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35회 어머니가 싫습니다

Buddhastudy 2013. 3. 31. 06:07

출처 YouTube

  

그런데 자기가 이기주의래요. 자기가 이기주의이면 이익을 봐야 됩니까? 안 봐야 됩니까? 봐야지. 그런데 맨 밑에 뭐라고 그랬냐? 괴롭데요. 괴로우면 이익을 본거요? 손해를 본거요? 손해를 본거요. 그러니까 이건 이익을 보려고 이기주의를 했는데 결과가 괴로워지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손실을 봤다. 이익을 보려고 했는데 손실을 봤다. 이거를 어리석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이익을 보려면 진짜 이익을 봐야지. 그런데 속박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어디가지마라. 가라. 이렇게 해서 속박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떤 게 속박일까? 이거 우리 오늘 그냥 조금 대화를 나눠봅시다.

 

속박이다. 이거야. 첫째. 제 하고 싶은 데로 안 되면 속박이죠. 맞습니까? 자유는 뭐요? 제 뜻대로 제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자유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되면 속박이다. 이렇게 말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건 제 하고 싶은 데로 하기를 원한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이 세상은 제 하고 싶은 데로 다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요. 그럼 내 하고 싶은 데로 안 되는 이 세상이 잘못된 거요? 잘못된 거 아니오. 그래서 여러분은 나 하고 싶은 데로 안 되면 이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이 내 하고 싶은 데로 되는 그런 세상. 그게 뭐다? 천당이고 극락이라고 생각해.

 

만약에 천당이 그런 세상이고 극락이 그런 세상이라면 실제로 가보면 그건 지옥이에요. ? 나만 내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싶어요? 딴 사람도 그래요? 딴 사람도 그래. 그러니까 우리 남편 내 생각은 어떠냐? 나만 쳐다보고 나만 사랑해주세요. 그래서 내 원하는 데로 됐으면 하는데. 저기 또 뒤에 있는 딴 여자는 또 자기만 쳐다봐 달라 그러는 거요. 그러면 내 소원만 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여자 소원도 들어져야 되죠. 으음. ? 다 자기 하고 싶은 데로 돼야 되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여자가 하고 싶은 데로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 “저 여자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어떻게 너 하고 싶은 데로 다 하냐?”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나도 내 하고 싶은 데로 다 안 되는 게 세상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데로 하고 싶은 데로 안 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세상이 요정도로 유지가 된다. 사람이 원하는 데로 다 돼 버리면 지금 이 아름다운 장산 기슭도 남아있겠어요? 안 남아있겠어요? 안 남아 있어. 다 이거 개발하고 싶은 사람 많아요? 없어요? 많아.

 

그들도 부처님한테 가서 계속 이것 좀 개발하게 어떻게 빽 좀 써 달라 할 거 아니오. 그렇게 하고 싶은 데로 해버리면 이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그러니 우리가 이 아름다운 것을 유지하려면 우리의 하고 싶은 거를 멈춰줘야 이 아름다움이 유지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다 되는 게 좋은 게 아니다. 이걸 알아야 되요. 그런데 우리는 나 하고 싶은 데로 다 되기를 원해. 그럼 자기 능력 것 하면 되는데 꼭 부처님 빽 까지 빌려서 그걸 다하려고 그래. 그래서 부처님이 이 사람 말 듣고 이거 해주고, 저 사람 말 듣고 저거 해주고 다 해줘 버렸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가져가버리고.

 

일본사람은 한국 저거 뺏게 해주세요.” 하고 일본 절에 가서 기도하고. 그래서 일본이 한국 먹어버리고. 거꾸로 또 한국 사람들이 한국 절에 가서 일본 저거 망하게 해주세요.” 그럼 일본 망해버리고. 이 사람 말 듣고 저 사람 말 듣고 원하는 데로 다 되면 이 지구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 무슬림들은 기독교 저거 망하라 해요? 안 해요? 하지. 그럼 기독교인들은 또 저거 무슬림 망하라고 해요? 안 해요? 하지. 그래서 무슬림에 다니는 사람은 알라이름으로 기독교인들 죽이고.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무슬림 죽이고. 이게 십자군전쟁 아니오.

