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진쏠미] 끌어당김의 종착지가 [내맡기기]인 이유: 내맡김에 관한 모든 것

Buddhastudy 2024. 7. 25. 19:25

 

 

끌어당김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소소한 것들이 잘 끌려옵니다.

그런데 끌어당김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작용이 하나둘씩 발생합니다.

 

1_원하는 게 전부 끌려왔는데도 그닥 행복하지 않거나

2_끌어당기고 나서 더 안 좋은 일이일어나거나

3_원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일이 끌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는 데에는

크게 4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에고가 원하는 것과 영혼이 원하는 것이 달라서

에고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영혼에게까지 좋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왜냐, 에고가 믿어 의심치 않는 관념들의 99.9%

학습된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시대 의식, 사회 문화, 국가의 집단 무의식, 주변 사람들 등등으로부터

학습된관념을 고수하게 되면 자신이 기존에알던 것

좋은 것이라고 배워왔던것들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혼의 고유성과 결은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고가 원하던 것들이 다 끌려와도

영혼이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혼의 언어인 감정과 느낌]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해오는 겁니다.

 

바라던 것이 아예 안 끌어당겨진이유도 비슷합니다.

에너지 차원에서는

부조화스러운에너지가 절대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주파수가 다른에너지들끼리 어찌저찌 붙어있게 되었다고 해도

에너지 부조화 현상때문에

반드시 서로 밀려나거나 한쪽이 튕겨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가끌어당기고자 한 것이

영혼의 고유성과 너무나 부조화스러운 것이었다면

에고가 그토록 끌어당기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적인 차원에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끌어당김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두번째 이유

바로 양극성때문입니다.

 

물질세계는 상대성과 이원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선과 악, 음과 양, 빛과 어둠

이렇게 대비되는 개념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한쌍입니다.

 

왜 한쌍인가?

대비되는 개념 중 어느 하나가 없어져 버리면

다른 하나도 동시에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일주일 넘게 밥 한 톨도 못 먹고 쫄쫄 굶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배고픔에서 오는 엄청난 공허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때, 여러분 앞에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엄청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될 겁니다.

 

배고픔이라는 공허감을 온몸으로 느껴줬기 때문에

비로소밥 먹는 순간에 강렬한 충만함

느낄 수 있게 된 겁니다.

 

반면에, 항상 배부르게 지내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숨쉬듯이음식을 먹는 사람은 음식이 주는 충만함을

...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배고픔에서 오는 공허함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배부름이라는 충만함의 진정한 의미까지

동시에모르게 된 겁니다.

 

이처럼 충만함은 허무함과의 대비 속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가지고 존립할 수 있습니다.

 

에고가 엄청난 충만함을 끌어당겼다고 해 봅시다

그때 에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충만함밖에 없어요.

자신은 오직 충만함끌어당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고가 실제로끌어당긴 것은

[충만함/공허함]이라는 한 세트입니다.

충만함끌어당기려고 했는데

공허함까지 같이딸려온 거예요

 

왜냐, 양극성은 한쌍이기 때문에

나의 세상에서 100만큼의 충만함이 충만함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100만큼의 공허함같이존재해 줘야 합니다.

, 서로 대비되는 양극성은

반대되는 짝이 존재해 주어야만

비로소 자신도 의미를 가지고 존립할 수 있기 때문에

충만함과 공허함은 한몸처럼 꼭 붙어서찾아옵니다.

 

그래서 끌어당김에 성공해서

어느 한 부분은 충만해졌어도

다른 부분에서비워지거나 공허해지는 일이

함께끌려오는 겁니다.

 

 

끌어당김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세번째 이유

바로 균형력때문입니다.

 

물질 우주는 음과 양, 선과 악, 빛과 어둠과 같은

양극성을 바탕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양극성 사이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면?

한쪽만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의미를 잃게 됩니다.

착한 사람 50, 악한 사람 50명으로 구성된 A모둠과

착한 사람 99, 악한 사람 1명으로 구성된 B모둠이 있다고 해봅시다

a모둠에서는 선과 악의 균형이 팽팽합니다.

