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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經 | "도는 말이 없다" - 도덕경을 '道의 눈'으로 보면 | 월인선원

Buddhastudy 2024. 7. 17. 19:27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 중에

굉장히 많이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지자불언 언자부지다.

 

보통은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이 이제 해석이 되고

그렇게 알려져 있는 언구인데 구절인데

그것도 말이 됩니다.

 

실상이라고 하는 이거를 이렇게 깨달아보면

이거는 말할 수 없음이 스스로 분명해지니까

진짜 안다이걸 진실로 깨달았다그러면

말이 없고

못 깨달은 사람은 다 헤아려서 분별해서

-이런 거다 저런 거다

-또는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

여기에 다 생각이 있으니까

못 깨달은 사람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말이 많은 사람은 진짜 아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많이 쓰는데

물론 뭐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해석하든

세간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든

하여튼 이 깨달음을 가지고 해석하든 상관은 없는데

 

저는 그런 얘기라기보다도 제가 볼 때는

지자라고 하는 것은 앎이란 이런 뜻이에요. 지식이라고 하는 것

보통 이제 놈 자를 한문에서 쓸 때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킬 때 쓸 때도 있지만

지식이라는 것은’, ‘지식은

이렇게 쓸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앎이라고 하는 것

여기서는 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식할 때도 이 자를 쓰는 거고

실상에 법에, 도에 이렇게 통한 이것도 이 자를 씁니다.

 

말하고 지하고 이렇게 상대로 썼기 때문에

는 실상을 얘기하는 거고

깨달음, 이 법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법의 깨달음,

도를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참다운 도는, 참다운 지혜는 이런 뜻이에요.

지혜는 또는 도는 이 말이 없다.

 

그러니까 이거 하나 가르쳐주려고

도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아니고 이런 말인데

무언이 아니니까

불언입니다. 여기에서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말이라고 하는 것은

도가 아니다.

 

이거 하나 가르쳐주려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에 대해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면

못 깨달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알으라고

이런 말을 그건 세속에서나 하는 얘기입니다.

 

세속에서는

말도 좀 겸손하고, 쓸데 없는 말하지 말고

이런 거 있잖아요.

세속의 가치로 하는 얘기 있잖아요.

 

물론 이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들이

어떤 세속의 가치로 해석을 거의 다 하고 있죠.

도를 얘기해 놨는데, 노자는 도를 얘기해 놨는데

그 뒤에 세상 사람들이

노자의 돌을 보는 눈이 없으니까

어떤 세속에 가치, 처세술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다 해석을 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을 하고, 자기 식대로 써먹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죠.

 

부처님도 전부 49년 동안

이 도 하나, 말할 수 없는 이거 하나를 억지로 말을 해놨는데

이거를 볼 눈이 없으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세속을 좀 잘 사는 이런 방편이 있잖아요.

세속을 잘 사는 걸 처세라고 그러잖아요. 처세술이라고 그러죠.

사업이 잘 되고, 병이 없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관계를 원활히 맺고, 뭐 이런 거

이런 식으로 타락시켜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부처님이 하신 말씀도

중생이 읽으면 다 마구니의 말이 된다이런 말이 있듯이

이거를 직접 자기가 깨달아보지 않으면은

부처님이 49년 동안 온갖 말씀을 하신 그거는

읽을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읽어봐야 다 독이 됩니다.

들어봐야 다 독이 돼요.

 

자기가 깨달아서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그런 힘이 있어야 되는 거죠.

 

도를 얘기한 건데

도에 통하지 않은 사람이 봐봐야

다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자기도 여기 통해 봐야 그런 말씀들이

어떤 말씀인지가 조금씩 조금씩 실감이 되고, 공감이 되는 거죠.

 

도덕경도 마찬가지예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했지만

정말로 말할 수 없는 도의 눈으로 번역하는 경우는

지금까지는 제가 못 봤어요.

그 많은 도덕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있지만.

전부 세속의 어떤 가치, 이런 걸로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도덕경을 50년 동안 연구했다고 자부하시는 분이에요.

도올 김용옥 선생인데

이분은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했냐?

참으로 아는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말하는 자는 참으로 알지 못한다이렇게 번역하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렇게 번역한 걸 딱 보면은

세속적인 가치로 번역하시는구나이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이거는 이 말을 진중하게 하라는 뜻이잖아요.