 

이게 다 신의 이름으로 부처의 이름으로 이렇게 해서 제 하고 싶은 데로 하려고 하는데 이게 지금까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원인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평화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기 하고 싶은 데로 다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데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라기 보다 하고 싶은 데로 다 아예 되지가 않는다. 되지 않는데 되려고 하니 괴롭겠어요? 안 괴롭겠어요? 괴롭다. 그러니까 애초에 안 되도록 되어 있는 거를 안 되도록 되어 있는 줄을 알아버리면 그거를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오히려 괴롭지가 않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나하고 싶은 데로 내가 원한다.’ 할 때 이 세상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내가 원하니까 되는 게 있고, 내가 원해도 안 되는 게 있어요. 또 이 세상에는 또 이런 게 있어요. 내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게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되는 게 있어. 즉 하고 싶어서 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경우도 있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경우가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경우가 있고. 이게 이 세상이오. 우리는 늘 이 네 가지 중에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할 때는 해야 되고 하기 싫을 때는 안 해야 되고. 이 두 가지만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절반은 나머지 두 가지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거요. 그러니까 앞에 있는 두 가지가 일어날 때는 기쁘고, 뒤에 있는 두 가지가 일어날 때는 괴롭고. 그래서 우리 인생이 뭐냐? __. __. 고락이 되풀이 된다. 즐거웠다고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극락 갔다가 지옥 갔다가, 지옥 갔다가 천당 갔다가. 이걸 뭐라고 한다? 윤회다. 이렇게 말해. 그래서 우리 인생살이는 윤회 전생한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이렇게 이 세상이 되어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지옥도 있고 천당도 있는데 어떤 때는 천당 가고 어떤 때는 지옥 가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다.

 

이 세상은 본래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돼야 된다는 이 생각 때문에 원하는 것이 될 때는 천당 간 거 같고 원하는 것이 안 될 때는 지옥 간 거 같고. 그래서 지옥과 천당은 이 원하는 것이 다 돼야 된다는 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이 얘기요. 무슨 말인지 말귀 알아들었어요? 이게 내가 이런 데서 그냥 얘기하는데 별거 아닌 얘기 같은데 굉장히 고차원적인 얘기요. 그러면 자유와 속박도 어떠냐? 본래 이 세상에는 자유도 없고 속박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싶은 거를 하는 게 자유라고 정의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안 되면 뭐가 된다? 속박이 되는 거요. 그런데 이 세상은 하고 싶은 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하고 싶은 게 안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우리는 늘 자유로웠다가 속박을 받았다가, 자유로웠다가 속박을 받았다가. 늘 이렇게 윤회하게 되는 거요. 되풀이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되풀이 되는데 그 중에 우리는 속박은 받기 싫고 자유롭기만을 원한다 이거요. 그런데 이건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된요. 그렇게 된다 그러면 원하는 데로 다 돼야 된다는 얘기요. 그런데 원하는 데로 다 되면 이 세상이 다 망해버린다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완전한 자유.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 속박이 없는 자유. 이런 거를 얻을 수 있느냐? 이 속박이 없는, 자유가 곧 속박이 됐다. 속박이 또 자유가 됐다 하는 그런 윤회하지 않는 자유. 이거를 불교용어로 뭐라고 그러냐? 해탈이다. 이렇게 말해. 뭐라고? 해탈이다. 이렇게 말해. 해탈을 증득하려면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내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자유다 라는 이 생각이 잘못된 줄을 알아야 돼.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다 내 하고 싶은 데로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생각을 갖고 있는 한은 절대로 해탈은 할 수가 없어. 윤회만 하지. 그러면 그 예를 실제로 한번 들어보자 이거야. 누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그럴 때 못 피우게 하면 피울 자유를 속박 받죠. 맞습니까? 담배 피울 자유를 속박한다. 이렇게 말해. 그런데 여러분이 담배를 안 피우는데 안 피우려고 하는데 누가 군대 같은데 가면 강제로 피우라 그래. 그럴 때는 여러분은 뭐라고 말합니까? 담배 안 피울 자유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담배 피울 자유만 있어요? 안 피울 자유도 있어요? 안 피울 자유도 있어요.

