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마하라지 어록 (3)

Buddhastudy 2025. 4. 30. 19:23

 

 

  •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02:47].
  •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신이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배제해야 합니다 [02:47].
  • '내가 있다'라는 느낌은 자신의 것이며, 자신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06:44].
  • 자신에게서 영구적인 것을 찾고, 내면으로 깊이 뛰어들어 자신 안에서 실재하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07:53].

 

 

신이 저에게 무엇을 주거나

저에게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신이 없을 때에도

저의 것은 저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

하나의 점과 같은

내가 있다는 느낌

곧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는 제 집이고 누구도 저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세계라는 감옥 안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그대가 창조한 고통스러운 모순들의 세계는

지속적이지도 않고, 영구적이지도 않으며

하나의 착각 위에 기초해 있다고 그대에게 말해 줍니다.

 

그는 그대에게

그 세계에 들어갈 때와 같은 방법으로

거기서 나오라고 간청합니다.

 

그대는 본래의 그대를 망각하여 거기에 들어갔고

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을 알면

거기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하나의 복합체이고

그 자체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각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란 마음의 그림자, 기억들의 합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수한 존재가 마음이라는 거울 안에서 앎으로써 반사됩니다.

 

이때 알려지는 것이

기억과 습관에 기초하여 한 사람이라는 형상을 띱니다.

그것은 하나의 그림자

즉 마음이라는 화막 위의 비친

아는 자의 한 투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시와 꿈을 같이 생각해 봅시다.

그 차이는 단지 연속성뿐입니다.

 

만약 꿈들이 일관되게 지속되어

밤이면 밤마다 같은 환경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그대는 어느 것이 생시고, 어느 것이 꿈인지

갈피를 못 잡을 것입니다.

 

꿈조차도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즐기거나 감내할 때 존재성을 갖습니다.

그대가 생각하고 느끼는 무엇이든 존재성을 갖습니다.

 

그대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탐구를 해서

그대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려면

내가 있다는 기본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대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취하는 보통의 태도는

나는 이것이다입니다.

내가 있다이것이나 저것으로부터 일관되게 꾸준히 분리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면서

그저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느끼려고 애쓰십시오.

 

기억이 연속성의 환상을 제공하고

반복이 인과성의 관념을 창조합니다.

일들이 함께 되풀이해서 일어나면

우리는 그 일들 사이에

어떤 인과적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마음의 습을 만들어내지만

습이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볼 때 그대는 신을 봅니다.

세계와 별개의 신을 보는 일은 없습니다.

세계를 넘어 신을 본다는 것은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세계, 즉 신을 보는 그 빛은

내가 있다하는 아주 작은 섬광인데

외관상으로는 아주 작지만

모든 아는 행위나 사랑하는 행위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빛입니다.

 

창문을 열면 방에 빛이 가득 찹니다.

색상과 형태들이 나타납니다.

창문은 빛을 제공해 주었지만, 빛의 근원은 아닙니다.

해가 근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질은 어두운 방과 같고,

의식, 창문은 감각과 지각으로 물질을 가득 채우며

지고자는 해, 즉 물질과 빛, 양자의 근원입니다.

 

창문은 닫을 수도 있고 열 수도 있지만

해는 항상 빛납니다.

해가 그 방에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내지만

그 어떤 것도 해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내가 있다라는

저 작고 작은 것에 대해서는 2차적입니다.

내가 있다없이는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모든 앎은 내가 있다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있다에 대한 그릇된 관념들이 그대를 속박으로 이끌며

올바른 앎은 자유와 행복으로 이끕니다.

 

사람은 결코 주체가 아닙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한 사람을 볼 수는 있지만

그대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어느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점에서

주시자로 나타나는 지고자입니다.

 

여기서 주시자는

지고자의 순수한 자각과 사람의 다양한 의식 사이의 가교입니다.

그대 앞에 나타나는 어떤 것도 그대 자신일 수 없고

내가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요구에서 벗어납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은 그대 자신의 것입니다.

그대는 그것과 떨어질 수 없지만

나는 젊다, 나는 부자다라는 식으로 말할 때와 같이

그것을 어떤 것에 나누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동일시들은

뻔히 거짓된 것이고 속박의 원인입니다.

 

욕망에서 벗어난 어떤 상태를 욕망한다고 해서

자유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도 그대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자유로우니까요.

 

욕망 없는 명료함으로 그대 자신을 보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시간이 어떻게 그대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란 순간들의 연속인데

매 순간은 무에서 나타나고 무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찰나적인 것 외에 그대가 무엇을 건립할 수 있습니까?

그대 자신에게서 영구적인 것을 찾으십시오.

내면으로 깊이 뛰어들어

그대 안에서 실재하는 것을 발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