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남편에게 의지를 많이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2023.09.06.)

Buddhastudy 2023. 11. 28. 19:00

 

 

저는 얼마 전 결혼을 했습니다.

둘 다 초혼이고요.

남편이 영국 사람인데 제가 의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런던에 온 지는 3년이 되었는데 이직을 엄청 많이 하는 가운데

남편은 일주일 전에 회사 일로 사우디에 출장을 갔습니다.

남편과 2개월을 떨어져 있어 보니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러다가 별생각이 다 드는 제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구나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미래가 두려워졌습니다.

저는 외동딸로 자랐고, 아버님은 1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한국에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면 저는 남편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혹시 남편도 사고가 나서 나보다 빨리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염려까지 하는 제 상태가

더 심해지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이렇게 의지심이 많은 저는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자 스스로가 남편에게 의지하든, 의지를 안 하든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의지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면 되고,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다가 남편이 돌아가시면

다른 남자한테 의지해서 살면 됩니다.

 

 

죽은 뒤에는 그런 약속을 안 지켜도 됩니다.

 

발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지하게 되듯이

출가하면 부처님에게 의지하게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 남편이 죽은 이후까지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의지처를 둔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이 사람이 죽으면 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당신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 하고 슬피 우는 사람일수록

남자가 빨리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의지심이 많은 사람이라

의지처가 꼭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면

남편 없는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금방 다른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길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다가

곧 다른 남자를 의지처로 삼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질문자가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지팡이를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수는 없잖아요.

무슨 지팡이라도 짚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지팡이를 짚는 것에 대해 자꾸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다리가 아픈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질문자가 죽을 때까지 계속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사람들이 속된 말로 다리병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장애인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지팡이를 버려야 되지 않겠어요?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타인에게 득()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타인으로부터 이익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경제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처와 중생이라고 말할 때,

부처는 주는 사람을 말하고

중생은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생은 부처한테 뭐든지 달라고 하지만

부처는 중생에게 뭐든지 주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은 주인이라고 볼 수 있고

받는 사람은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느님에게 뭐든지 받기만을 바란다면

여러분들은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할 수 있고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지심을 버려야 합니다.

출가한다고 하면서 의지심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출가해 봐야 그것은 가출에 불과합니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출가란

의지심을 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출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사람이 부처님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또 다른 남편으로 삼는 것과 같이

단지 의지처를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의지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무언가를 달라는 소리를 안 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베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풀 수 있으면 베풀고

베풀 수 없을 때는 최소한 구걸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감정이든, 또는 이해든 사랑이든

상대방에게 구걸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 된 삶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구걸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걸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고

구걸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구걸을 안 하면 스스로 주인이 되지만

구걸을 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보통 구걸을 한다고 할 때

이 사람한테 구걸하다가 이 사람이 안 주면 저 사람한테 구걸하러 가고

저 사람이 안 주면 또 다른 사람한테 구걸하러 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게 구걸하듯이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자의 경우

구걸을 하면서 동시에 주인으로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모순입니다.

구걸하려면 거지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게 싫으면 주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하느님한테 돈 벌게 해 주세요하고 바랍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은 내가 선택하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부처님한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하고 바랍니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부처님한테

합격시켜 주세요하고 바랍니다.

그럴 때는 보통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합격시켜 달라고 부탁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부탁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합격시켜 달라고 해서

부처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면

부처님이 공부 잘하는 한 명을 빼고

공부 못하는 한 명을 합격시킨 것이 되잖아요.

한마디로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는 겁니다.

내가 믿는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어야

내 소원이 성취되는 거예요.

 

이렇게 모순된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의 그런 면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

 

저는 기복 신앙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잘못 알아들은 겁니다.

기복 신앙을 갖고 싶은 사람은 가지면 됩니다.

다만 정토회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습니다.

 

...

 

해도 됩니다.

정토회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지만

정토회에 속한 개개인은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토회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대해 가르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추구해 나가기 때문에

정토회 이름으로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정토회 회원 열 명을 모아놓고

우리 아이가 입학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하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는 것은 안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혼자 법당에서

우리 아이 합격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타인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북한 출신이든, 공산주의자든, 교회를 다니든, 절에 다니든, 차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