 

그 때는 담배를 안 피울 자유가 있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거 한번 보세요. 어떤 때는 뭐라고 주장하고? 피울 자유를 주장하고 어떤 때는 안 피울 자유를 주장하고. 어떤 때는 갈 자유를 주장하고 어떤 때는 올 자유를 주장하고 그래요. 그런데 내가 법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못 들어오게 하면 들어갈 자유를 속박 받죠. 들어가 있는데 못나가게 하면 어때요? 나갈 자유가 속박 받아요. 어떤 때는 들어갈 자유. 어떤 때는 나갈 자유. 이렇게 말하거든.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팍 한번 뒤집어 보자. 지금 담배가 없어. 안 그러면 이거는 담배 피우면 안 되는 자리야. 그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다,’ 이 생각을 내면 담배 피울 자유가 속박을 받지.

 

그런데 나는 담배 안 피우고 싶다.’ 이 생각을 내면 담배 안 피울 자유가 보장되나? 안 보장되나? 보장이 되죠. 으음. 그런데 어떤 자리에 갔더니 누가 총을 머리에 대어놓고 담배 피우라 그래. 그럴 때 피울 자유를 누려버릴 수도 있지. 그 때 안 피우겠다고 악을 쓰면 어떻게 된다? 안 피울 자유가 총 앞에서 지금 버려야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피울 조건에서는 피우는 자유를 누리고. 못 피울 조건에서는 뭘 누린다? 안 피울 자유를 누린다. 법당 안에서 못나가게 할 때는 지금 못나가게 하니까 나갈 자유가 없어진 것만 생각하는데 무슨 자유가 있다? 법당 안에 있을 자유가 있다.

 

법당 안에 못 들어가게 할 때는 들어가는 자유를 잃어버린 거 같지마는 안 들어갈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해가 되요? 이거 굳이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얘기야. 이거. 그러기 때문에 객관조건, ~ 이게 수열인데. 객관조건은 할 조건일 때가 있고, 못할 조건이 있다. 두 가지입니다. 내 주관은 하고 싶을 때가 있고 하기 싫을 때가 있어. 이게 딱 맞아떨어지면 네 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조건,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는 조건, 하기 싫을 때 안 해도 되는 조건.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조건. 이럴 때 우리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조건과 하기 싫을 때 할 수 없는 조건은 주관과 객관이 딱 맞아떨어지지. 그런데 하고 싶은데 못할 조건과 하기 싫은데 해야 할 조건은 우리에게 고통이라 그래. 그런데 내 주관을 중심에 안 놓고 개관을 중심에 놓으면 어떻게 되느냐? 해야 될 조건에서는 하고 싶든 하기 싫은 뭐해 버리면 된다? 해버리면 되고. 할 수 없는 조건에서는 내가 하고 싶든 하기 싫든 안 하면 되지.

 

그러니까 하고 싶다 하기 싫다. 이것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나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이게 그 유명한 승찬대사가 쓴 신심명 첫 구절이에요. 至道無難지도무난이요. 지극한 도, 지극한 도라는 것은 해탈지도. 열반지도. 해탈에 이르는 길. 열반에 이르는 길. 부처 되는 길이다. 이 말이오. 지극한 도는. 어렵지가 않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함만 떠나면 된다. 좋고 싫고에만 구애를 받지 않으면 바로 해탈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좋고 싫고를 못 떠나요. 좋으면 죽어도 해야 되고 싫으면 죽어도 안 해야 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고락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부처님께 빌고 무슨 수를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좋고 싶고 에 집착. 좋다고 가지려 하고 싫다고 하고 멀리하려고 하는 이 좋고 싫고의 집착으로부터 떠날 수 있으면,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부처님도 아무도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어. 천하 어디를 가도 자유로워진다. 누구도 내 자유를 뺏을 수가 없어.