착한 사람들의 행동과 악한 사람들의 행동이

뚜렷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선은 [선으로서의 의미], 악은 [악으로서의 의미]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선과 악은 미묘한 균형하에서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지키며

유기적으로 공존하게 됩니다.

 

반면에 b모둠에서는 선과 악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악한 사람 50명이 존재하는 a모둠에서는

여전히 좋은일로 여겨지는 일이 b모둠에서는

그냥 숨쉬듯이 당연한일이 돼버렸습니다.

 

a모둠에서는 착한사람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b모둠에서는 보통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선이 선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 겁니다.

, ‘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만 약해진 게 아니라

의 의미까지도 동시에약해진 거예요

 

이처럼 양극성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하면

두 개념 모두존재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두 개념 모두가 온전히 존립할 수 있도록

양극성 사이의 균형이 긴밀하게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바로 이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

균형력입니다.

동양의 사상가 노자는 균형력을 라고 일컬으면서

만물의 균형을 조화롭게 유지하는심오한 힘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양극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부터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균형까지

우주상의 모든 것들은

균형력의 간섭을 받으면서

긴밀하고 정교한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쪽으로도 밀고 당기는 힘이 없는 균형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발생한다면?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균형력에 의해서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밀쳐내는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644

내가 무언가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순간

끌어당기고자 하는 인위적 작용때문에

균형 상태가 깨지고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균형력이 발동해서

끌어당긴 것만큼

뭔가가 밀려져 나가는반작용을 맞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를 성공적으로 끌어당겼다고 해도

끌어당긴 것을 그대로 잃게되거나

다른 부분에서끌어당긴 것에 비례하는 손실을 입게 되는 겁니다.

 

끌어당김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네번째 이유는 바로 잠재의식의 특성때문입니다.

 

현실 창조의 주체는 무의식, 잠재의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잠재의식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잠재의식은 오직 현재만 인식합니다.

잠재의식한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연속되는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끌어당김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잠재의식의 현재형특성을 잘 모르거나

알았다고 해도 금방 까먹어버립니다.’

그래서 언젠가이걸 가지게 되면 좋을 것 같아

미래에이걸 가지고 싶어와 같은 결핍문의 형태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현재만 인식하는 잠재의식은

나의 기도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 내가 이걸 이렇게나 간절히 바라는 거 보니까

지금은이걸 안 가지고 있다는 거네?

현재에는이게 없다는 거네?

그렇게 잠재의식은

지금은그걸 가지고 있지 않은 현재를 창조해 버립니다.

계속해서 그걸 갖고 싶어하는 현재를 창조하는 거예요.

 

이제 왜

이미 그것을 가진상태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지금이걸 가지고 있어서 참 행복하다

지금이걸 누리고 있음에 참 감사하다는 느낌을 느껴야만

지금그것을 가지고 있는

현재 상태가 창조되기 시작합니다.

 

현실을 창조하는 잠재의식은

현재형, 지금만 인식하니까!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해?

무슨 제약이 이렇게 많아?

차라리 아무것도 안 끌어당기는 게 낫겠다.

 

맞습니다.

바로 이 말에 역설적인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딱히 끌어당기고 싶지 않은상태

굳이뭔가를 끌어당길 필요를 못 느끼는 상태

더 바랄 것이 없는상태에서

오히려끌어당길 때보다 인생이 더 잘 풀립니다.

 

그런 것이냐

끌어담김에는 에고가많이 개입됩니다.

그래서 에고의 행동으로 인한 인위적인불균형 상태가 쉽게 발생하게 되고

여러 법칙들의 간섭을 받아서 강력한 반작용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작용을 맞지 않는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불균형 상태를 일으키지 않도록

에고 대신 영혼이주관하는 내맡기기를 하는 겁니다.

끌어당김의 [종착지][내맡김]입니다.

 

왜 하필이면내맡김이 끌어당김의 종착지인가?

내맡길 때에는 그 어떤 방향으로도

인위적으로끌어당기거나 밀쳐내는 힘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도록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인위적인 불균형 상태가 발생하지 않아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작동하는균형력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 균형력의 발동으로 인한

강력한 반작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내맡김입니다.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어요

내맡기기를 도대체 어떻게하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가?

