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의 <영원한 진리를 찾아서>에서는
<그리스도 요가> 전체의 주제를
“조건화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르침의 내용이 일관되게
조건화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조건화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지난 동영상에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투철한 이해만이
자유로움을 향한 출구가 된다는 점을 봤습니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은
어떤 추론이나 사변이 아니라 진리이므로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이해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는 마음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드러나려면
마음이 그 작용을 멈춰야만 하는데
그 마음의 질서가 바로 조건화입니다.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신조
지식으로 조건화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우리 상념은
우리 자신의 특정한 조건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조건들이 없다면 상념도 있을 수 없죠.
나를 규정하는 특성, 성향, 배경 같은 것들이 바로
상념을 규정하는데
사상이나 종교도 그런 것들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축적된 지식과 배움은 기억이 되고
그것이 우리를 조건화시킵니다.
이 조건을 통해 우리의 상념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조건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행하든 그것에 따르게 될 뿐입니다.
자신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 조건화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분명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나의 조건화를 왜곡 없이 초연하게 볼 수 있을 때
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실재가 현현하는데
왜냐하면 실재는 어떤 종류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조건화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생명의 창조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표현을 방해하고 있는 자아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념, 믿음, 욕망, 두려움, 반감 등에 자각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현재에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우리의 조건들을 표현하게 될 겁니다.
생각이 특정한 패턴에 빠지게 되고 그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생각이 우리의 배경에 따라 조형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거기서 침묵이 일어납니다.
이 침묵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투사 행위를 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아가 자신이 조건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이해 속에서 자유가 생기고
마음이 더 이상 짐을 지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이 자유를 체험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상적인 의식 상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들, 개인적인 염려들과 더불어
일상 의식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조건화에 따라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의식의 보다 깊은 층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결국 조건화에 대해 의식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의식 수준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지위, 권력, 부, 육체적 쾌락 등을 얻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씁니다.
실제로 이런 욕망의 추구는 조건화를 강화시키는데
그런 추구 자체가 조건화된 것인데다가
깊은 층에서 조건화된 의식이
자기 자신을 표면으로 투사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욕망을 추구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행위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고
자신의 조건화에 따라 행위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패턴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그것은 반응에 불과합니다.
반사 작용이죠.
그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습관화된 이 패턴을
어떻게 습득하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혼란과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는 이 정신 과정을 철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의식층에서 살고 반응합니다.
그다음 층은 기억인데 기억 없이는 어떤 반응도 행위도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기억의 결과인 것이죠.
그런데 기억은 단지 그 순간 안내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나 자신은 거의 모르기 때문에
기억이라는 조건에 따라 행동하고 반응합니다.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봅시다.
오늘과 만나려면 우리는 더 이상 어제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거짓된 것을 인식할 때
그 거짓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거짓을 알아볼 때 즉각적으로 탈조건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것들은 우리가 그것들에 힘을 부여하지 않는 한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 느낌을 통제하고
그곳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조건화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만 합니다.
만일 내가 단순히 나의 생각, 느낌을 통제하려고만 하면
이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조건화를 이해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의 감추어진 자아는
유아기 때부터 커가면서
칭찬하고, 받아들이고, 거부하고, 비난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을 축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조건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일들은 이 마음의 조건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면 그것이 탈출구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그 문제와 직면해야만 하는데 여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상이 바로
무너뜨려야 할 조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조건화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그리고 그것과 직면하지 못하면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올바른 사고는
거짓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알아차릴 때만 가능합니다.
거짓에 대한 진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비로소 올바른 사고가 가능합니다.
올바른 사고가 자유라면 조건화된 사고는 억압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요?
쉽게 말해 주워들은 것들입니다.
타인의 관념들로 꽉 차 있는 것이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사실상 자기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관념들이 유전되고 전승되어 전달된 조건이고
그것을 더 알면 알수록 조건의 층만 두꺼워집니다.
정리해 보죠.
상념은 우리가 축적해 놓은 기억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조건화입니다.
이것을 이해했을 때
자아와 그 작용에 대한 자각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사고를 하는 자아와 사고는
분리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 상념과 분리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상념들을 이해했을 때
나와 나 자신과 내 상태를 이해하게 됩니다.
신- 진리- 사랑은 우리에게서 떨어진 무엇이 아닙니다.
그러나 혼란되고, 조건화되고, 제한된 마음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선 마음은 자신의 제한, 조건화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만 마음은
한정, 관념, 말을 초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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