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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무엇을 할 것인가 - 연기적 각성 (2/2)

Buddhastudy 2025. 3. 13. 19:56

 

 

생각이 없는 이 광대한 공간이

진아입니다.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지난 동영상에서

우리는 자각이 곧 신이고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아는 것이 부처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이해가 안 되고

믿기 힘든 분이 많을 겁니다.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정직한 경험담이니까, 이 말은 믿어도 됩니다.

 

이제 신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믿고

열심히 각성에 매진하는 분들을 위해

패스트트랙에 대해 알려드릴 차례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도를 내는 방법이죠.

 

하지만 묘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제대로 알면 진짜로 깨닫는다는 정도로, 감을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히 각성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각성보다는 생각에 익숙한 생명체입니다.

사실 생각은 인간의 특질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생각이 없다면 인간은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생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신이 되려고 할 때입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지만

신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이 아닌

생각 없음, 각성이 특질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각성을 제대로 하려면

단순히 각성을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단순한 질문이죠.

내 본질이 각성이라는데, 왜 각성이 이렇게 어려운가?”

각성을 이토록 어렵게 만드는 그 핵심은 무엇인가?”

 

이것을 자기에게 잘 맞게 제대로 정리하면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각성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뭘까요?

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잡념도 있고, 탐진치, 욕망도 있고

거부감을 잘 몰라서 이래도 될까? 하는 그런 마음에

이것저것 여기저기서 들은 많은 개념 관념들이

이곳저곳을 들추고 쑤시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에고라고 부르는 생각이죠.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건조한 표현이니까 그것을 활용하겠습니다.

 

결국 각성은 실재하는 신을 체험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우리의 생각은 아무리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사실이냐고요?

그렇습니다. 세존이 입증했죠.

 

사마디 수행을 했더니

깊은 사마디에 들어가면 다 끊기다가도

사마디를 마치면 또 생기는 것이

생각입니다.

세존이 그래서

이것도 아니구나하고 그 수행을 벗어납니다.

 

결국 각성의 본체는 전도몽상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신을 체험하면 당연히 그것을 벗어납니다.

그런데 각성이

계속 생각의 방해를 받는 이 메커니즘을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수행이 너무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이걸 극복할 방법을 찾다 보니까

바로 세존이 깨달은 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보는 거였습니다.

 

그게 뭔가요?

견해를 뒤집는 겁니다.

세존의 핵심 깨달음, 지혜의 말씀이 뭔가요?

 

IAMTHAT채널의 두 번째 트랙

바로 세계와 존재에서 줄기차게 설명한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이 뭔가요?”라고 여기서 질문하면 안 되고,

그런 분은 세계와 존재편의 동영상 3개 정도를 잘 복습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존의 연기법은 한마디로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사실이 아니라

정확히 거꾸로 아는 것이라는 핵심 원리를 밝혀준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왜 각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각성 그 자체가 왜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까지 더불어 되는데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이 곧 각성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성의 원리가 생각 없음이라고 알지만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제외하면

생각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 특별한 효용이 없는

아주 이상한 작용일 뿐입니다.

물론 그래서 생각을 절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데

별 필요도 없고, 소용도 없는

그런 이상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생각은 곧 에고의 작용입니다.

에고는 유기체로 진화한 생명체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는 메커니즘으로 생겨난 겁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뭔가를 지키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겠죠.

뭘 지키려는 것일까요?

바로 나라는 존재입니다.

나라는 몸과 마음, 이것을 지키려는 것이 생각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세존이 말하는 연기법은 결론이 뭘까요?

세존이 말합니다.

이 사람아, 내가 6년 수행 끝에 깨닫고 보니

그런 거 없어.”

결론이 제법무아입니다.

나라고 하는 그런 거 없다는 거예요.

 

이것만 알면 끝나는데 왜 못 깨달을까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아등바등 살면서 자나 깨나 지켜오다가

겨우 지금 나의 자각 상태가 신이라는 걸 전해 들었는데

갑자기 내가 없다고 하면 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또 거기에 맞게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 오면

항상 가슴이 절이고, 목이 메어서 진도를 못 나가기가 일쑤입니다.

세상에 이런 친절한 분을 보기 힘들어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자유로움인데 저는 차라리 포기하렵니다.

그래서 이번 동영상으로 가늠합니다.

 

 

세존의 친절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면

아주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알 수 있으니

그대가 맞는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찾아서 꾸준히 적용해 봐라.

 

그런데 일단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지금까지 보던 식으로 헤아리면

시작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을 한번 들어보라.

그것의 제목은 [연기법]이다.

 

, 그 처음은 나중에 한자를 쓰는 후배들이

아마도 제행무상이라고 부를 텐데

세상 만물이 계속 변하고, 흘러가고, 유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정된 실체라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고정된 실체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나라고 주장하는 내가 있을 수 있겠니?

세상만사가 그러니

당연히 세상만사에 속하는 그대에게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두 번째는 역시 한자를 쓰는 후배 중 하나가 멋진 말을 만들어내는데

[상즉상입]이라고 부를 거란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조건이 되어서 나타나는데

그러다 보니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일러주었던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없다하는 말을

잘 풀어서 일러줄 거야.

 

길가의 잡초 풀 하나에 140억 년의 우주가 응축되어 있지.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가고

한 생각만으로도 영원한 시간을 건너뛰는 일이

오직 한 마음뿐인 세상에서 별 이상한 일도 아닌데

나를 나라고 벌벌 떨며 우기는 사람에게는

공상과학이나 괴팍한 환유철학처럼 보이겠지.

 

이렇게 다 엮여서 드러나고 사라지는데

그대가 나라고 하는 그것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건일까?

 

 

 

생각이 없는 광대한 공간이 진아, 곧 신입니다.

우리가 눈앞의 공간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지만

신을 볼 수 없는 이유는

그 공간을 못 보고 형상만 보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안 보이는 이유도 형상만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렇게 고착화된 생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 달라붙은 의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아니면

인지하지 못하는 관념 기계에 가깝습니다.

생각은 형상을 알아보는데 탁월하지만

그 형상은 세존의 말씀처럼

우리가 보고 아는 그 모습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생겨나고 사라지고, 모두가 얽히고설켜서

우리가 부르는 그 이름으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겠는데,

우리는 건조한 생각에서

더 발달된 감정을 비롯한 많고도 다양한 색채를 가지고 있죠.

좋고 싫고, 예쁘고 추하고, 깨끗하고 더럽고

앞으로 출연할 AI 세상에서 새로 개발될 것들까지 포함시키면

목록은 끝이 없어질 겁니다.

 

완전한 각성은

이런 생각들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행무상][상즉상입]으로

내가 믿는 견해, 생각의 틀을 허물어뜨리는 작업은

각성과 같은 수행입니다.

 

하나는 안에서 찾고

하나는 장애물을 부수는 것이죠.

계속 찾고 부수면 나중에는 훤한 벌판이 드러날 겁니다.

부수는 작업은

찾는 것을 훨씬 쉽게 해주는 패스트 트랙이 맞습니다.

 

수행에는 먼저 알아본 차례는 있어도

정해진 순서나 차원은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보이는 생각을 알아채는 일회성 자각에서부터

보이지도 않는 포메이션, 생각의 틀을 허무는 연기법 각성은

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수행법을 [연기적 각성]이라고 부릅니다.

정혜쌍수, 지관겸수를 제가 해석해 붙인 말입니다.

[연기적 각성]IAMTHAT 채널이 제시하는 수행의 방향입니다.

 

 

수행이란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얘기하며

다른 이들과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것

그것에만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요가 바시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