어떻게 하면 내맡기기에 최적화된 상태를 세팅할 수 있을까?

 

3가지 스텝만 밟으시면 됩니다.

1_마음을 [백지 상태로] 만들기

2_[평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3_에고를 [관찰함으로써 초월하기]

 

첫 번째,

마음을 백지 상태로만들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에고의 다양한 [욕망/두려움]을 의식적으로 직면해 주면서

학습된 관념, 세뇌된 관념들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에고가 좋다고 여겼던 것부터

나쁘다고 여겼던 것까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당연히 잘못된 거라고 여겼던 것

에고가 너무나 갈망하는상황

에고가 강하게 거부하는상황들을 모두 직면하면서

기존의모든 관념들이 뒤집어지고 깨지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좋음과 나쁨의 경계를 허물고

마음의 틀이 부서지도록

에고의 작은 세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에고의 고질적인 관념, ‘학습된관념들은

이런저런 가능성을 제한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맡김의 원활한 흐름에

상당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이 무한한 통로를 통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해 주려고 하는데

자꾸만 에고가 그 앞에

관념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거예요

 

이거는 좋은 거고이거는 나쁜 거고

이거는 되고이거는 안 되고

단언컨대 내맡기기의 유일한장애물은

바로 에고의 고질적 관념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런저런 관념들’ ‘좋고 나쁨의 경계를 모두 허물어야만

무한 다양한 가능성이,

무한한 통로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백지 상태로만드는 것은

내맡기기를 위한 필수적인 스텝입니다.

 

내맡김을 위한 두 번째 요건

바로 평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습관입니다.

내맡김은 에고가 아닌

영혼의 영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영혼의 언어내맡김의 방향성을 주문해야 합니다.

 

영혼의 언어는?

[감정과 느낌]입니다.

그럼 어떤느낌을 느껴야 최적의 방향성을 주문할 수 있을까요?

답은 평안함이라는 느낌에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평안함입니다.

억지 긍정성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평안함이 답인가?

 

평안한 상태가 영혼의 본래적 상태와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중심의 상태

어떤 것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평안한 상태가 바로

참나, , 하나님, 우주, 신성 의식

다양한 이름표로 불려온

의 상태와 가장 가까운 상태입니다.

 

평안함을 느끼게 되면

가장 높은 차원의 상태동조하는것이기 때문에

상위 차원의 힘을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평안함을 느끼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쉬운방법은

행위를 통해서 느낌을 유발하는 겁니다.

 

우주상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합니다.

그 어떤 작용도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좋을 때 -> 좋은 행동이 나오기도 하지만

에너지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에너지가 유발]되기도 합니다.

느낌을 유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적으로 평안해서 -> 평안한 행동이 나오기도 하지만

평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을 함으로써

역으로평안한 느낌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상의 모든 것은

일방향 소통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선각자들과 현인들은

상호작용의 미묘한 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을 이용한 수행을 강조했던 겁니다.

그들은 행위 이전의 에너지상태를 잘 유지하는 게

본질적인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영혼은 육체와 에고에 묶여 있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가만히 누워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평안한 느낌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식, 소식, 명상, 요가, 깊은 호흡, 햇볕 쬐기, 장시간 걷기와 같은

진빠지는 운동등의 행위를 통해서

평안한 느낌을 유발하려고 했던 겁니다.

 

이렇게 행위를 통해서

평안함이라는 감정을 유지하게 되면

영혼의 본래적 상태와 가까워지기 때문에

영혼 차원에서 진행되는 내맡기기가

더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게 됩니다.

 

내맡김을 위한 세 번째 요건은 바로

에고를 관찰하는 능력입니다.

내맡기려 하는 순간

에고는 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모든 게 다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그건 용납할 수 없어!”

내가 간섭을 좀 해줘야겠어!”

이거는 되고 이거는 안 되는 거야

저거는 좋고 저거는 나쁜 거야!”

도대체 내맡기려고 하기만 하면

에고가 강하게 발버둥을 치는 걸까요?

에고는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

영혼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순순히 협조해주지 않습니다.