 

이걸 뭐라고 그러냐? 내 주관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에 나를 내 마음을 놔버린다. 나를 놓아버리고 맞추는 걸 이걸 뭐라고 그러냐? 인연을 따른다. 뭐라고? 인연을 따른다. 으음. 법성게 알아요? 거기 가면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 이런 말이 있어.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른다.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이렇게 말해. 이거는 다른 말로는 쉬운 말로는 뭐라고 그러냐? 오는 사람 잡지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 이렇게 표현하는 거요. 이 사람만 말하는 거 아니오. 인연이 도래하면 도래한 데로 받아들이고 인연이 가면가는 데로 받아들여라. 이런 얘기요.

 

이게 내 주관의 내 하고 싶고 하기 싫고를 너무 중심에 놓지 마라. 그런데 이게 하고 싶은데 억지로 참고 안하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참고하고 이러면 안 돼요. 그러면 뭐 한다? 병난다. 하고 싶은 데로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이러면 과보를 받고. 고락의 과보를 받고. 그래서 하기 싫으면 그냥 참고하고. 하고 싶어도 참고 안하고 이렇게 하면 과보는 안 받지마는 괴로워진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고 싶고 하기 싫고의 구애를 안 받아야 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안된다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는 마음 자기 알아서 자기가 일어나는 거니까. 자기야 그 마음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내가 신경을 안 쓰고. 하기 싫은 마음 일어나는 거는 그건 자기 알아서 일어나는 거니까 내가 신경을 안 쓴다. 업 따라 일어난다. 그래. 뭐라고? 업 따라. 까르마, 업 따라 일어나는 거기 때문에. 그래. 그래서 아침에 5시에 시계를 딱 틀어놓고 일어나서 기도를 해야 된단 말이오. 5시에 따르릉 하면 어떻게 한다? 일어난다. 일어나고 싶을 때도 있고 그 시간에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어. 마음은. 아시겠어요?

 

까르마는 업은. 일어나고 싶다 할 때도 있고 일어나기 싫다 할 때도 있어.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고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난다. 싫고 좋고를 문제 삼지 않고 따르릉 하면 그냥 일어난다. 어떻게 일어난다고? 그냥 일어난다. 이유를 대지 말아요. 이유를. 그냥 일어난다. 한번 해봐. 집에 가서.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을 하고 일어나지 말고. 따르릉 하면 싹~ 그냥 일어나버려. 공부는 쉬운 거요. 어떻게 일어난다? 그냥 일어난다. ~ 일어난다. 그러니까 4시에 잤더라도 5시에 따르릉 하며 어떻게 일어난다? 그냥 일어난다.

 

어떻게 그냥 일어나집니까? 일어나집니다. 왜 그럴까? 4시에 자더라도 5시에 총소리가 나면 일어나지나? 안 일어나지나? 어나 진다. 아시겠어요? 4시에 자더라도 5시에 누가 천만 원 준다. 그럼 일어나지나? 안 일어나지나? 4시에 잤더라도 5시에 내가 그리던 님이 대문간에 왔다 그러면 일어나지나? 안 일어나지나? 그러니까 못 일어나는 건 아니오. 아시겠어요? 일어나지는데 내가 일어나기가 싫다. 이래서 안 일어나는 거요. 그래서 일어나지도록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일어난다. 이렇게 해야지. 일어나야지. 하고 자꾸 결심을 하고 이러면 스트레스를 받아.

 

못 일어나는 자기를 자꾸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를 학대하게 돼. 그러지 말고 앞으로는 5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기로 했으면 어떻게 하면 된다? 일어나서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면 돼. 그냥.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누가 총을 뒤통수에 대놓고 절하라 그러면 108배 할 수 있나? 없나? 할 수 있어. 누구나 다. 아시겠어요? 몸은 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마음이 하기가 싫어. 그러니까 싫은 마음에 사로잡히면 죽어도 못할 거 같다. “때려 죽여도 나는 못하겠다.” 이렇게 나오는 거요.

