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33회 어떤 이유로 인도어린이를 돕게 되었습니까

Buddhastudy 2013. 3. 29. 04:28

출처 YouTube

  

우리나라 안에서 보면 우리나라 안에서 부자하고 가난한 사람, 이것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밖에 가서 이렇게 보면 그 나라에도 부자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나라하고 우리나라하고 같이 비교해보면 어떠냐? 그 나라 부자가 우리나라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 갖고 나눠가지고 상중하로 나누고, 그 나라 사람도 상중하로 나누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우린 다 상중의 상중하에 속합니다. 저 인도의 천민들은 어떠냐? 하중에 상중하에 속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하가 거기 상보다도 더 잘산다. 이런 얘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만 살 때는 이 가운데 하,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거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다른 나라까지를 봤기 때문에 그 나라하고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그 나라의 잘 사는 사람보다 더 잘살아요. 그래서 그 나라의 가난한 사람, 하중에 하를 돕는 게 좋게 않겠느냐? 그래서 제가 이 지구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 지구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 그건 가난한 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부자나라가 있고 중간나라가 있고 가난한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이오. 제가 주로 해외에서 돕는 사람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이오. 그러니까 가난하다라는 말은 똑같은데 그 내용은 천지 차이요. 즉 하는 하인데 우리는 상중의 하고, 그들은 하중의 하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현격하다.

 

그래서 주로 제3세계의 그 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주로 돕게 된다. 왜 어른들은 안 돕느냐? 어른들을 돕는데 어른까지 다 도울 능력이 안 돼요. 죽어가는 거 뻔히 보고도 외면할 수밖에 없어요. ? 능력이 안 되니까. 애들은 앞으로 제대로 안 가르치고 영양실조 걸리게 내버려 두거나 하면 이거는 102030년 고생길이 열린단 말이오. 그런데 어른이 그런 거는 1년 있다 죽어버리면 끝이란 말이오. 물론 그들도 치료해야 되지마는 애들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이오.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 아무리 가난해도 밥은 먹어요? 안 먹어요? 밥 먹어요. 밥 못 먹는 사람 있다. 그런데 자기만 노력하면 밥은 먹을 수 있어요. 얻어먹어도 먹을 수 있어요. 지금 밥 좀 얻어먹겠다는데 안주는 사람 없어요. 그런데 이 가난한 나라에는 밥을 얻어먹기가 어려워요. 밥 자체가 없어요. 북한에는 지금 밥 자체를 얻어먹을 수가 없어요. 어느 집을 가도 식량이 없기 때문에 풀죽 써먹게 되요.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 문제는 신경을 안 씁니다.

 

그거는 우리나라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로 여러분의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되어있어요. 국가가 책임을 져줘. 그런데 저 가난한 나라는 국가가 아무 책임을 안 지어 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동네 그런 사람 있으면 동네에서 그걸 좀 돌봐. 그런데 거기는 다 못살기 때문에 동네도 그걸 돌볼 수가 없어. 우리나라 어렵다 어렵다 해도 부모가 있어서 일가친척이 있어서 자식 하나는 돌볼 수 있는데, 거기는 부모도 일가친척도 다 제 살기도 어렵기 때문에 애들을 못 돌보는 거요.

 

그래서 나는 그 나라 사람도 아닌데, 우리는 그 나라 국가도 아닌데, 우리는 그 동네 사람도 아닌데, 우리는 그 부모도 아닌데, 그렇게 보면 책임으로 따지면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그 책임의 해당되는 사람들이 국가부터 다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할 생각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 나라 사람도 아닌데, 불교인도 아닌데, 내 동네 사람도 아닌데, 내 친척도 아닌데, 내 자식도 아닌데 그래도 사람으로서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 이유로 그 아이들을 돌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요.

 

불상을 때려 부순, 그 바미안에 무슬림 아이들도 도와야 되고, 남쪽에 쳐들어왔던 북한 아이들도 도와야 되고, 이념이나 종교 민족, 그 전에 원한관계, 이런 거 하고 관계없이. ? 그건 그 아이들 굶주린 아이들 책임이 아니잖아. 그래서 이 아이들을 돕게 됐다. 인도에 제가 여행을 하면서 그 부모가 낳기만 했지 부모도 어쩔 수가 없는 거요. 내버려 두는 거요. 부모가 그렇게 내버려 두고 싶어서 내버려 두는 게 아니오. 능력이 아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라도 어디 누가 데려가 버리면 입 하나 던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 말이오.

