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신과 실제로 대화를 나눈 남자가 전하는 궁극의 진리|신과 나눈 이야기2

Buddhastudy 2024. 7. 30. 19:07

 

 

신과 실제로 대화를 나눈 남자가 있다.

<신과 나눈 이야기>의 저자인, 닐 도날드 월시는

다섯 번 이혼하고 매달 양육비를 보조해야 하는 9명의 자녀를 둔

지역 라디오 방송 토크쇼 진행자였는데

건강도 안 좋은 데다 직장에서까지 해고당하고 말았다.

 

때는 1992, 그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신에게

자신의 고통을 항의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에게서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받았고

월쉬가 잡고 있던 팬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430분경에 시작된 올 씨와 신의 대화는

1992년부터 만 3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신이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월쉬는 이에 대해

이 책에는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오고 알고 있던 것들을

훨씬 뛰어넘는 개념과 사실들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오늘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의 137주간 올랐던 책

<신과 나눈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겠다.

 

 

--모든 사건은 신의 행위다

 

삶은 계속되는 창조 과정이다.

영혼은 창조하고 정신은 반응한다.

영혼은 정신으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은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관념이다.

 

느낌으로 되돌아가려면

정신에서 벗어나 감각으로 돌아가라.

과거나 미래는 단지 생각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

단 하나의 현실은 미리 보내진 순간뿐이다.

 

어제와 내일은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허구이고, 정신이 지어낸 구조물이다.

궁극의 현실에서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껏 일어난 모든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도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모든 사건과 체험의 목적은 기회를 창조하는 데 있다.

그것들을 신이 내린 벌이니, 하늘이 주신 상이니,

혹은 그 중간에 어떤 것으로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사건들이고 체험들이며 벌어진 일들일 뿐이다.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반응한다는 뜻이다.

 

삶은 학교가 아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의 목적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이 신의 행위다./

 

이 우주 게임에는 다른 배우들도 수시로 가담한다.

그 배역이 짧은 만남이든 주변 인물이든, 한때의 팀원이든 친척과 가족이든

누군가가 우연히 오는 일은 없으며,

우연의 일치 따위는 절대 없다.

 

삶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행성 차원에서의 대규모 체험과 발전들은

집단의식의 결과다.

지구 행성의 대다수 사람들이

지금 그대로의 세상에 만족하고 있으니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동등함보다는 차별이 대우받는 세상

불일치가 갈등과 전쟁으로 해결되는 세상에 만족하고

이기는 것을 최고선이라 부르는 세상에 만족하고 있다.

 

지구 행성의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건 나쁘다고 규정한다.

특히 종교의 차이는 용납되지 않으며,

사회, 경제, 문화의 차이들 역시 그러하다.

 

대다수 사람들이 누군가가

현재 굴러가는 것과 다른 종류의 체제를 제안하기라도 하면

그것을 비웃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오직 자기 삶의 질을 높이는 데만 열중하고 있어서

자신들에게 생명을 준 지구를 파괴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고통이 계속 용납되는 건

남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의 변화다

 

신은 우주 전체에 걸쳐

자신의 신호를 전달하는 에너지를 만물 속에 심어놓았다.

 

사람, 동물, 식물, 바위를 포함한 모든 물체가

무선 송신기처럼 에너지를 내보낸다.

우리가 가졌던 모든 생각이

이 에너지를 물들인다.

 

허공인 에테르는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이 에너지는 소위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 사이를 달려가면서 교차하고

섞이고 얽히면서 물질성을 함께 묶어준다.

 

때로는 개인들이 창조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중 의식이 만들어낸 신호들

즉 메시지와 의도와 치유를 비롯한

여러 물질 효과들을 서로에게 보내는 것은

이 바탕을 따라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에너지들은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것을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법칙에서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비슷한 에너지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진동이 무거워지면

그것들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그중 일부는 물질이 된다.

 

생각은 물질 형태를 창조해 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생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말하자면 세계적인 범위로 존재하는

두려움이나 분노나 결핍이나 부족함 따위의 의식은

그런 체험을 창조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육체 수준에서 삶을 산다.

몸에 양분을 주고 몸의 옷을 입힌다.

몇 년이 가도 좋은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지도자를 뽑고

그런 정보를 지지하고 그런 종교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영혼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아니 영원히 있음을 눈치라도 채고 있는가?

더 높은 의식 상태로 진화할수록

인간은 자기 존재의 모든 측면을 충분히 실현해 가게 된다.

 

신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은 이 행동을 선이라 부르고, 저 행동은 악이라 부르면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가장 진화한 영혼들이 동의한 기본되는 지침이 있는데,

그것은 남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은

절대 급속한 진화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적 문제가 그러하듯이

결국 영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삶의 모든 것은 영적이기에

삶의 문제들 역시 영적으로 해결된다.

 

지구 행성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건

한쪽이 원하는 것을 다른 쪽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한쪽은 다른 한쪽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갈등은

잘못 자리 잡은 욕구에서 생긴다.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변화다.

 

 

--궁극의 진리만이 유일한 해결책

 

삶은 주기로 순환하며 모든 것이 순환한다.

모든 것이 그 흐름대로 따라간다.

 

그래서 하늘 아래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소위 불리함을 안고 태어난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아주 높은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는

누구도 불리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개의 영혼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딱 맞는 사람과 사건과 환경을

자기 스스로 창조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부모와 국적과 환경, 모든 것을 선택한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참된 자신으로 깨닫기 위해서

사람과 사건과 환경들을 선택하고 창조한다.

 

영혼은 자신이 이미 시작한 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장애가 있는 몸으로 일하거나

억압적인 사회에서 일하길 원할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되는데,

신은 왜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되고자 하는 자신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신이 되려는 신의 행위다.

이것이 모든 삶의 목적이다.

 

누구나 주어진 순간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모든 공격은 도와달라는 외침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지구 자원을 강탈하며 사람들을 착취한다.

해마다 나무들을 잘라야 하고

지구 행성을 감싸고 있는 오존층을 고갈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산업을 지닐 수 없다.

 

인간은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신과 분리된 존재로 보고,

각자를 서로 분리된 존재로 보는 걸 그만두어야 한다.

 

이 우주의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극의 진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모든 정부, 모든 정치가

이 진리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이것이 지구 행성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