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붓다의 원음, 숫타니파타

Buddhastudy 2024. 7. 15. 19:39

 

 

 

붓다의 원음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숫타니파타는

간결하고 아름답고 강력하다.

붓다의 설법 내용이 가장 소박하지만 분명하게 얘기되어 있다.

붓다는 탐진치라는 심리적 문제를 무상의 알아차림이라는

인지적 문제로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집착에서 벗어난 인간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오늘은 붓다의 원음이라고 하는

가장 초기의 경전이라고 일컬러지는

숫타니파타에 관해서 잠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숫타라고 하는 경이고

니파타라고 하는 것은 집이니까

경집

경들을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겠는데

 

이거는 부처님 돌아가시고 나서 한 100년쯤 지나서

제자들이 결집할 때

함께 암송하면서 정리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처님 녹음기도 없고 부처님 직설을 들을 수는 없지만

가장 원음에 가까운 경전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거를 경전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제는 뭐냐 하면은

부처님의 얘기, 불교 얘기가 특히 한자 문화권으로 옮겨오면서

한자로 돼 있잖아, 너무 어렵잖아요.

 

그리고 그게 아비달마 시대의 치열한 논쟁과

그다음에 중관불교 유식불교라고 하는 또 이 엄청난 지적인 작업과

그다음에 선불교라고 하는

이번에는 또 언어를 끊어낸, 또 다른 어떤 선불교라고 하는 이런 관점들에서

언어적인 표현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교에 접근하는 것이 좀 힘들었던 그런 게

팩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되느냐?

그냥 소박하게

그럼 원래 붓다시대의 부처는 무슨 얘기를 했냐?

 

그걸 좀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에 가장 적합한 것이

법정 스님이 번역한 숫타니파타가 가장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숫타니파타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 장에 허물을 벗은 뱀에 관한 비유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기 보면 구조가 나타나고

그 구조에서 붓다가 하고 싶은 말이

저는 거의 다 나왔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걸 현대의 시스템 시어리로 보면은

이 붓다가 인풋이라고 한 게 있고

그다음에 프로세싱 CPU라고 한 게 있고

아웃풋이 있고

아웃컴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간단한 암송하는 문장 구조에

그게 다 들어가 있더라, 하는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별거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진리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간소하고, 담백하고, 그 대신 강력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뱀의 비유라고 하는 것을 간단하게 보면은

그 인풋이 뭐냐 하면은

결국은 사람의 마음은 불편을 초래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모습들이 있는데

그것이 탐진치만의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욕심내고, 분노하고, 어리석음에 빠지고, 자만하고, 의심하고 하는

이런 탐진치만의라고 하는 마음이 불편한 요소 상황들은

현대로 치면 결국 욕망과 분노의 문제죠.

그러니까 욕망의 좌절이 분노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현대인들은 욕망과 분노를 바로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불안과 우울이라고 하는 병을 앓게 되죠.

그리고 이 불안과 우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좌절된 욕망과 슬픔을 밑에 깔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문화 문명의 사회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심리적인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겠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인풋이죠.

인풋은 뭡니까?

불편하네, 괴롭네 이거죠.

괴로운 마음이 인풋이고요.

 

그러면 이것에 대해서 붓다는 처방을, 진단과 처방을 어떻게 했는가 하면은

야 이거는 말이지 좀 인지적인 깨우침, 깨달음이, 알아차림이 필요해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죠.

 

그러니까 이 처방이

욕망과 싸워라 라거나, 분노를 억눌러라거나

이런 인격 도야가 아니었습니다.

붓다는 완전히 다르게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 인지적인 문제로 처방을 보내줍니다.

그 처방전의 핵심은

무상이죠.

영원한 것은 없다.

어떤 것도 조건에 따라서 생겨났다가 조건에 따라서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붙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간밤에 꾼 꿈과 같아서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생생하다 할지라도

지나가고 나면 꿈과 같은 속성이라서

우리가 붙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덧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는 관객이거나, 역할 연기에 몰입해 있는 배우거나

어쨌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식의 실재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제시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해가 되면

아웃풋이 나옵니다, 결과가 나옵니다.

아웃풋은 뭐냐 하면

심리적으로 괴로움이 치유가 될 수가 있습니다.

괴로움이 치유가 되는 과정이 있는 것이죠.

 

그렇게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무상에서 붙잡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또는 고정된 실체가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심리적인 상황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이거는 붙잡을 수 없어 붙잡을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집착하면 괴롭잖아요.

그래서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는데

이것은 집착하지 말아야지해서는 되는 일이 아니고

이것은 집착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이건 어쩔 수가 없구나

이런 것들을 절감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집착이 버려진다라고 하는 것은

초기 불교에 아주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거든요.

염오의 마음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염오라고 하는 것은 지긋지긋해서 염증이 생길 정도로 싫다

싫어지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염오에서 이욕(탐을, 번뇌를 떠나는 것)

그건 돌아보기도 싫다, 덧정 없다, 진절머리 난다. 그래서 그걸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거지

염오의 단계가 있어야 이욕이 가능하다.