 

아까 법문에 남편이 뭐라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랬죠?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하라 그랬어? 말로 이기지를 마라. 남편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어떻게 해라? . 알겠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라는 말이 죽어도 안 나온다. 숫제 맞아 죽었으면 죽었지 는 못하겠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건 하기 싫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사람이 되게 하기 싫으면 죽여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려운 거는 아니다. 아시겠어요? “.” 하는 건 쉬워요? 안 쉬워요? 지금 한번 .” 한번 해봐. 쉽지? 언제나 그렇게 쉬워. 그래서 .” 하면 되요. 어차피 다섯 대 맞고 두에 .” 하잖아요. 바보 같은 짓 아니오. 다섯 대 맞고 하면 맞아서 손해. 그러면 굉장히 굴욕감을 느껴요? 안 느껴요? 굴욕감을 느끼죠. 내가 힘이 있다면 이 놈을 어이해 버릴 텐데. 힘이 없어 할 수없이 그러잖아. 그지? 그렇게 굴욕감을 느끼기 때문에 도저히 나중에 참다 참다 못 참으면 어떻게 한다? 힘을 갖고 안 되니 뭐로 한다? 칼로 가지고 와서 찔러버리는 거요.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칼로 찔렀다 하면 ~ 여자가 나쁜 여자구나.” 하는데, 만나보면 다 착하디 착한 여자요. 나쁜 여자는 칼로 찌를 필요가 있나? 없나? 없어. 자기도 때려버리든지 도망을 가버리든지 그러지. 이건 착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겨요. 참고참고 참았다가 눈이 휘뚝 뒤비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이 밖에서 신문에 기사 난 거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여자가 만약에 남자를 열 번쯤 찔러버렸다. 그러면 그거는 더 착한 여자요. 진짜는 더 착한 여자요. 그래서 스님이 뭐라고 그랬다? 착한 여자 무섭다.

 

나는 여자가 착하다. 이러면 벌써 저쪽으로 도망갑니다. “아이고 무셔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런 얘기요. ? 나쁜 여자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 성질대로 부려버리기 때문에 저 속에 뭐 들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는데 착한 여자는 말로 안 하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다가 못 알아봐가지고 칼 맞을 수가 있다. 이거 알아야 돼. 그래서 좋은 거 아니오. 그래서 여러분이 참으면 안 된다. 아시겠어요? 참는다고 좋은 거 아니야.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참기는 참아야 되는데 참는 게 해결책은 아니고 이렇게 벌떡 일어나버려 돼. “.” 해버려야 돼. 그냥. 그래서 내가 일본 거 중에 좋아하는 거 하나 있어.

 

부르면 하이.” 얼마나 듣기 좋아. 아무개 하면 하이.” 이러잖아. 그래서 거기 가면 상쾌해요. 우선 사람하고 얘기하면 그냥. 우리 같으면 불러도 말도 안하고 꿍해서 세 번 불러야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잖아. 그럴 때는 싫다는 뜻이오? 좋다는 뜻이오? 싫다는 뜻이오. 네가 부르는데 난 말도 하기 싫다. 그래서 그건 대꾸하는 거 보다 더 두드려 맞는다니까. 그래서 앞에 얘기했죠. 이것도 어려운 건 아니다. 이 말이오. 어려운 거는 없어. 그러니까 이건 하기 싫다 하는데 사로잡혀서 목숨도 내놓는 거요. 하기 싫다는데 되게 사로잡히면 죽는 것도 겁이 안 나버려. “죽여라.” 이리 나오는 거요.

 

