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꿈결에 알라

Buddhastudy 2024. 12. 25. 20:18

 

 

제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뭔고 하니, 꿈속에서 굉장히 슬퍼합니다.

근데 그게 고민이 아니라

꿈 깨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고민입니다.

 

아닙니다, 진짜 고민은

꿈 속과 꿈 밖이

어떻게 이렇게 천지 차이인지

그걸 도통 모르는 것이 제 고민입니다.

도대체 뭐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네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꿈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일 겁니다.

 

웬만해서는 꿈속의 감정까지 기억되지는 않죠.

너무 다른 감정 탓에 오히려

꿈이었구나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꿈 이야기가 나오니, 영화 대사가 떠오르네요.

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문답처럼 보이지만

영화 내용을 간략하게 축약해 비유한 이야기죠.

 

하지만 영화의 첫머리에 혜능의 깃발 고사가 나오는 바람에

이 문답도 선문답처럼 들립니다.

그렇게 봐도 상관없을 정도로 절절히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다 보니

꿈속의 일을 남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글쎄요.

영장류 원숭이도 그럴 수 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어쨌거나 꿈에 일어난 일을 서로 알려주다 보니

꿈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꿈풀이 해몽이라는 문화도 생겨났죠.

 

그런데 선 공부에서 꿈은 좀 다른 역할을 합니다.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주인이 길손에게 꿈 이야기하고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길손도 주인에게 꿈이야기하네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나그네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

이 또한 꿈 속의 사람들이네

 

서산대사의 선시를 보면

꿈속의 일을 말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뭔가 말하는 것이

꿈인지 아닌지 구분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만약 꿈이라면 이게 과연 깰 수 있는 꿈인지

그것조차 알 방법이 없네요.

 

향곡이 깨닫고 기뻐

한걸음에 스승에게 달려가자

이미 이를 알아챈 운봉이 내심 속으로는 기뻐하면서

자신이 베고 있던 목침을 앞으로 쑥 내놓았다.

 

깨친 것이 있으면 한마디 일러 보거라.”

향곡은 무서운 사자가 되어 목침을 걷어차 버렸다.

차갑게 이를 지켜본 운봉이 다시 말하길

그런 것은 개오한 사람의 짓이 아니니라.

다시 일러 보거라.”

천마디 만마디가 모두 다 꿈속에서의 꿈 이야기니

모든 불조가 나를 속였습니다.”

 

꿈속에서 하는 꿈 이야기라고 제자가 말하자

운봉 스님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향곡이라는 법호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들으면 속은 건가요?

꿈꾼 건 누구죠?

꿈속의 일은 꿈꾼 이의 마음에 있던 것 아닌가요?

 

선은 꿈을 깬 자의 독백입니다.

그래서 꿈속의 일을 뭐라 하던

그저 우습기만 할 뿐입니다.

 

깊은 슬픔이든 돌아버릴 정도의 괴로움이든

아니면 웃다가 죽을 정도로 즐거운 일도 다 그렇습니다.

 

보우 스님의 임종게입니다.

인간의 목숨이란 물거품이니

80여 년이 봄 꿈속에 지나갔네.

가죽 주머니를 버리고 돌아가나니

한 덩어리 붉은 해는 서산에 지고 있네.”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후련한 마음도 전해집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깨면 아는 것이 꿈이거늘

우리는 깨기 전에는 절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뻔히 보이는 것을 알려줘도

눈 감고 꿈꾸는 이대로가 좋다고 합니다.

 

하루살이보다 오래 사니까 인생이 길다고 합니다.

그렇죠, 개나 고양이보다 더 오래 삽니다.

심지어 소나 말보다 더 오래 삽니다.

정말 인생이 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괴로워서 그렇습니다.

즐거우면 짧거든요.

별이 내려다봅니다.

 

그래서 일체가 괴로움이라고 일러주면

현실부정의 염세주의라고 핀잔을 듣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욕을 먹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라서, 꿈은 꿈 같아서

피하고 미루고 잊어버립니다.

달이 뜨고 집니다.

 

영화부귀개춘몽榮華富貴皆春夢

취산존망진수구 聚散存亡盡水漚

부귀영화가 모두 춘몽이니

모이고 흩어지고 살고 죽는 것이 물거품이구나.

 

제각서신안양외算來何事可追求

산내래하사가추구算來何事可追求

정신을 쉬고 마음을 내려놓을 뿐

무슨 일을 따져가며 추구하겠는가?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자각몽이라는 것이 있죠.

꿈을 꾸면서 꿈인 줄 아는 꿈속입니다.

 

저는 1년에 한두 번 꾸는데

그럴 때마다 높은 곳에서 무조건 뛰어내립니다.

꿈인 줄 알면서도 아찔하죠.

그러나 뛰어내리면 가슴 벅차게 자유롭습니다.

 

광덕이 처음 동산 화상을 친견했을 때

동산이 물었다.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이라고 하자

생각이 있을 때는 생각이라고 하자.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너는 무엇이냐?”

 

마음조차 없는 자리에

어찌 이름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