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빅뱅 이론에서 포기한, 특이점 이전은 어떤 상태일까? (대도에 이르는 서 1편)

Buddhastudy 2024. 7. 22. 19:33

 

 

무엇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만든 것일까요?

 

인간은 언어를 쓰게 되면서

사유 작용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되었고

마침내 동물과 뚜렷이 구별해주는

이성이라는 품질 보증서를 획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성은 이제 적자생존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본질로까지 의심의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에서

가치 창조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태동한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이제 인간은 철학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두드리며

진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철학에서 처음으로 대두된 것

그것은 나와 우주에 관한 근본적 의문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우주는 무엇인가?/

 

이 간단한 명제가 철학의 목표가 되었고

여기서 비롯한 것이 우주론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형을 예측하여 그려보는 것인데,

정확한 형태의 우주를 찾아낼 때

비로소 인간 존재의 비밀 또한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주란

신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거북을 층층이 쌓아놓은 것이나

두 마리 커다란 코끼리 위에 얹혀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평평한 대지 위에

둥근 반구형의 하늘을 매단 것으로 추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관념들은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인

개천설의 태동을 불러왔습니다.

 

개천설이란

평평한 땅 위에 우산처럼 둥근 하늘이 덮여 있는

우주 모형을 말합니다.

 

이런 천원지방의 우주론이

동서양에 걸쳐 한동안 대세를 이루다가

기원전 4세기 무렵에

마침내 기발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냉철한 분석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둥근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운행하는

원형지구천동설을 주창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2세기 중엽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피타고라스의 등속원운동과

아폴로니우스의 주원전을 결합하여

주전원설이라는 우주 모형을 만듭니다.

 

이로써 천동설의 이론적 토대가 바뀌게 되었고

이후로 무려 1400년 동안이나

서양의 우주관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동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BC 281년경에 아리스타르코스가

천동설을 뒤엎는 색다른 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태양을 하나의 항성으로 보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가설을 제시한 지동설이었습니다.

놀랍고 획기적인 발상이었지만

당시 종교인들의 반발에 부닥쳐

오랜 세월 동안 세인들의 기억에서 묻히고 맙니다.

 

이 무렵 동양에서도

개천설을 뛰어넘어

지구와 하늘을 구형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 잡게 됩니다.

 

달걀의 껍데기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듯

하늘 역시 땅을 둘러싼 모습으로 되어 있다는 설

바로 혼천설입니다.

 

이 설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후한의 장영에 져서 <혼천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당시에 동서양에 걸쳐 여러 우주론이 등장했지만

대세는 역시 천동설이었습니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천동설은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진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에 이르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이

다시금 고개를 들게 됩니다.

그것은 1543년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라는

초판 인쇄본이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에 무한 개념을 도입했고

행성 간의 상대 거리에 대한 측정을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의 인식 전환을 불러왔고

수학을 비롯하여, 케플러 제3 법칙과 뉴턴역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야말로 우주관 세계관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고

그래서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 일컬어집니다.

그러다가 17세기 초에

갈릴레오가 고성능 망원경을 발명함으로써

지동설이 탄력을 받게 됩니다.

 

천체의 관측이 보다 정교해지면서

지동설에 대한 증거들이 속속 나오게 되자

마침내 지동설은

설득력 있는 우주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지동설은

행성들이 태양을 정원 궤도로 돌고 있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관측하면

실제 현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적잖게 나왔습니다.

 

이것에 의문을 품고 연구하던 케플러는

마침내 그 해답을 타원궤도 지동설에서 찾게 됩니다.

그가 행성들의 공전궤도를 타원으로 설정하자

실측과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신이 완벽한 정원을 놔두고

타원으로 우주를 설계했는지에 대해 꺼림직하게 생각했지만

어쨌든 우주 모형은 케플러에 의해

정원궤도 지동설에서

타원궤도 지동설로 한 발짝 더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외형만 일치한다고 우주 모형이 완성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가 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설계도입니다.

 

그 설계도를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은 행성들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렸습니다.

우주 모형의 설계도를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우주가 어떤 원리로 변화하며 존재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주의 외형의 내부 설계도까지 나왔으니

완성된 것인가요?

 

그런데 뉴턴의 설계도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자기와 빛의 세계입니다.

 

이들의 세계는

놀랍게도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이런 도깨비 같은 놈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점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앨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그는 전자기계와 빛을 연구하다가

특수상대성이론을 찾아냈습니다.

놀랍게도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공간이 휘어진다는 사실도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실로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론이

다시 한 번 그 모형을 바꾸게 되는 전기가 마련됐고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공에

뉴턴의 역학이 결합 된

우주 모형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주 모형이 다 끝난 것인가요?

오늘날에 이르러 첨단 과학의 발달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모형이

먼지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주는 138억 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지녔고

그 속의 태양은 무려 수천 조개나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주 모형을 그리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그린 것이 빅뱅론입니다.

 

이것은 한 점에서 폭발하여

현재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빅뱅 이전의 모형을 그릴 수 없다는

한계에 부닥쳐 있습니다.

특이점의 기원에 대해 밝히지 못한다면

빅뱅론은 그저 우주론의 한 단면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특이점 이전은

우리의 시공을 벗어났기에

과학적 탐구 대상이 아닙니다.

 

특이점

시공이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

여기에 대한 의문은

우주의 최초 질료에 대한 의문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철학에서 말하는 제1원인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대두된 것입니다.

 

시간을 무한대로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최초 인자를 찾고, 그 속성을 파악할 때

비로소 우주의 전체상이 그려지고

우주 모형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쯤 되어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힌트도 더불어 얻게 될 것입니다.

 

결국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모형은

1원인을 찾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1원인이란 쉽게 말해

우주 삼라만상의 어머니 자리입니다.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 어떤 우주론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단면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1원인

오늘날의 과학적 한계를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차원을 달리하는 형이상학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철학과 과학에 인간의 직관을 더해

사고로서 그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도학이라 부릅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도학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만일 도학이 아닌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우주 모형을 완성하려 한다면

까마득한 세월 동안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수십만 년이 흘러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했다고 가정해도

우주 모형의 완성은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학의 힘으로

3차원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해도

우주는 3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고차원 세계로 무한히 뻗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차원을 넘나드는 인간의 의식

즉 도학을 끌어다 우주를 바라보고

이로써 제1원인과 나의 근본 문제에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누구이고

우주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