그래서 싫고 좋고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러분들 그걸 움켜쥐고 부처님한테 자꾸 얘기하니까 부처님도 어쩔 방법이 없어. 도와주고 싶어도. 그래서 이게 부처님도 구제 못하는 중생,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 중생, 인연 없는 중생이란 게 바로 이런 중생이다. 그래서 제가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중생은 다 제 그릇만큼 받아가. 아시겠어요? 바가지 가지고 온 사람 바가지. 대야 가지고 온 사람 대야. 요런 조그마한 종지기 가져온 사람 종지기. 요만큼씩 받아 가는데, 아무리 큰 그릇을 가져와도 아무리 밖에 오래 서있어도 한 방울도 못 받는 사람 있어.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어. 이건 방법이 없어. 이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 이게 인연 없는 중생이다.고 이름 붙여진 중생이오. 그럼 인연 없다는 건 과거에 뭐 어이어이해서 인연이 없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지금 인연이 없는 거요.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좋다. 싫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왜 이렇게 길게 얘기하느냐? 이분이 이기주의다 하는데 이기주의면 이익을 봐야 되잖아. 이기주의인데 손해를 봤다. 이거야. 바보 같은 짓이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냐? 이 분이 좋다 싫다에 너무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좋다. 싫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야 돼. 딱 뒤집으면 돼.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한다. 시어머니는 다 잔소리를 하지. 그지? 그 말은 무슨 말이야? 시어머니 말이 듣고 싶다는 말이오? 듣기 기 싫다는 말이오? 듣기 싫다. 그러면 잔소리를 해서 듣기 싫은 거요. 듣기 싫으니까 잔소리가 되는 거요. 이 중요한 거요. 원래 말에는 잔소리가 없어. 그냥 말밖에 없어. 그런데 내가 듣기 싫으면 잔소리가 되고, 듣고 싶으면 말씀이 되는 거요. 그럼 여러분들도 애들한테 잔소리를 하는 거요? 잘되라고 얘기해주는 거요. 남편한테도 잘되라고 얘기해주는 거요? 잔소리를 하는 거요?

 

여러분들 남편한테 바가지를 긁는 거요? 잘되라고 얘기해주는 거요? 잘되라고 충고해주지. 그지? 그런데 남편이 듣기 싫으면 그게 뭐가 된다? 잔소리가 되고, 듣기 싫으면 바가지가 된다. 애들도 엄마 말이 듣기 싫으면 뭐가 된다? 잔소리가 돼. 그러니까 말 자체는 잔소리가 없다. 내가 듣기 싫으면 잔소리가 되요. 그러니까 시어머니 말이 잔소리가 되는 거는 시어머니한테 달린 거요? 나한테 달린 거요. 내가 만든 거요.

 

그러니까 으음. 시어머니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럼 시어머니는 어떤 사람이냐? 그럼 좋은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도 아니다. 나쁜 사람이냐?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오? 지대로 생긴 사람이다. 그냥 자기대로 생긴 사람이다.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이야. 자기대로 자기습관대로 그냥 말하고 행동하고 자기 나름대로 위해주고, 자기 나름대로 얘기를 하고 그러는 거요. 그런데 그게 그 시어머니 까르마하고 시어머니의 마음하고 내 마음이 안 맞아.

 

쉽게 말하면 어떤 남자가 나를 좋다고 껴안는데 나는 싫으면,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는 뭐했다? 성추행을 당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왜 내가 사랑해주는데 그러냐?” 그런데 그건

건 자기 생각만 했기 때문에 그래.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사랑이 아니다. 상대편을 고려 안하고 사랑하는 거는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마음을 다 헤아리고 하는 게 아니고 자기 그냥 자기 업대로 하는 거요. 그럼 거꾸로 며느리는 시 어머의 마음을 헤아려서 지금 듣는 게 아니고 어떻게 듣는다? 자기 듣고 싶은 데로 듣는 거요.

 

그러니까 시어머니 말이 잔소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나를 속박한다. 이렇게 되는 거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외출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지. 여러분들도 시험치는 데 애가 어이 영화 간다 이러면, “그래, 갔다 오너라.” 이래야 돼요? ‘딴 때는 몰라도 시험 며칠 안 남았으니까 안 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 그런데 애 괴롭히려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애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보고 싶은 애가 들을 때는 엄마가 자기를 속박한다. 자기를 구속한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요.

 

그러면 엄마는 뭐라고 해요? 내가 널 위해서 이렇게 하지. 이러면서 막~ 화가 나죠. 너를 생각해줘도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이렇게 되는 거요. 그것처럼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나를 생각해서 애기해 준다고 하는 게 그렇다. 이거야. ? 내가 원하는 거 하고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이 생각이 같아요? 달라요? 달라. 왜 그럴까? 각자 까르마. 업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거는 그러면 통일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이거는 없다. 통일하는 게 좋은 겁니까? 좋은 것도 아니다. 산에 여기 보면 소나무도 있고,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온갖 나무가 있는데 이거 싹 베어 내버리고 한 가지 심는 게 꼭 좋다고 말 할 수가 없다.

