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이 중읍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성입니까?”
중읍이 답했다.
“방에 산산이라는 원숭이가 한 마리가 있는데
밖에서 ‘산산아’ 하고 원숭이를 부르면 원숭이는 곧 대꾸한다.”
양산이 다시 묻기를
“원숭이가 깨어 있을 땐 대꾸하겠지만, 잠들어 있을 때는 어찌 합니까?”
그러자 중읍이 비밀이라는 말이라도 있는 듯이
양산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속삭였다.
“산산아,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났지 않은가?”
참 걱정도 많습니다.
아니 저 걱정에 이유가 있네요.
뭔가 알긴 알겠는데
그것이 까맣게 잊혀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어서 걱정스러운 거죠.
바로 산산이라는 원숭이가 잠들 때입니다.
이 스님도 보통은 아니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렇습니다.
마하라지는 아예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의식은 세 가지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생시와 꿈
그리고 꿈도 없는 깊은 잠이 그 셋이다.
도대체 선 공부는
이 세 가지 의식 중 뭘 상대하는 걸까요?
“아뇨, 의식이 이렇게 세 종류였어?”
하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정말 주관적 관념론으로 시선을 완전히 옮겨와 보죠.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라는 감각적 인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주관적 관념론입니다.
근데 이런 이론을 잘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잠들어서 잊히는 것은 알겠는데,
깨고 나서도 세상은 여전한 겁니다.
내가 잠을 자든, 내시경 검사 받느라 수면 마취를 하든
아니면 뜻하지 않게 기절을 하든
일단 깨어나면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이 정도면 세상은 단단한 실체로 늘 존재하고
나는 그저 오락가락하는 감각과 지각에 묶여 있는
유기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스승이 은근히 일러줘도
이런 생각에 이르면 걱정이 앞서죠.
저는 이런 질문 많이 들어봤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치매에 안 걸리나요?”
“깨달은 사람이 자다가 죽으면 지옥 가나요?”
심지어 이런 것도 있죠.
“당장 몸이 못 죽어서 못 깨닫는 건가요?”
거꾸로입니다.
잠을 자고, 꿈을 꾸는 상태가 지금 이 상태
우리가 생시라고 믿는 이 상태입니다.
자기는 깨어 있다고 여기면서 꿈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꿈속의 꿈 이야기입니다.
“꿈속에서 산산이가 잠들면 어떻게 하냐”고 고민합니다.
거꾸로입니다.
꿈속에서 잠들까 봐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 꿈을 깨어야 합니다.
이 꿈을 깨자는 것이 선입니다.
꿈속에서 꿈을 깨라고 하는
이미 꿈을 깬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선문답입니다.
심월고원, 마음달 홀로 둥근데
광탄만상, 신령스러운 빛은 삼라만상을 삼키네
광경구망, 빛과 만상이 모두 사라졌으니
복시하물,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꿈을 깨려면 꿈을 지켜봐야 합니다.
경허 스님은 마음 달이 세상을 삼키는 꿈을 봅니다.
꿈을 보고 있으니
꿈이 사라지고 다시 있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시라고 부르는 꿈에서 깨려면
꿈을 바라봐야 합니다.
꿈속의 꿈은 오히려 바깥입니다.
뭘 알겠다고 꿈속에서 꿈을 꾸면
깨침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는 말은 달리 말하면
지금 내가 생시라는 이 꿈을 꾸고 있음을 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꿈을 지켜보는 그것이 느껴집니다.
뚜렷하게 보면 뚜렷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정이고
선정이 쉼 없이 활발발한 것이 바로 선의 상태입니다.
양산이 잠사와 달구경을 하다가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저런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만 쓰지 못할 뿐이네.”
잠사가 되받아 말했다.
“당신더러 써달라고 할 리도 없지.”
양산이 말했다.
“그럼, 당신이 써보시지.
어떤 솜씨인지 구경 좀 해야겠네.”
청양아하사용월, 나에게 달 쓰는 솜씨를 보여달라고 하나
심중월량여하착, 마음의 달빛을 어찌 너에게 보여주랴
여아쌍관소담월, 너와 나 사이에 말장난 같은 달이 휘영청하니
세상유여실화월, 저 달을 진실되게 그릴 자가 세상에 있겠는가?
잠사는 양산을 걷어찼다고 합니다.
저 시는 제가 썼습니다.
제가 한 시를 쓸 재주는 없고
한글로 지은 시를 인터넷 번역기에 올려서 옮겨 본 것입니다.
네, 제가 양산에게 주는 달 그림입니다.
꿈속에 있는 것들을
꿈꾸듯 그려서 알려줘 봐야
그것은 원래 모양이 없고, 시간과 장소가 없어서
잠시 순간 한 생각 바뀌면 앞뒤가 안 맞고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다른 모습과 사건으로 바뀝니다.
아마 꿈속에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해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감이 잡히나요?
선문답이 모두 꿈속 이야기를 하면서
꿈을 깨라고 일러주는 말입니다.
“개에게는 불성이 있다, 또 없다.”
“이 막대기 안에서 문수와 보현보살이 모두 나왔다.”
“산산아 이렇게 만났잖은가?”
그리고 난데없이 뒤로 벌렁 눕습니다.
꿈을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꿈이 꿈인 것을 알면 깹니다.
너무 말도 안 되게 웃겨도 깨고
너무 말도 안 되게 괴로워도 깹니다.
꿈이나 선택을 못한다면
인연에 따라 방법도 만나게 됩니다.
선의 원리는 직지다.
선의 원리는 관조다.
선의 원리는 초월이다.
선의 원리는 중도다.
다 좋습니다.
뭐 저도 하나 추가하죠.
선의 원리는 꿈 깨기입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손은 펴고 다리는 펴지 않는다.”
“달이 뜨면 먹어 치우고
해가 지면 밟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허 참...
“푸시업 3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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