영혼이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에고는 청개구리마냥 왼쪽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주장해야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영혼이 오른쪽으로 가고자 하는데

에고가 그래용ㅇㅅㅇ이라고 말하면서

순종적으로 입을 꾹 닫고 있는다면?

 

에고의 존재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할 겁니다.

에고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 의미가 흐려지는 순간

강력한 생존 본능이 발동 되어서

생사를 건 발버둥을 치기 시작합니다.

 

뭔가를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려고!

 

흥미로운 점은

에고가 발버둥을 치면서 뭔가를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단 살고 봐야되니까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거예요

 

이 주장이 영혼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뭔가를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해야 되니까

기존의 관념들을 토대로 해서

그럴듯한주장을 펼쳐내기 시작합니다.

 

너 그러다가 정말 큰일난다

기존에 알고 있던 ...방식대로 행동해야지!” 라고

나를 강하게 설득합니다.

 

이때, 에고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리면

내맡김의 기적은 절대로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가 생존본능에 따른발버둥을 칠 때

에고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 주지 말고

잠시 멈춰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세요

, 에고가 자신의 존재감을 잃게 될까 봐

기존의 학습된관념들을 가지고

현상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려고 하는구나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에고가 저항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직면하는 순간

에고의 목소리는 급격하게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왜냐, 에고는 내가 아니라

내가 지켜보고 있는 대상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즉시

[의식을 빨아들이는 에고의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명상의 원리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예요.

 

그렇게 에고의 발버둥을 관찰함으로써

에고를 초월하고

내맡김의 상태를 유지하면 됩니다.

 

이렇게 내맡기기를 위한 최적의 상태 3가지

1_백지 상태의 마음

2_평안한 감정상태

3_에고를 관찰함으로써 초월하는 습관이 마련되면

뭔가를 끌어당길 필요가 없는삶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의식적으로끌어당기지 않았는데

영혼의 고유성과 결에 걸맞는 것들로

내 삶이 알아서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잠깐 하나 기억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내맡기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흐름을 타게 되는 건 아닙니다.

에고의 고질적 관념들을 하나씩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을 백지상태로 만들면

에고의 관념 때문에 억눌러져 있었던’ ‘영혼의 고유한 결

알아서 떠오르게 되는데

이때 드러나는 영혼의 고유성은

각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맡겼을 때 마주하게 되는 삶의 흐름 역시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세계의 드라마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빛을 발해야 하는 고유성을 가진 영혼은

자신의 고유성에 걸맞는 것들로 둘러쌓이게 되고

세속을 벗어난 삶을 살 때

비로소살아나는 고유성을 가진 영혼은

그의 고유성에 걸맞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만의 고유성을 살려주는

내맡김의 흐름을 타게 됐을 때는

에고의 머리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기회나 소식들이

예상치 못한 존재와 방법들을 통해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마치 온 우주가

영혼의 결과 꼭 맞는 삶을 선물해 주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에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내맡김의 흐름 속에서 살다 보면

얼마 안 가서 끌어당김의 최대 역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오직 내려놓음으로써

영혼의 결과

걸맞는 모든 것들을 받게 되는구나.

 

끌어당김을 설파하던 사람들이

끌어당긴 후에 잊어버리라고했던 이유

바라는 것에 대한 주문을 확실하게 전송하고

곧장 내려놓고 까먹으라고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끌어당김의 역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끌어당기고자 할 때 밀쳐내게 되고

내려놓고자 할 때 비로소 받게 되는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히 의문이 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내맡김이 끌어당김의 종착지다?

아니 그러면 끌어당김을 알기 이전으로돌아가란 말이야?

끌어당김 하기 전에도 내맡기면서 살았는데

 

그때는 내 인생이 막 드라마틱하게 술술 풀리지는 않았는데?

끌어당김을 알기 전의내맡김상태와

끌어당김 이후의내맡김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잠들어있는상태로 내맡기는가

깨어있는상태로 내맡기는가

이 둘의 차이점은

[반응 선택권]의식적으로사용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는

전지전능한자유가 아니라

펼쳐지는 상황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반응 선택 자유권에 더 가깝습니다.