 

우리도 옛날에 식구도 많고 양식은 떨어지고 해서 뭐라고 그래요? 애들이 크면? 입벌이 하라 그러잖아. 그죠? 네 입은 네가 책임져라. 열 몇 살 먹으면. 왜 다 큰 게 입벌이도 못하고 집에 있냐? 이러잖아. 그래서 우리들이 돕게 됐다. 어쩌다가 한두 명이 학교 못 가는 게 아니고 온 동네 아이들이 다 학교 못 가고, 어쩌다 한두 명이 글을 모르는 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글을 모르고, 어쩌다가 한두 명이 굶는 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다 굶고 있고, 어쩌다가 한두 명이 아픈데 치료 못 받는 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치료를 못 받고 있는 그런 동네가 있어요.

 

천지에 그런 동네가 어디 있노? 성지순례 갈 때 한번 따라가서 보세요. 그런 동네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 학교 다니는 마을을 한번 방문해보세요. 진짜 청빈하게 삽니다. 옷이 없어. 그냥 땅바닥에 뒹구는 걸레 조각 같은 옷 하나 있지. 옷장이 어디 있노? 옷장이라는 자체가 없어. 입고 있는 옷이 전부야. 입으라고 할 만한 따로 없어. 어떤 데는 집이라고 할 만한 게 따로 없고. 부엌살림이라 그래야 요만한 솥 단지 하나 있어. 숟가락도 없어. ? 손으로 퍼먹잖아.

 

밥 먹을 때보면 반찬이라는 게 따로 없어. 그냥 개에게 뭐 줄 때 반찬 따로 안주잖아. 그냥 요만한 접시에 누릉지 있으면 부어 주듯이 그냥 그렇게 먹고 그렇게 사는 거요. 그런데 무슨 뭐 공부 같은 거 생각하겠어요? 저는 출가한 스님이니까 그거 뭐 잘 사는 걸 내가. 내 돈 많이 벌어 잘 살아. 이런 말 한마디 합디까? 안 하잖아. 그런데 내가 그 사람 사는데 간섭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굶어 죽으니까 굶어 죽지는 말아야 될 거 아니오. 간단한 질병에 죽으니까.

 

우리 한 40 50년 전만하더라도 결핵 걸리면 많이 죽었죠. 그 전에는 천연두 이런 거로 많이 죽잖아. 요즘 그런 거 가지고 죽는 사람 없잖아요. 콜레라 걸려도 죽고, 이질 걸려서도 죽고. 애들 홍역에 많이 죽었죠? 그런데 요즘 그런 것 때문에 죽는 사람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돕자는 거요.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 제가 그 사람들까지 다 돕는 일을 하려면 내가 왜 자선사업가가 되겠지 왜 스님이 됐겠어요. 스님이라는 건 다 버리고 거지같이 사는 게 스님 아니오.

 

그런데 옆에서 사람이 죽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수행도 좋지마는 그걸 외면하고 무슨 수행을 노할 수 있겠어요? 그걸 외면하고. 그래서 불자로서 맨날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에게 소원을 빌면서 자기할 일은 안하고 자꾸 복만 달라 그러면 인연과의 과보에도 맞지 않고, 저 하늘에서 혹시라도 보는 사람이 있다 라면 얼마나 얄밉겠어. 그래 미움을 사면 복 받겠어요? 그 사람이 보기에도 좋아 보여야 될 거 아니오.

 

그래서 지구상에 극빈층, 돈으로 환산한다면 남자 하루 수입이 하루 일당이 1달라, 천원도 안 되는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 그 들을 위해서 우리가 하루에 1달라 이상 천 원 이상 보시해서 돕자. 이런 얘기요. 그래서 이게 시작이 됐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또 부처님을 생각했어요. 부처님이 사문육안이라는 게 있잖아요. 동쪽 문으로 나가서 늙은이를 보고, 남쪽 문으로 나가서 병든 이를 보고, 서쪽 문으로 나가서 죽은 사람을 봤다. 단순히 그런 게 아니죠.

 

늙었는데 보호할 데 없는 늙은이죠. 당시 노예는 늙으면 버리잖아요. 병들었는데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죠. 당시엔 노인은 병들면 버리잖아요. 죽었으면 장례나 치러줘야 되는데 천민들은 죽으면 시탈림에 그냥 갖다 버려버리잖아요. 그런 중생의 고통을 보면서 삶이 진짜 뭔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우린 인도를 여행하면서 정말 사는 게 뭔지.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째 그 사람들이 불쌍한 것도 있지마는, 두 번째는 참으로 인생이 뭔지. 진리가 뭔지. 그저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진리인지.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성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요. 그래서 제가 인도여행 중에 어쩌면 저는 부처님을 재발견했다. 그저 위대한 힘을 가지시고 빌면 나를 도와주는 그런 부처님에서 중생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시고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위대한 성자인 부처님을 보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분 하시는 거를 다할 수는 없지마는 조금이라도 해보자. 부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어떤 일을 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