욕망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

 

여전히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어떻게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똑바로 보지 않는 한

그런 심리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이

탁월한 붓다의 시선이었다 라고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염오와 그다음에 이욕

욕망에서 떠나진 그런 과정 다음에야 해탈이 온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 뒤에 해탈지견 이렇게 해서

내가 벗어났구나하는 것을 안다, 알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한 거 아닙니까?

 

정확하게 초기 붓다의 얘기는 이거였고

이게 뭐 어려울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황금이라고 생각하는 누리끼리라는 게 있는데

그걸 황금이라고 생각하면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고 하면 그게 되냐?

그건 안 된다.

그거 눌러놔봤자 될 길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붓다의 생각이죠.

 

근데 자세히 보니까 황금이 아니고 똥이네

그러면 그거 가져가려고 아귀다툼 안 하지 않겠냐

이게 붓다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네가 지금 그걸 황금이라고 보는 것은

니 머릿속에 많은 왜곡된 상황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바로 보면 그렇지 않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바라본다는 것이 무상한 것이다 하는 것을 깨우친 것이죠.

그러니까 무상한 것이니까

영원한 본체가 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게 그렇게까지 집착할 것은 아니다.

 

간밤에 꿈이 좋았든 악몽이든

깨고 나면 꿈인 거죠.

그게 아웃풋, 집착으로부터 떠난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아웃풋만 있는 게 아니고

붓다의 위대성은 아웃컴에 있는데

아웃컴은

그런 식으로 마음이 자유로워진 사람은

이게 중요한 문장인데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다 벗어난다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이 세계를 세속이라 그러고

저 세계를 정신적인 깨달음의 세계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가는 천국 같은 내세일 수도 있는데

붓다는 분명하게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모두 벗어난다 이랬거든요.

 

그게 중도 아닙니까?

중도라고 하는 것은 2분의 1이 아니고

양극단을 배제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 세속적인 성공과 내세에서의 영원한 행복

이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거는 현재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 여기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라고 하는 게

붓다의 아웃컴 이렇게 되겠습니다.

 

더군다나 세속적 성공이나

미래 내세의 행복이나

이런 부분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의 말에서 자유로워진다라고 하는 것을

비유를 해보자면

예를 들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또는 사랑하는 것과 내가 애착하는 것과 헤어질 때 상처가 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상처는 아파하는 시간을 잊고

그것이 지나고 나면 상처가 아물고

이제는 상처가 무뎌지고, 안 아프고

그렇지만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은 있기 때문에

그 상처를 다시 보고 싶지는 않죠, 회피하죠.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잊었긴 잊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만나서 일상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안 만나죠.

안 만나고 잊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는 뭐냐 하면

그 사람을 만나도

처음 만난 것처럼

심리적인 상처, 트라우마의 기억 없이

그냥 인간 인간으로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으면

진정으로 극복이 된 것이죠.

그럴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라고 말을 할 수 있겠죠.

 

-두 번째는 미래에 대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라고 하는 것인데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뭐냐 하면

걱정을 안 하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뭐냐면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건 생각이다.

이게 첫 번째고

 

더군다나 미래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인데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을 조합해서

이렇게 이렇게 되지 않겠냐라고 시나리오를 짜는 것은

그야말로 그것은 시나리오일 뿐이지

팩트가 아니지 않느냐?

 

근데 인간의 뇌는 그렇게 해서 해보면

미래에 마치 그 일이 당장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핵심은 뭐냐 하면

미래라고 하는 것은

지금 내가 상상하는 것인데

내가 상상하는 거라고 하는 그 재료는 뭐냐 하면

이 과거와 현재에 축적된 경험에 불과하거든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내가 모르는 것을 상상해 봤자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것이 또 팩트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의 건강, 내가 갖고 있는 돈, 나의 지위, 나의 인간관계

이런 것들로 조합해서

야 이거 가지고는 위대한 성과를 만들 수가 없겠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

때가 되면

그때 가장 맞는 반응이 일어난다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은

현재의 성공과 내세 또는 미래의 행복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한다라고 할 때

우리가 불교신자나 기독교신자랑 신앙을 하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음공부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스트레스죠.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 자체를 안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상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 자유로워지는 방식은

세상의 조건 주어짐, 연기죠.

그래서 그것을 무성하고, 영원한 본체라고 하는 건 없다라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집착은 놓아진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당장 그것이 안 되더라도

그러니까 뭐죠?

무상하고 무아라고 하는 걸 알아도

어떤 사건이 생기면 허둥대고, 당황하고, 막 넘어지지 않습니까?

그거는 뭐 똑같죠.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하면

그래도 바람이 멎으면

파도는 곧 혹은 언젠가는 잔잔해지지 않겠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바람이 멎는다라고 하는 것이

그 실상을 바로 보는 정견이 되겠죠.

그래서 무상과 무아의 눈으로 보면

내가 허둥대고 괴로움에 빠지는 그런 것들은 점차점차

욕망과 분노에 빠지는 그런 것들은 점차점차

물결이 잔잔해지다가

결국은 희미해서 없어진다.

이게 붓다가 제시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붓다의 초기 경 숫타니파타에 실린 문장의 구조

그것에 붓다의 84천의 생각이 거의 다 들어가 있어서

불교는 그렇게 복잡한 것도, 어려운 것도, 난해한 것도 아니다.

간단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더 강력하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