함부로 하지 말고 진중하게

도하고 아무 상관없는 말입니다.

 

도를 함부로 말하든, 진중하게 말하든

말을 하든 뭐 침묵을 하든

도라고 하는 건 다 드러나 있는 건데.

 

세속에서는 그러죠.

말은 진중하게 하고, 거짓말하지 말고, 함부로 하지 말고, 거칠게 하지 말고

뭐 이렇게,

세속의 가치입니다.

세속의 가치를 제가 무시하는 게 아니고

세속의 가치와 출세간이라고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출세간은 출세간인 거고

세속은 세속인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속의 삶이 가능하면

쓸데없는 말 안 하고, 거짓말 안 하고, 이러면 훨씬 좋죠.

이게 세속에서 가능한 일이냐 아니냐는 저는 모르겠어요.

제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말인데 .

 

세속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인류 역사에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없다라고 하는

어떤 타당한 원인이나 논거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분별을 하기 때문에.

참말이 있으면 거짓말이 있는 거고

진중한 말이 있으면 함부로 하는 말이 있는 거고

어쩔 수 없어요, 그거는.

 

세속을 살면서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거고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으로는 괴로움도 없고, 슬픔도 없고

기쁨과 즐거움만

죽을 때까지 늘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생각할 수는 있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근데 그건 불가능하죠.

그런 일은 없거든.

?

우리가 분별하기 때문에.

 

그 얘기는세상의 모든 모습이

동그라미로만 되어 있으면 좋겠다하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물론 가능하면 그러면 좋죠.

세속도 좀 그러면 좋죠.

어떤 부도 왜 이렇게 극심하게 차이 안 나고

가운데, 이쪽이 풍부하고 이러면 훨씬 좋죠, 세속도.

그래야 좀 갈등 대립도 좀 적고 좋은 거죠.

 

근데 그거는 기대하고 바라고 원하는 생각일 수는 있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냐?

이렇게 저한테 물을 때는

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할 겁니다.

우리가 분별하고 사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세속의 일하고, 세속을 떠난 출세간의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우리가 늘 세속에서 살아왔고, 세속의 어떤 가치에 오염이 돼 있기 때문에

출세간에 대해서도

당연히 세속의 가치로 생각을 하죠.

-깨달은 사람은 이래야 된다느니

-도는 이렇게 돼야 된다느니

이렇게 생각을 하죠.

전혀 다른 겁니다, 전혀.

 

왜냐하면 출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한자 뜻 그대로도, 세간을 떠난 거잖아요. 세간을 떠난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금강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잖아요.

보살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다

이렇게 가르치잖아요.

이때 이 보살이라고 하는 게 출세간을 얘기하는 거거든

, 아까 제가 얘기한 부처를 얘기하는 겁니다.

 

여기는 뭐가 없다고?

아상, 나라는 생각도 없고

인상,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고

중생상,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수자상, 수자라는 생각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분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렇게 4가지로, 딱 대표로 상징으로 세워놨는데

모든 분별을 얘기하는 거예요, 모든 분별.

이 세속의 모든 가치 기준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런 이름도 없고 이런 모습도 없다.

그게 보살이고, 그게 출세간 아니고, 그게 도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여기는.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떤 가치로든, 어떤 기준으로든

평가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분별할 수가 없는 거지,

여기는.

 

출세간이라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지고, 대단한 세상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분별을 떠나 있다는 말이지.

 

우리 분별이 한 번 뚝 부러지는

그거라는 거예요.

그걸 해탈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적멸해탈.

 

모든 분별로부터 벗어났다는 거야.

모든 분별입니다, 모든 분별.

 

그걸 우리가 출세간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떤 좋은 세간의 가치로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건 세관의 일일 뿐이야.

어떤 좋은 기준을 가지고 얘기를 해도.

 

그러니까 깨달은 사람은 성스럽고, 뭐 하고, 뭐 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세간이지 출세간은 아닌 거예요.

말이 없다고 그랬잖아요.

말이 아니라고 그랬고.

 

이거는 말이 아니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냥 이럴 뿐인 거지.

분별을 벗어나 있는 거라니까.

분별이 뚝 부러진 거고.

그냥 이거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