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구절 일체유심조를 인지과정론으로 살펴보는 것은 유익하고 흥미롭다.
인지과정
상황ㅡ인지ㅡ해석과 예상ㅡ결정과 행동ㅡ기억
전체 인지과정의 모든 단계에 자신의 관심(욕망)이 반영된다.
그래서 나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내가 인식한 세계일 뿐, 실제 세계의 존재 여부와 그 진면목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인식된 세계는 철저히 나의 관심 즉 욕망을 반영한 모습이다.
일체유심조를 이렇게 이해할 때 자기 객관화와 성찰이 깊어진다.//
오늘은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 세상을 마음이 만들었다” 이렇게 아주 거칠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 수 없잖아요.
하지만 이것을 현대심리학이나 뇌과학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해석한 세계이다.
뭐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걸 조금 쉬운 말로 하면
“세상은 마음먹기 달렸다. 또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요거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죠.
그런데 경험이 있는데
“내가 무슨 나쁜 일을 당해서 마음이 안좋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친구들로부터 이런 위로를 받습니다.
“야, 마음을 크게 먹어, 마음 먹기 달렸어, 생각하기 나름이야”
위로해 준다고. 그런 말을 하죠.
그러면 나는 취지는 알겠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문제는 그런 마음이 안 먹어진다는 게 문제죠.
그런 마음이 먹어졌으면 이미 다 해탈한 거죠.
그래서 왜 그런가?
또 그렇게 잘 먹어지지 않는 마음을 왜 이렇게 강조했는가?
뭐 이런 얘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여러 가지고 표현할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일종의 프로세스,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어떤 상황이 생기면 우리는 그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못 알아차리면
두메산골에서는 전쟁 난 지도 몰랐다고 하니까
상황이 있으면 그 상황을 인지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거죠.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런 것들을 다 모아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정리해서 기억으로 축적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5가지 과정을 색-수-상-행-식이라고 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과정이라고 것은 상황-인지-해석-결정-기억
이 5가지가 끝없이 반복되는 축적의 결과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인지적으로 이야기하면
“너는 너의 인지반응의 축적의 결과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너희 눈 앞에 펼쳐진 세계는 너의 인식된 세계다”
실제로 세계가 이 세상에 실제로 어떻게 생겨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죠.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의 정보들을 받아들여서 뇌에서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대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지과정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5가지 인지과정에서 무엇이 작용하는가를 보면
그것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관심이 작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상황/이 발생해도 관심이 없으면 인지가 안 될 수도 있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남녀평등에 관해 이야기할 때,
어떤 경우 남자들은 잘 모를 수 있죠, 감각이 무딜 수도 있죠.
왜냐하면 남자들은 남녀불평등에 관한 그런 반복적이고 격렬한 것을 느낄 일이 별로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관심이 없는 거죠.
관심이 없으면 인식도 안 되는 거죠.
/인지/ 때에도, 우리가 뭘 알아차릴 때도 관심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해석/할 때는 이게 더 중요하죠.
해석은 해석하는 기준이 있을 거 아닙니까.
나의 관심사를 반영하게 되는 겁니다.
/예측/할 때도 마찬가지죠.
어떤 측면에서 이것이 좋을 것이가 나쁠 것인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해석과 예측의 과정에서 기억이 소환되는데
이 기억도 나의 관심사를 반영해서 구성되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4번째 단계, /결정하고 행동/하는 이 단계도 마찬가지로
나의 관심사를 가장 잘 반영해서 결정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억/은 말할 것도 없죠.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추려서 정리되어서 구조화 시켜놓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관심이라고 하는 것이 작용한다고 했죠.
그래서 관심이 다르면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 혼란스러울 때, 서민들은
“아이고 힘들다” 이렇게 인식하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면 상인들은
“혼란기야 말로 기회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관심에 따라서 혼란이라고 하는 팩트는 똑같은데
해석과 거기에 대한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너는 너의 인식과정의 결과다,
그게 너의 눈앞의 세계는 너의 인식의 결과다. 이렇게 얘기하고
저는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말하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관심이라고 했지만 이것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이 세상을 우리는 욕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그 욕망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보이죠.
그래서 욕망은 어떻게 보면 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인 욕망을 벗어나지 않는 거죠.
인간은 생명체이고 생명체의 보편적인 욕망은 딱 2개밖에 없죠.
하나는 먹고 사는 것, 생존하는 거죠.
또 하나는 번식하는 거죠.
이 2개를 가지고 2개를 최종목적으로 해서
여러 가지 징검다리 여러 가지 매개가 되는 욕망들이
다양한 특성들을 가지고 구성되는, 크러스트처럼 구성되는 것이
한 개인의 욕망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게 관심이죠.
그래서 이런 관심,
즉 욕망에서 비롯된 인식-해석-결정-행동-기억, 이런 과정들이
색수상행식의 과정이고
이런 과정들이 무한하게 반복, 지금도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반복된
이것이 바로 나다.
그런 너의 눈에 펼쳐진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고
네가 인식한, 그리고 그것도 너희 욕망으로 인식한 세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일체유심조를 잘 해석하면
“마음을 굳게 먹는다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는 이런 해석을 할게 아니라
그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가 뭘 알아야 하냐하면
내가 보고 있는 세상도 실제는 아니고
내가 인식하고 해석하고 결정한 이것도 진리가 아니라
나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하는 것만 알아도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절대시하고 옳다고 하는 데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거죠.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실제 세계의 모습대로 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각이 깊어질수록
나는 나의 욕망을 마주 대하게 되고
그 욕망을 쳐다볼 수 있으면 있을수록
조금씩 그 욕망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욕망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워지고
내가 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일체유심조
“세상은 당신의 관심으로 욕망으로 바라본 세상에 불과하다” 라고 하는 것이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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