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미래에 제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3.09.23.)

Buddhastudy 2023. 12. 7. 19:45

 

 

제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생각들을 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까입니다.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우리 가족을 돌보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죠.

앞날에 대한 걱정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

악몽을 꿀 정도입니다.

내일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가족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내일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행복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말이지요.

스님께서 오신다고 포스터를 봤을 때

행복이라는 단어를 보고 스님과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고 싶었습니다.

제 삶을 재정비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에 중심을 잡고 살고 싶습니다//

 

 

자녀가 몇 살입니까?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질문자는 스물한 살, 스물여섯 살 때 어땠습니까?

아버지가 도와줘서 살았습니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했습니까?

 

...

 

질문자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도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겪고 경험을 하면서

점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들을 걱정하는 이유는

아직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 때문에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서로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자연의 세계를 한번 보십시오.

어미 새는 새끼가 어릴 때는 먹이를 입 안에 넣어줍니다.

새끼가 점점 자라면 어미 새는 벌레를 물고 와서

입에 넣어주지 않고 그냥 자기 입에 물고 있습니다.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도 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몸을 움직여서 어미 입에 있는 벌레를 빼앗아 먹습니다.

이때 새끼들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일부는 둥지에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어미 새는 왜 이렇게 할까요?

그것은 새끼에게 자립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새끼가 다 자라면 날아가게 합니다.

어미 새는 더 이상 새끼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새끼도 더 이상 어미 새를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성체가 되면 개별체로서 각각의 생명을 유지해 나갑니다.

여기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떠한 갈등도 없습니다.

부모가 과다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자녀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조금 더 자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자녀들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모만큼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부모 이상으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걱정이라는 정신적인 작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본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화면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화면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 두려움도 느끼고 슬픔도 느낍니다.

 

화면을 한번 꺼봅시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두려움을 느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영화에 집중해 있는 동안

우리의 뇌는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 같은 갖가지 감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미래에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스스로 머릿속에서 영상을 트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 질문자의 뇌는 그 일이 지금 일어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이 일어납니다.

 

보통 미래의 일을 앞서 생각하면

주로 근심과 걱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생각하면

주로 괴로움과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다 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 일도 없지 않습니까?

 

...

 

질문자는 지금 자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어릴 때 보살피던 습관이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이것은 사고의 습관일 뿐입니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볼게요.

겨울입니다.

아이가 방 안에 있습니다.

아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장작 10개를 땠습니다.

봄이 되면 그것을 5개로 줄여야 합니다.

여름이 되면 장작을 때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겨울에 불을 오래 때던 습관이 남아서

봄에도 계속 그렇게 불을 때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아이를 위해서 불을 때지만 아이는 더워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나는 너를 위해서 사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에 따라 다르게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사춘기 때는 그냥 지켜보면서

그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할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 시기에 지나친 지원을 해버리면 그들은 자립심을 키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평생 어렵게 삽니다.

성년이 되면 정을 끊어줘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어야 사랑입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도움은 되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립심을 해칩니다.

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아이들을 사랑하십시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에 불과합니다

 

...

 

부모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세 살 때까지는 안전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큰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서도 안 됩니다.

아이의 심리가 억압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야 그 아이의 삶에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둘째, 자립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춘기 때 가능합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지켜봐 주고

그것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여 야단을 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로서는 자녀의 행복과 자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는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은 게 중요하겠죠.

그러나 부모는 자녀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