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수행, 여럿이 홀로 가는 길

Buddhastudy 2024. 12. 26. 18:52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대사

 

 

 

깨달음 전통을 아무리 뒤져도

선각자 한 분이

홀로 모든 것을 다 하고 끝나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당연히 전승이 되려면

모임을 이루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전통을 이루는 조건이라고 봐야 하겠죠.

 

비교적 그런 특징이 옅은 도교조차도

여기저기서 노자를 스승으로 모신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승, 제자, 교단

이른바 불교식 상가의 전통은

모든 깨달음 전통에서 공통적입니다.

 

우리가 앞서 본 수행의 계율이나 지침들은

제가 일반적으로 설명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상가, 수행 집단 차원의 규율과 지도 기준에서 시작한 것이죠.

 

스승의 가르침과 지침을

상가 차원에서 정리해

표준적인 규범과 지침을 만들어 공유한 것이

우리가 아는 수행의 가이드에 해당하는 각종 지침들입니다.

 

우리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고

샤르나트의 보리수 아래서 고행을 하는 사두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르침의 실행을 위해

벼슬길로 출세하는 제자들이 아니며

칼을 차고 산을 넘는

꾸란의 전사도 아닙니다.

우리는 SNS로 대화를 나누고

동영상으로 강의를 듣는

아주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는 구도자들입니다.

 

인류 전 역사에서

이렇게 기이한 수행자가 등장한 적은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우리가 아는 지침들은

모두 수천 년이 된 것들의 전승입니다.

우리가 아는 백 년 전의 세상은

그 전 수천 년과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강이나 물에서 물을 긷고

나무로 불을 때 밥을 하던 상황은 수천 년인 반면

휴대용 전화기와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경전은

사실상 처음 출연한 상황이고

그래서 우리는 수천 년간 이어온 수행의 전통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전통들은

의미로는 맞지만

수단으로는 매우 다른 양상을 가진 상태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이런 경향이

뉴에이지 영성 단체의 호기로운 폭발로 나타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에이지만 해도 세기말 현상이었고,

이제는 유튜브 채널에 수천 수만이 구독을 한 상황에서

운영자는 졸지에 교주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환경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사람들을 둘러싼 정보통신 환경이라

사회적 규범의 변화에도 그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 실천의 장을

내 생활에 적립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교단에 소속될 수도 있고

사미승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외형과 상관없이

내가 선택해 가고자 하는 길을 올곧게 갈 수 있는 수행의 도장을

내 생활의 근린 시설로 만들고자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수행과 실천의 지침을 만들고

필요한 교류를 통해 나의 구도행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아마도 지금 이 시대에 수행의 길을 가려는 이에게

가장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저는 원칙을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주도 학습입니다.

스스로 리더가 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다른 것은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이라...

들어본 이야기죠.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다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던

학습 방식의 이름입니다.

 

사전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학습자가 학습 참여 여부 결정

학습 목표 설정

학습 프로그램의 선정

학습 결과 평가 등

학습의 전체 과정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해 행하는

학습 형태를 말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이 통용되었다면

기업이나 기관을 직장으로 경험한 분들은

셀프 리더십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입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저는 전통의 가르침과 연결시킬 만한

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석가세존이 말한 자등명을 들 수도 있고

내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아는 셀프 리더십

자기주도 학습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주도와 셀프 리딩은

당연히 내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하라는 것이 아니고

또한 당연히 무턱대고 좋다는 것을 따라다니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가지고 적용할 경우

필요한 지식 정보들이 무엇인지

앞선 단원에서 살펴보았고

앞으로도 찾아서 공유할 겁니다.

 

다만 명확한 중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참여 결정, 목표 설정, 수행 방법 선정, 검토와 개선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댈 수는 없습니다.

 

셀프 리더십에 대한 원칙이 분명하다면

사람을 만나고 공부 모임에 속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가 아니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수행 방식이자

서로 도울 수 있는 형태 공명의 장을 만드는

가능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됩니다.

 

우리 공부는 알고 보면 모두 내 책임입니다.

남 탓을 할 수가 없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내가 찾은 사람을 도반으로 맞아들일 것인지

내가 만난 사람을 스승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모두 자기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분명한 이유를

수행관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면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물론 내가 잘 몰라서

잘못된 가르침을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고민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수행관과 리더십이 있다면

그런 경우에도 큰 오류에 대해서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켄 윌버는

교단, 명상단체 같은 곳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동영상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니

여기서는 제목만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각각의 내용은 아이 투 아이에 상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1) 먼저 정당성과 진정성을 봐야 됩니다.

물질적 수준이나 인습적 수준이 아닌

이성적 수준에서 성장과 발달,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적 원칙과 지침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2) 정당성과 진정성에 대해 검토할 세 가지 질문입니다.

첫째, 카리스마에 의존하는가? 원리와 실천에 의존하는가?

둘째, 단일 수준의 깨달음인가?

성장과 발달의 단계를 인정하는 깨달음인가?

셋째, 모두 다인가? 아니면 우리만인가?

 

이 정도의 잣대만으로도

우리는 선별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문제가 되지 않는 집단

켄 윌버는 이런 검토를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문제가 되지 않을 모임을 설명합니다.

첫째, 전 이성적이지 않고 초이성적일 것.

둘째, 깨달음 전통 속에 닻을 내린 정당성을 가지고 있을 것.

셋째, 멘토는 발달 국면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권위를 가지고 있을 것.

이 말은 누군가 깨달으면

그는 스승과 같은 위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넷째, 완벽한 스승에 이끌리지 않을 것.

다섯째, 세상을 구원하려고 나서지 않을 것

크게 어렵지 않은 기준이고

전 이성과 초이성은 좀 어려운 용어입니다.

 

켄 윌버가 제시한

전 이성적인 영성과 초이성적인 영성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둘 다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성을 기준으로 아직 발달되지 않은 상태와

초월한 상태의 극단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 수행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초이성의 가르침이므로

이것을 구분하는 눈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전 이성적 상태를 판별하는 것도

몇 가지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첫째, 전 이성적인 발달 장애입니다.

예를 들어

폭력, , 재물, 권위나 권력에 대한 아전인수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둘째, 전 이성적, 신비, 신화, 신화적 수준의 사건들이

가치 있는 진실로 회자되고 있는 상태로

공중부양, 질병 치유, 천리안, 타심통 같은

초능력의 권위에 기대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런 신비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내용들이 모임의 목표나 수행의 기조가 되어 있다면

분명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죠.

 

셋째는 이성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이성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 반대하며

이성적인 것은

명령, 편의에 따라 언제나 어길 수 있는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자아에 대한 태도입니다.

자아에 대한 지나친 강조나 지나친 억압입니다.

예를 들어

나만이 옳은 길이나 무조건 복종, 수행이라는 식의 지침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섯째, 초이성적인 것에 대한 태도입니다.

불가지론, 깨달음 부재, 불가능론 같은 장막을 들여오거나

진리에 대한 선언적 명제를

형상적인 실체가 있는

천국 지옥으로 치환하는 태도 또한 전이성적입니다.

 

이 정도의 간단한 식별 기준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수행을 통해 고도를 실천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것들을 몰라서

젊은 시절 자주 속고,

많은 경우에는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추락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공부, 몸에 대한 식별과 관저의 눈을 갖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셀프 리더십은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깨달음 지도는 계획된 주제를 모두 소화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로

함께 공유할 것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장 의식 수준과 깨달음

2장 세계와 존재

3장 존재와 인식

4장 실천과 수행편의 계획했던 기본 내용을

모두 마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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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주변에 무리지어 있는

악마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다.

-밀라레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