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야정견

(알라야 정견)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당신을 위한 솔루션 #6 나는 누구인가?

Buddhastudy 2024. 5. 8. 20:14

 

 

아파트의 오래 살다보면 층간소음이 가끔 문제가 됩니다.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사실은 자기가 크게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국의 수많은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하지만

누구는 그냥 넘어가는데

다른 사람은 참지 못해, 결국 싸움이 나고야 맙니다

 

 

그럼, 명상가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응 할까요?

명상가들은 [종소리 명상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누구나 절에 가서 간간히 울려오는 종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평화스럽고 고유하다고 느낍니다.

분명 종소리도 소음인데

그 소음이 있어도

오히려 고요해 평화롭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치는

그 종소리와 그 배경이 되는 장대한 침묵 속 평화감이

같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즉 그 종소리에 의지하여

오히려 더 큰 고요함과 침묵을 느끼게 되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그러면 층간 소음이 있어도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됩니다.

 

즉 소음이 발생할 때

그 배후에 침묵이 주는 느낌에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은 늘 상대성에 의지하여

눈앞의 일을 분별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시끄러움과 고요함, 좋음과 싫음, 밝음과 어두움 등이

항상 같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 상대성 속에서

항상 어느 한 편을 무의식적으로 붙들거나 집착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과 균형을 쉽게 잃어버리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이런 마음의 상대적 이원성을 벗어나서

항시 절대적일 일원성을 지향하는

균형을 가진 존재 방식을 말합니다.

 

즉 상대적으로 두 가지가 나눠질 경우

무의식 속에서 습관적으로 더 강한 쪽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습니다.

즉 반대편 것도 동시에 집중해 봄으로써

한쪽에만 빠지거나 휩쓸리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깨나지 못하면

제가 살아온 습관이 자기를 살아갑니다.

즉 허깨비 같은 삶을 살게 되죠.

 

어떤 이는 귀신 굴에 빠져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의 업습이 그대로 진행되므로

혼미한 정신과 에너지 속에서

그저 눈앞에 닥치는 삶에 끌려가면서도

뭐가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깨어난다는 것은

항상 상대 세계 안에 한쪽으로 다가오는 일상속에서

그것을 있게 하는 다른 나머지에 대해서도

주의를 잃지 않고 쏠리지 않는

마음의 전체적 단일성에 대한 감각을 갖춘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래 마음자리를 잃지 않음입니다.

즉 마음의 내용물 속에 빠져들지 않는 삶의 방식이라

비로소 깨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끄러움이 들려오면

그것을 잊게 하는 그 배후의 고유함도 같이 듣습니다.

 

짜증 불만이 일어나면

그를 잊게 하는 그 배후의 전체적 고요함도 같이 느낍니다.

 

이것이 일어나면 그와 짝이 되는

저것도 같이 자각합니다.

 

그러면 항상 일부분에 쏠리지 않는

평정심을 갖춘 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전체적 단일성 속에서

본래마음자리를 잊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명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