 

자유 의지를 발휘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의식적으로선택하면

선택한 [반응과 똑닮은] 현실이 창조되기 때문에

반응 선택 자유권[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내맡김의 결이 크게 갈립니다.

 

잠들어있는상태로 내맡길 때는

내가 숨 쉬듯이 선택하는 반응이

[반응과 똑닮은 현실]을 창조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 선택 자유권을 무의식적으로무분별하게 사용합니다.

 

학습된 관념들로 혼잡한마음을

관찰하거나

직면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고 에고의 관념으로 -> 영혼의 고유성을 억누르면서

자신도 모르게수많은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 “느낌이라는 영혼의 언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영혼이 느낌으로 건네주는 힌트를 놓치기도 합니다.

 

에고를 나 그 자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에고가 관념으로 쌓아올린작은 세계를

내 세상의 전부라고 인식하면서 살아갑니다.

반면에 깨어있는상태로 내맡길 때에는

내가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반응이

현실 창조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 선택 자유권을 의식적으로현명하게 사용합니다.

 

에고가 발버둥칠 때마다

에고의 몸부림에 따라가주지 않고잠시 멈춰서

에고는 내가 아니라

내가 지켜보고 있는 생명체임을 기억해 내고

에고를 관찰함으로써 초월하는습관을 유지합니다.

 

그렇게 에고가 관념으로 쌓아올린작은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초월하고

에고의 고질적인 욕망과 두려움 뿌리적인 관념들을

직면함으로써 풀어주는식으로

좋음과 나쁨의 경계선을 허물어갑니다.

 

[반복적인 에고 관찰]을 통해서

완성한 백지 상태에 가까운 마음덕분에

그 어떤 제약이나 제한 없이

무한한 경로를 통해서

무한한 가능성들을 선물받게 되고

느낌이라는 영혼의 언어에 귀를 쫑긋 기울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느낌을 통해서 주어진 영혼의 힌트를 캐치하면서

영혼의 고유성과 결이 살아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처럼 [반응 선택 자유권]어떻게할용하느냐에 따라서

내맡김의 성격이 갈리게 됩니다.

 

잠들어있는 내맡김인가, 깨어있는 내맡김인가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끌어당김의 종착지는

잠들어있는내맡김이 아니라

깨어있는내맡김이어야 하는 겁니다.

 

 

핵심만 빠르게 요약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끌어당김을 하면

발생하는 대표적인 부작용 3가지 이유

바로 끌어당김에 간섭하는 여러가지 법칙들때문이다

 

에고가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것의 99% 이상이

지배적인 집단 무의식으로부터 학습된관념이기 때문에

영혼의 고유성과 잘맞는 것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고

에고가원하던 것을 얻게 됐다고 해도

영혼의 결과 부조화스러운상황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다.

 

양극성은 한 세트이기 때문에

끌어당기고자 한 것과 대비되는상태가 같이끌려온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끌어당김으로써

어느 한 부분은 충만해졌어도

다른 부분에서공허해지는 일이 함께끌려오는 것이다.

 

균형력에 의해서 뭔가를 끌어당기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밀려 나간다.

,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를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현재형만 인식하는 잠재의식의 특성을

자꾸만 까먹고’ ‘~싶다라는

결핍형 문장으로 소망을 그리는 바람에

결핍된 현재 상태가 끌려온다.

 

4가지 이유 등으로 인해서

끌어당김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여러법칙들의 간섭으로 인한

강력한 반작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내맡겼을 때는

끌어당길 때와 달리

인위적으로 끌어당기거나 밀쳐내지 않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도록내버려 두기 때문에

인위적인 불균형 상태가 발생하지 않아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작동하는균형력의 영향을 피할 수 있게 된다

 

, 내맡기는 순간

끌어당김으로 인한 강력한 반작용을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맡김에 최적화된 상태를 세팅하는 3단계 스텝

1_마음을 백지 상태로 만들기

2_평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3_에고를 관찰함으로써 초월하기

 

에고의 욕망과 두려움, 뿌리적 관념들을 직면하고 풀어줌으로써

좋음과 나쁨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마음을 백지상태로 만들어야만

무한한 가능성이, 무한한 방법으로 들어올 수 있다

 

가장 높은 차원의 상태, 영혼의 본래적 상태와 가까운

평안함이라는 감정을 유지하면

상위 차원의 힘을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발휘할 수 있다.