 

다 자기 나름대로 생긴 것들이 어떤 때는 같은 것들이 쭉 솔밭이 되어 있을 때도 있어. 어떤 때는 섞여 있을 때도 있어서 어느 게 좋다고 말할 수가 없듯이. 여러분이 모이다 보면 까르마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일 때도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끼리 모일 때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어느 걸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 부부도 마찬가지고, 부모자식도 그렇고, 업이 비슷하게 모일 때도 있고 서로 다르게 모일 때도 있는데. 비슷하면 비슷해서 문제가 되고, 다르면 달라서 문제가 되요. 그래서 그건 좋다고 다르다고 말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냐? 사람은 다 까르마, 업이 다르다. 사람의 마음은 그 까르마에 의해서 일어나는 거다. 좋다 싫다가 일어나는 거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똑같은 국을 두고 싱겁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짜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고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풀을 좋아하고 그래요. 경상도 사람은 콩잎파리에 맷 좀 뭍여 놓으면 이게 왠떡인가하고 해외에 있는 사람은 귀하다 귀하다 그러는데 다른 집안사람은 그게 소 풀이지 그게 무슨 사람이 먹냐? 그것도 파란 콩잎도 아니고 누우런 떫감잎 있잖아요. 단풍든 거. 그거 좋아하는 거 보면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럴까? 어릴 때부터 먹어봐서 혀의 까르마 그 습관이 밴 사람과 그 습관이 안 밴 사람이 그렇다.

 

담배도 피우던 사람은 한 대 탁 피워야 속이 후련하고,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은 왜 이 좁은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냐 그러고, 이렇게 다 서로 다르다. 그러니 이 지금 질문하신 보살님은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니까 ~ 시어머니하고 나하고는 업이 다르다. 그래서 가치관이나 생각이나 이런 일어나는 게 서로 다르다.” 100% 다르다는 게 아니라 어떤 거는 같은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다르다 이 말이오. 그래서 그 분은 그분대로 좋다고 하는 일이 나한테는 싫을 수도 있고. 그래서 생긴 문제지. 시어머니가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런 거는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까? 이걸 이해하면 과거에 나한테 시어머니에 대해서 악감정이 있는 거는 지워야 된다. “~ 이거 내가 바보같이 어리석어서 그랬구나.” 하고 참회를 해서 지워야 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 시어머니 입장으로 돌아가서 이해를 해보면 돼. “아이고 어머니는 저렇게 한평생 살아오셨고, 저렇게 하셨기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고 저런 말을 하시구나.” 이렇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고 이해를 하면, 그 하는 행동을 보면 누가 가슴이 안 답답해진다? 내가 안 답답해져.

 

지금 이 사람은 피해의식에 가득차가지고 어머니한테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주면 또 나한테 간섭하지 않을까?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거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시어머니는 자기한테 잘해주니까. 시어머니도 또 고마워해서 며느리한테 잘해주려고 해요? 안 해요? 하는 게 내가 볼 때는 뭐다? 나를 또 못살게 구는 것같이 느낄 뿐이지, 나를 못살게 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거는 아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첫째는 상대를 이해하고, 두 번째는 이제 새색시도 아니고 좀 살만큼 살았으니까, 이제 표현도 조금 해본다. 아시겠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하고 먼저 인사하고. 두 번째는 그래도 저는 싫네요.” 이렇게.

 

상대편 남자가 나를 좋다고 껴안으면 나를 좋아해주는 건 이해해야 되잖아. 그지? 아이고 당신 나를 좋아해주는 건 좋지마는, 나는 그것이 싫다. 나한테는 그것이 고통이 된다고 내 마음을 전할 수가 있어야 한다. “이 인간이 이 미쳤냐?” 이러지 말고. 으음. 그렇게 함으로 해서 내 의견도 내고. 그렇게 하면 이제. 그런데 신경질이 나가지고 얘기를 하면 상처를 입게 되니까. 그렇게 하면서 기도하면서 해야 돼. 기도하면서. 기도하면서 이제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받아들이고, 표현도 조금씩 하고, 이렇게 하면 좋아질 거요. 100일 기도 입제해서 100일간 참회기도 하면서 한번 해보세요. 충분히 해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