단세포생물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는 뉴런의 신호를 가리켜‘
나’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이상한 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아상이 줄어든 단세포생물 덕에 다세포생물이 출현했고
이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진화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단세포생물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 가운데 아상이 돌처럼 딱딱한 놈들도 나오게 됩니다.
단세포생물은 전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만
세포사멸 같은 숙명을 거부하는 놈들이 나오면서 암이라는 반란 조직이 생겨납니다.
단세포생물 가운데 일부가 암을 확대하며 아상을 공고히 하려 하지만 이것이 진화의 대세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세포생물은 그 구성원인 단세포생물들의 희생에 힘입어 진화에 박차를 가했고
그 과정의 끝에 이르러 영장류가 출현하게 됩니다.
초기 영장류들의 군집은 일정 수를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아상에는 허용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저마다 지니고 있는 아상을 줄여 협동하는 쪽으로 머리를 쓰는 영장류들이 출현합니다.
이로써 군집의 수가 부쩍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협동의 특성이 발달한 영장류가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점점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전체를 위해 자신의 아상을 낮추는 법을 학습했고
그러다가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서는 그 협동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상이 상대적으로 컸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자리하게 됩니다.
천적이 사라지자 호모사피엔스의 아상은 한동안 정체됩니다.
그러다가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그 신에 복종함으로써 호모사피엔스의 아상은 또 한 차례 크게 꺾입니다.
이렇게 되자 씨족을 넘어 부족국가를 이루고
이때부터 인류문명은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이제 무생물이 지녔던 순도 100%에 이르는 아상은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 50%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아상은 협동을 해치지 않으면서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게 합니다.
이쯤 되자 더 이상 아상을 줄일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대략 2천5백 년 전쯤 ‘아상의 완전한 타파’를 부르짖는 한 사내가 출현합니다.
이 사내는 ‘아상이란 연기에 의해 꾸며진 환영’이며 따라서 ‘나’에 집착하지 말 것을 주장합니다.
‘나’의 실체가 없음을 알면
시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증득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사내의 주장은
열역학 제2 법칙을 거슬러 아상을 줄여오던 진화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자는 선언입니다.
이런 엄청난 주장을 펼쳤던 사내의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불교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제 아상의 문제는 개인의 몫으로 넘어왔습니다.
아상을 없애 생명의 진화 과정을 마무리할지
아니면 현재의 아상을 유지하며 단세포생물을 이끄는 제국의 통치자로서 생을 보낼지는
스스로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사실 아상은 비단 개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상의 평균치가 곧 문명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까닭에 인류 전체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상을 기준으로 볼 때
당신은 어느 정도 진화한 생물일까요?
당신의 아상이 오랜 진화의 결과를 설명해 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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