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무엇을 할 것인가 - 연기적 각성 (1/2)

Buddhastudy 2025. 3. 12. 19:5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누가복음 3:10

 

 

IAMTHAT 채널은 5가지 동영상 재생목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 수준과 깨달음

세계와 존재

존재와 인식

실천과 수행

선과 깨달음이 그것입니다.

 

동영상을 분류하는 범주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일종의 이 창문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제목을 만들었겠죠.

당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목을 만든 이유는

이번 동영상에서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폭을 넓혀서 하기 위해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동영상의 주제가 바로

왜 유튜브를 통해 뭔가 전달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깨달음이 뭔가?

왜 깨달으려고 하는가?

왜 깨닫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고

도대체 그 공부라는 것이 뭐냐?

이런 정도로 묻고 답하는 일은

이른바 도판에서는 너무 흔한 일이라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물론 주목을 받자고

서구 철학의 세계관, 존재론, 인식론을 들고 왔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병풍을 펴서 그림을 봐야

잔칫상인지 제삿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병풍이 펴졌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겠죠.

깨달음 공부를 왜 합니까?”

깨달으려고요.”

이 답은 사실상 할 수 없는 대답입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가봐야 거기가 어딘지를 압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자신의 대답보다는 하나의 지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부처가 되라는 겁니다.

부처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되고 하느님처럼 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이 되어 가는 길에 들어선 겁니다.

신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하든, 진리라고 하든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해도 됩니다.

 

다만 그것이 같은 자리를

여러 가지 말로 만든 거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

, 부처, 하느님, 진여, 진리

제가 아는 같은 뜻의 말만 100개가 넘습니다.

똥 막대기도 포함됩니다.

 

이제 진짜로 진도를 나가보죠.

신이 뭔가요?

신이 뭔지를 알아야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가보기 전까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려고 해도 대충 그게 뭔지는 알아야 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를 그리려는 이유입니다.

신이 뭔지 알아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뭔지 알자는 이 말은

신에 대해 설명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만나고 볼 수 있는 신이라는데

당장 내 눈앞에서 이것이 뭔지 최소한으로 느껴볼 수는 있어야 합니다.

 

마하라지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항상 신을 보고 있으면서도

신이 뭔지 모르니까

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이분의 말을 믿어보죠.

우리가 신을 보고 있다는 말이네요.

불교의 가르침이나 기독교의 가르침과도 통하네요.

목전이고 천국이 매우 가깝다고 합니다.

 

[관조의 눈으로 보라]에서 우리는 캔 윌버를 인용했습니다.

켄 윌버는 말합니다.

지금 나의 자각 상태가 바로 신이다.”

말미에는 황벽 스님이 힘을 보탰습니다.

생각이 일어남을 느낄 때 그 느낌이 부처다.”

 

님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거창한 말 대신 여기서 뽑아 먹어야 합니다.

자각과 느낌에 집중해 보죠.

 

분명히 자각이 신이라고 했습니다.

자각이 뭐죠?”

같은 말입니다.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느끼고 아는 그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 읽는 것 자체를 자각해 보면

비록 잠시이지만 우리는 분명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있음을 아는 그것입니다.

그게 신입니다.

 

아니 무슨 말이냐고요?

그게 신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찾느냐고요?

그래요. 하나도 안 힘듭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그냥 천국을 누립니다.

 

예수님 말씀은 믿을 수 있죠.

제가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게 신입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그게 불성입니다.

 

천국은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없었던 것을 불러오거나 만들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있으니까 알아본 겁니다.

 

이 동영상에서는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 경전이 좋은 말을 빌려와서

제가 드리는 말을 튼튼하게 지지하는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분명히 눈앞에 있고, 내 안에 있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것도 가장 신뢰할 만한 세존과 예수의 말입니다.

무슨 지지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것을 있는 그대로 선언한 것이 천국이고 불성입니다.

제발 깨끗해진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는 것이 예수의 방식이고,

믿지 말고 직접 탐구해서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 세존의 방식입니다.

 

분명 있는 걸 안 보려고 하니까

멈춰 세워서 멱살을 잡아

천국 안으로 처박는 것이 선의 방식입니다.

방법이 달라 보일 뿐

없는 걸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게 그렇게 힘들고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검증하고, 반성하고, 적용하고, 수행해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도 못하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반대 방향으로만 질주했습니다.

깨달음 공부란 그 질주를 멈추고

회개하고 돌아서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밖으로만 나간 그 먼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무시이래로 나갔다면, 다시 무시가 걸리지 않나요?

 

그냥 나갔던 대로 걸어서 돌아오면 당연히 그렇게 걸리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고향으로 돌아갔던 많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 빠르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개발해 놓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도를 내는 트랙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과 지도를 말하고, 단계와 수준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을 흘끗 보는 일견을 말하고, 수분각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부터가 성품에 대한 견해는 후퇴가 발생할 수 없는

변용의 지점이라서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이쪽 방, 저쪽 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깨닫는 변환, Ttranslation이 아니라

변용, Transformation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의 자각 상태가 신이다라는

그 말을 당장 체험해 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5, 10, 1시간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게 계속 늘어나서 결국 생각이 일어남을 느낄 때

그 느낌이 부처임을 제대로 알고

늘 아는 상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알다가 모르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변용이 일어나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깨달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본 적이 없으면

잠시 알다가 꺼지고, 잠시 느끼다가 사라집니다.

일단 믿고 따라가서 봐야 합니다.

계속 안 믿기다가

본 다음에야 믿기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론으로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나의 자각 상태가 신이고

생각이 일어남을 느끼는 것이 부처다.

 

, 이제는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나요?

당연히 자각이 신이라는데, 신을 체험해야죠.

느낌이 부처라는데, 생각이 일어나는 느낌을 느껴봐야죠.

그게 자각이고, 명상이고, 각성이고, 위파사나이고, 사마디이고, 요가입니다.

 

별 이상한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의 자각 상태를 알아차리고

생각이 일어날 때 그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그것 하나만 말합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에 집중하라.

모든 생각을 거부하고 내가 있다는 생각 하나만 허용하라.

내가 있다는 느낌 그것이

환의 마지막 발자국이자 실제의 첫 발자국이다.”

 

선불교식으로 말하자면

하루 종일 사람들을 앞에 놓고

목전, 목전, 목전이라고 하는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제가 보기에 가장 탁월하다고 보이는 방법이

바로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선과 깨달음을 재생목록의 하나로 만들어서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각을 못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별의별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일단 자기가 그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는

그 의식의 멱살을 잡는 아주 좋은 방법이 선이기 때문이죠.

 

-내 안에 있는 나를 찾는 각성

-지금 나의 자각을 하는 그것

-생각이 일어날 때의 느낌

그걸 잘 하려면, 결국 실행 지침은 뭔가요?

 

위빠사나를 잘하고, 좌선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시작은 그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바로 계속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겁니다.

 

자각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에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What is to be done?

무엇을 할 것인가?’

-체르니셰프스키(1863), 톨스토이(1886), 레닌(1902)의 책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