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마하라지 어록 (1)

Buddhastudy 2025. 4. 24. 20:17

 

주요 질문: 이 영상은 우리가 '자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00:06]. 이는 우리의 기본적인 자아감, 즉 '나'라는 느낌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의 기원: 영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내가 있다'는 느낌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질문합니다 [01:48]. 이는 단순한 감각적 경험을 넘어선,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인식에 대한 탐구입니다.

부정(否定)을 통한 이해: 흥미롭게도, 영상은 우리가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02:23]. 이는 우리가 가진 많은 생각, 감정, 감각들이 진정한 '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껍데기를 벗겨내듯, 우리가 아닌 것들을 제거해 나갈 때, 더 깊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통찰을 던집니다.

실재(實在)와 상상(想像)의 구분: 영상은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가 단순한 상상이나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03:17].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은 주관적인 환상이 아니라, 어떤 근본적인 토대 위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삶의 비유: 삶을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언덕 사이를 흐르는 강에 비유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04:07]. 이는 삶의 본질적인 양면성을 드러내며, 우리가 끊임없이 이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욕망의 역할: 영상은 욕망이 우리의 탄생, 이름, 그리고 형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05:26]. 우리가 특정 존재로 인식되고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욕망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입니다.

생멸(生滅)의 법칙: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태어나지 않은 것만이 죽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적인 무아(無我) 사상을 연상시킵니다 [06:09].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적인 '나'가 아니라, 불변하는 어떤 근본적인 실재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의식(意識)의 흐름: 영상은 순수한 존재 안에서 의식이 일어나고, 그 의식 안에서 세계가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06:52].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의식이라는 바탕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 모두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도와 같다는 비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 궁극적으로 이 영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이끌며,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의 기원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너머의 불변하는 진실을 암시하며, 우리의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도전합니다.

 

 

의식이 없을 때도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앎이 없이 그대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까?

 

그대가 자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실제로 경험한다고 이야기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대는 자신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누가 부르면 그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깨어나면

내가 있다는 느낌이 먼저 있지 않았습니까?

잠을 자고 있을 때나 기절해 있을 때도

어떤 종자 의식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내가 몸이 세상 안에 있다 하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한 세계 안에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단 하나의 생각이지요.

어떤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이 아니고서

내가 있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신이 하나의 몸일 뿐인지 다른 어떤 것인지

아니면 어쩌면 전혀 아무것도 아닌지를 아는 것이

그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대의 모든 문제는 몸의 문제라는 것을 모릅니까?

음식, 의복, 주거, 가족, 친구, 이름, 명예, 안전, 생존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단지 하나의 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가 깨닫는 순간

의미를 상실합니다.

 

존재의 느낌, 내가 있다는 느낌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자신에게 묻거나

아니면 그저 그것을 고요히 지켜보십시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있다안에 머무르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체험할 수 있는 어떤 상태로 들어갑니다.

애쓰고 또 애쓰는 것이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전부입니다.

 

그대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면 충분합니다.

그대가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앎이라는 것이

이미 알려진 것을 가지고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자기 앎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저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대는 지각이나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대 없이는 어떤 지각이나 상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아닌 것을 알면 그대 자신을 알게 됩니다.

그대의 진아로 돌아가는 길은

거부와 배제를 통해서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재는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산물이 아닙니다.

내가 있다하는 느낌조차도 지속적이지는 않습니다.

유용한 지침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

그것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는 보여주지만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내가 있다는 것 외에는

그대의 자아에 대해 어떤 것도 참되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지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대 자신일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하고 나면

내가 있다의 필요성은 끝납니다.

 

고통과 쾌락의 두 언덕 사이에서

삶의 강은 흘러갑니다.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삶과 더불어 흐르기를 거부하고

언덕에 들러붙을 때입니다.

 

삶과 더불어 흐른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오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은 가게 내버려 두는 거죠.

욕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실제 현실을 그것이 일어나는 바로 그때 관찰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대는 일어나는 그 일이 아니고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을 고려하는 것은

그것이 현재 속으로 들어올 때뿐입니다.

잊혀진 것은 우리가 그것을 상기하지 않는 한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기한다는 것은 지금 속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물과 생각들은 항상 변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것은 실재한다는 느낌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조차도.

 

욕망이 탄생을 일으키고

욕망이 이름과 형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뭔가 바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원하면

그것이 구체적인 형상이 있거나

구체적으로 관념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의 개인적 세계가 창조됩니다.

실재하는 세계는 마음의 범위를 넘어서 있지만

우리는 욕망이라는 그물을 통해서 그것을 봅니다.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려면 그 그물을 넘어가야 합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만이 죽지 않습니다.

결코 잠을 자지 않고, 결코 깨어나지도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의 희미한 반사가

우리의 라는 느낌인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십시오.

 

무엇을 찾으려고 할 때 그대는 어떻게 합니까?

온 마음을 거기에 집중합니다.

관심이 있어야 하고 꾸준히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순수한 존재 안에서 의식이 일어나며

의식 안에서 세계가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모든 시작의 앞에

모든 끝이 뒤에 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 안에서

빛나는 내가 있다안에서 존재성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