 

각자에게 잘 맞는 방법으로 평안함을 유지하되

평안함을 어떻게느껴야할지 막막하다면

행위를 통해서 -> 느낌을 유발하자

에너지만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 역시 -> 에너지 상태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우주상의 모든 것은

일방향 소통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상호작용 하기 때문에!

에고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내맡김으로써

에고의 영향력이 서서히 작아지면

에고의 생존 본능이 발동하게 된다.

 

그렇게 에고는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장한다.

그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무언가를 주장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존재감을 가지고 존립할 수 있으니까!

내맡기는 순간

생존본능에 따라 강하게 저항하는 에고를 따라가주지 말고,

그저 지켜보자.

에고가 저항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순간

에고는 내가 아니라,

내가 관찰하는 생명체임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에

의식을 빨아들이는 에고의 힘이 순식간에 약해진다.

 

그 덕분에 영혼의 영역에서 진행되는 내맡김의 흐름을

에고가 방해하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내맡김을 위한 최적의 상태 3가지가 마련되면

굳이 뭔가를 끌어당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끌어당기지 않았는데

영혼의 결과 고유성에 꼭 맞는 것들로

삶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주의할 점,

내맡기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든가, 이전처럼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잠들어있는 채로내맡기는가

깨어있는 채로내맡기는가에 따라

내맡김의 질적인 차이가 결정되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반응 선택 자유권]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자의식, 사회와 국가의 집단 무의식은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서” ‘영혼들의 고유성을 억압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 아래서 잠든 상태로내맡기기를 선택하면

영혼의 결은 피어날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서

영혼의 고유성과 걸맞는 삶의 흐름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반면에 반응 선택 자유권을 의식적으로사용함으로써

깨어있는상태로 내맡기기를 선택하면

에고와 집단 무의식을 관찰함으로써 초월하는 습관 덕분에

영혼의 고유성을 억누르던힘으로부터 벗어 나서

영혼의 결이 살아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끌어당김을 접한 사람들이 밟는

대표적인 루트가 있습니다.

잠들어있는상태로 내맡기면서 살아가다가

우연한 계기로 끌어당김을 접하게 되고

끌어당김에 크고 작은 성공을 거듭하면서

의식의 힘이 실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원하던 걸 다 끌어당겼는데도,

그닥 행복하지 않은 상황

끌어당기고 나서 더 안좋은 일이생기는 상황 바라던 것과

정반대되는상황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끌어당김에 간섭하는 여러 법칙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기나긴 정체와 고난의 시기 속에서

의식의 힘을 잘 다루는 사람일수록

오히려그 능력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잘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최종적인 답은

깨어있는 내맡김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끌어당김을 접한 지 얼마 안 되시는 분들은

왜 내맡김이 답인지

납득하기 힘드실 수 있지만

이 루트를 비슷하게 밟아오신 분들

혹은 끌어당김을 오랫동안 접해오신 분들은

왜 내맡김이 최종적인 답인지를

온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끌어당김의 종착지는

깨어있는 내맡김이라는 걸

직접 체험을 통해서깨닫게 된 순간

더 이상 공부할 것은 없습니다.

 

곰곰이 잘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이미알고 있는 끌어당김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요?

여기서 더 더공부하고 더 더알아야할 것은 없습니다.

내가 이미알고 있는 것들을

냅다 행동으로 옮기는단계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본질과 법칙은

어이가 없을 만큼 단순합니다.’

단지 에고가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할 뿐입니다.

아니야이렇게 쉽고 단순할 리가 없어..!’

뭔가 더 대단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가 남아있을 거야..!’

 

그런 거 없습니다.

법칙은 오히려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이제는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됐습니다.

 

단언컨대 앞서 언급된 내용들을 완전히 흡수하고 체득하신다면

끌어당김 졸업해도 됩니다.’

그때부터는 끌어당김을 하는사람이 아니라

끌어당김의 현신으로서살아가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